1천년 이래 대사건, 한반도 '영토축소 유전자' 작동 중...
1천년 이래 대사건, 한반도 '영토축소 유전자' 작동 중...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1.05.2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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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한반도 북반부를 중국에 바치다

 

“사유여. 내가 아는 자네는 누구보다 나라를 잘 지키고, 백성을 잘 돌본 위대한 왕이었네”(부여구=백제 근초고왕)

“나도 요동에서 요서까지, 중원까지 달리고 싶었다. 마한 54개국과 가라 7개국까지 고구려의 발아래 두고 싶었다. 백제왕이여, 어디까지 가시려는가?(사유=고구려 고국원왕)

“우리 ‘예(濊) · 맥(貊) · 한(韓)’의 시원(始原)인 요동까지 가야하네”(부여구=백제 근초고왕)

“너와 함께 달릴 수가 없구나”(사유=고구려 고국원왕)

 서기 371년 한강유역 패권을 놓고 다투던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에서 고구려왕 사유(고국원왕)는 백제군의 화살을 맞고 평양성에서 전사한다. KBS 드라마 <근초고왕>은 이때의 장면을 지난 15일(일) 밤 방영분에서 위의 대화처럼 표현했다.

백제 왕자 근구수가 쏜 화살에 쓰러진 사유를 찾아간 백제왕은 “누구보다 나라를 잘 지키고, 백성을 훌륭하게 돌본 위대한 왕이었다”며 고구려왕을 위로한다. 그런 백제왕에게 고구려왕은 “어디까지 가시려는가?”라며 다시 묻는다.

“우리 ‘예맥한’의 시원인 요동까지 가야하네...” 백제왕의 대답이다.

예족과 맥족과 한족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우리민족 시원(始原)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장면이다.
단군신화나 동명왕의 전설, 고구려 · 백제의 건국신화는 우리 한반도 민족의 시원이 북방의 대륙영토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안타까운 건 시작은 그곳이었으되, 우리의 강역(疆域)이 남으로 남으로 축소되어 지금은 한반도마저도 반분된 상태로 소국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의 강역을 결정지어온 역사흐름 속에는 ‘남방으로의 축소(쪼그라듦) 유전자’가 있지 않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나당(羅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무너뜨린 신라가 옛 고구려 땅을 포기, 대동강과 원산만 국경을 유지한 것이 그렇고, 발해 멸망이후 고려 역시 한반도 북반부마저도 완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여진, 거란, 명나라 등과 분쟁을 치러야 했다. 우리의 강역이 그나마 지금의 한반도 영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것은 조선 세종 임금 덕으로 보인다.

세종은 장군 김종서를 앞세워 4군 6진을 적극 개척, 여진족을 포용하기도 하고 토벌하기도 하며 지금의 압록강~두만강 영역을 확실하게 확보해 냈다. 이후 조선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渤海考)와 현재까지의 ‘간도의식’(만주은 우리땅)이 북방영토에 대한 한반도인의 인식을 새롭게 해주고는 있으나, 사실상 우리의 영토는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으로 고착되는 듯한 분위기가 현재의 상황이다.

더 우려되는 건 21세기 이명박 정권 등장이후 그나마 압록강~두만강 이남 한반도의 북반부(북한) 마저도 중국으로 점점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고대 이래 황하유역에서 발원한 한족(漢族)은 문화적, 정치적 또는 군사적으로 주변 민족들과 자웅을 겨루면서 점점 영역을 넓혀 왔다. 이른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입각한 중화민족의 개념은 주변민족의 말발굽에 짓밟히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영역을 흡수해 자기 것 화하는 마력이 있었다.

결과 오늘날 중국은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55개 소수민족들의 영역과 문화를 흡수한 세계 제일대국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제 우리 선조들도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중국에 사대(事大)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오늘날은 그 대상이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중요한 건 오늘날 한반도 남쪽의 이명박 정권은 그런 중국의 입속으로 북한을 점점 밀어넣어주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보도를 보니 이북5도청이 북한행정을 대체하며, 한미 합동군사훈련에도 참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한다. 북한 급변사태나 전면전 발생시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고 반격해 북한지방 치안과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이다. 전면전쟁이나 급변사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매우 위험하고 비현실적 계획이다.

그런데도 이 정권 등장이후 이 같은 계획이 심심찮게 발표되어 왔다는 게 걱정스럽다. 전 · 현직 국방장관들의 대북 선제타격론이나 미국의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로 알려진 ‘작계 5027’ ‘작계 5029’니 하는 것들이 그런 것이다. 물론 모든 가능성을 감안한 유형별 시나리오나 계획들이 필요하겠지만 대체로 북한 붕괴나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이런 계획들을 노출시킨 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남한에 대한 위화감과 위기감을 부추기며, 한반도 정세악화를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을 업은 남한이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 할수록 북한은 오히려 도발성을 드러내거나 중국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 그리고 그 전후 상황전개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이러면 또 친북좌파니 빨갱이니 하겠지만 이것은 우리 한반도 전체 민족의 사활을 걸고 제대로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 10일 독일방문에서 마저도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형식적 제의만으로 남북대화의 길을 멀리하고 말았다. 혹자는 그를 일러 부리 긴 새가 여우를 초청한 뒤 호리병에다 물을 담아 마시라며 내놓은 이솝우화에 비유했다. 맞는 말이다. 비현실적, 비합리적이며 위험하고 편협한 흡수통일론에 빠져, 한반도 대국을 함께 이루어나가야 할 파트너인 북한을 흡수는커녕, 오히려 중국 쪽으로 뱉어내는 형국이 지금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이다.

역사의식도 지혜도 슬기도 없는 어리석은 정책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그나마 압록강~두만강 영역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강역 북한은 점점 중국이란 블랙홀 속에 빨려드는 것이며, 결국 한반도 민족의 강역은 다시 한반도 남반부로 쪼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가 개탄한 ‘영토가 축소당하는 1천년 이래의 대사건’이 지금 이명박 정권에 의해 또다시 저질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