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2)
[연재소설]조선 일류 가객, 박춘재 (2)
  • 박춘재 일대기
  • 승인 2011.05.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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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으면서도 물어보는 어린 소리꾼
실은 숙향이의 의향을 떠보려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만약 좋다면 같이 가서 좋은 것이고, 싫다면 비밀을 지켜 달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설마 고자질이야 할 리라고.
 “실은 말야. 나 다른 데 가서 배우고 싶어.”
 “뭐? 다른 데 어디?”
 유산가를 잘 부른다는 그 선생한테 가고 싶다 했다. 유산가를 지었다는 말까지 있는 그 선생을 한 번 찾아가보고 싶다 했다.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같이 가자. 소리 선생을 바꾸자고.”
 “바꿔?”
 숙향의 시선이 바로 눈앞에서 멈추어 섰다.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곧 눈길이 흐트러졌다.
 “아버지가 아시면?”
 실은 그게 고민이었다. 금방 알게 될 텐데 뭐라고 해야 하나? 가슴이 마구 뛰기만 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우리 거기 한 번 가보자고.”
 “언제?”
내일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소리선생이 시제를 지내러 가기 때문이었다. 숙제를 내줬지만 그건 하루면 된다 했다. 요즘엔 집에 가서 하는 일도 안 한다고 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모르겠는데 하면 무얼하냐는 것이었다.
 집에 가서 하는 일이란 낮에 배운 걸 일일이 적어 놓는 것이었다. 차근히 적어 놓고 뜻을 새기면서 외우고 또 외웠다. 아버지는 그런 춘재를 보고 말씀하셨다.
 “내년부터는 글을 배우자.”
사서를 배우는 곳으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통감까지 배웠는데 공부보다 소리를 더 좋아하자 서당 대신 소리방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저녁에 하는 걸 보니 번번이 한문에서 막히고 있었다. 아버지도 모르는 한문이 수두룩했다. 그런 걸 적어가면서 한 자 한 자 뜯어보다 시피하면서 풀이를 먼저 하려는 아들을 보고 감탄스러운 생각까지 든 것이었다.

아니 아들의 그런 공부를 보고 아버지가 놀란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노랫말에 그런 한문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무엇보다 놀랐다.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소리들이 알고 보니 한문 투성이였다.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따로 있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니 모르는 사설이 너무 많았다. 왜 모르는가 했더니 대부분 한문이어서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무슨 소린가 하고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는 게 몇 마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것도 그런가 하고 다른 걸 보니 마찬가지였다. 진땀이 났다. 그런 걸 이제 열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저녁마다 끙끙거리며 씨름하듯 하고 있다는 걸 안 것이다.
 글을 배우자는 아버지의 말에 춘재는 저녁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말았다.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이 어린 춘재의 한계였기 때문이었다. 적어서 외우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술술 외워 소리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흥미가 있을 때까지이지 반복의 연속만 되다 보니 흥미가 점점 줄어든 것이다.

그러면서 박춘경, 그 선생의 집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었다. 동구밖에 선소리패들이 왔을 때 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크게 동요를 일으킨 것이었다.
 “챙피하대. 어디 그 선생 앞에서 소리한다고 하겠던가!”
 “아니 그런데 맨날 쟁기질이나 하고 물꼬나 보러 다니더만 대체 언제 소리를 하는 거야?”
“소리가 아니야 풍류야, 풍류. 뜻이 소리로 살아나고 소리가 뜻으로 풀어지지. 그게 바로 풍류지.”
 “여지껏 그렇게 멋진 풍류는 처음이야.”
소문을 듣고 소리를 듣고자 찾아오는 이가 있다 하지만 낮에는 농투성이 그를 보고 오히려 박춘경 그분 댁이 어디냐고 묻는다고 했다. 그러면 대답해준다는 것이다. 저 물레방아 돌 듯이 휘휘 돌아가면 산 아래 야트막한 기와집이 있는데 아마 낮에는 없을 거라고. 밤에 한 번 가보라고. 가보면 그가 사랑채에서 반겨준다 했다.

노래는 반드시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했다. 소리와 뜻이었다. 새소리나 짐승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노래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것에 뜻이 없기 때문이었다. 싯귀절이나 문장이 아무리 그 내용이 좋다 해도 그것을 노래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 소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린 춘재는 그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