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다 - 백 성 희 (3)
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다 - 백 성 희 (3)
  • 김은균 / 공연전문기자
  • 승인 2011.06.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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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작품은 대략 헤아려 본 것만 400편이 넘는다.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지만 번역극보다는 토속극이 연기하기에 훨씬 편하다고 하셨다.
“내가 해 본 역할치고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없죠. 그 중에서 꼽으라고 한다면‘무녀도’의 모화 정도일까요? 무녀인데 신기가 통해서 그런지 그건 모르겠어요. 

그리고 번역극이 그렇게 많지만 역시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것이 내 몸에 와 닿고 내 피부 속에 흐르고 있는 거 같아요. 또 내용 중에 자식하고의 갈등이 있잖아요. 어떤 쪽도 거부할 수 없는, 거기서 자식을 죽이는데 신을 버리지 않고 자식을 죽인다는 게 인간의 한계인 거 같아요.”

선생께서는 너무 빨리 데뷔하고 사라지는 요즘 풍토를 걱정하셨다. “연극계에는‘말다리 3년’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무대에서 다리만 보이는 역할을 3년을 해야 비로소 대사와 얼굴을 내밀 수 있다는 뜻이지요.
 3년 동안 아무 소리 없이 무대 경험을 통해 발성과 호흡, 그리고 작품 분석에 대한 이해도 얻을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이 인내의 과정을 거쳐서 무대 위에서의 짧은 한 마디 대사조차도 귀하게 여길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요즘의 배우들은 너무 빠르고 서둘러요.”

선생님께 영향을 끼친 분은 누구신지 여쭈어 보았다.“연극계에서 제일 존경하는 선배를 김선영 씨라고 그래요. 그때 김선영 씨는 현대극단에 프리마돈나였어요. 현대극단뿐만 아니라 당시에 첫 손 꼽히는 유명한 여배우였어요. 그분이 저를 예뻐하시고, 혼자 계시면 밤낮으로 불러요. 그리고‘열심히 해, 국립극장 네 꺼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죠. 저한테는 그분 영향력이 대단히 컸어요.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선배들 흉내를 내다가 자기화 되잖아요.

그때 전 어쩌면 김선영 씨를 흉내 냈었는지도 몰라요. 월북 하신 김선영 씨가 연기의 스승이었다면, 유치진 선생님은 연극의 정신을 심어주신 분이시죠. 유치진 선생은 아주 여성스러운 분이세요. 체구는 크고 잘 생겼는데, 목소리가 가늘고 말투도 아주 고왔어요. 하지만 그 분이 연출하면 일단 모두 긴장했어요.
명동 성당 밑에 베이비 골프장이 있어요. 하루는 저랑 최은희 씨랑 점심 먹고 그곳에 갔죠. 그날따라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다가 둘 다 여배우니까, 유치진 선생한테 애교떨자고 하고 한 10분 늦게 들어갔어요.

근데 도착해 보니 유 선생님이 화를 내시는데, 손을 허리춤에 놓고 부르르 떠시더라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예술이 시간이에요. 시간관념 없이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만 두세요. 다들’하시는데, 예술가의 혼을 발견했다고. 눈물 뚝뚝 흘리고 잘못 했습니다 했죠. 저도 아직 그래요. 사석에서는 흉허물 없지만, 약속 시간에 늦거나 연습을 안 하면 불벼락이에요.”

그리고 선생께 인생에서 연극의 의미를 물었다.“나는 연극에서 정직을 배웠어요. 무대에 나오면 연습 때 게으름 피운 것이 다 나타납니다. 연극을 너무 가볍게 대해서는 안 돼요. 무대에서는 배우의 인격이 드러나므로 품격 있는 연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할 수 있는 얘기로‘연극은 내 생명’이라고 그러죠? 내가 생명은 아니고, 지금은 연극하고 나하고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거죠. 연극이 나고 내가 연극입니다.”

얼마 전 <삼월의 눈> 앵콜 공연을 앞두고 선생은 가벼운 뇌경색이 와서 무대에 오르지 못하셨다. 현재는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선생님께서 우리 곁에 오랫동안 아름답게 머물러 계시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