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 이광기, 연극 '가시고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인터뷰)배우 이광기, 연극 '가시고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 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1.06.23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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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가시고기'로 이시대 아버지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인간문화재 이은관 명창의 ‘배뱅이굿’은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마음을 고스란히 쏟아내고 있다. 문벌 높은 집의 무남독녀를 칭하는 배뱅이는 태어나 곱게 자라다 우연히 병을 얻어 죽었다. 이 배뱅이를 위한 진혼곡으로 이 명창이 굿판을 벌이듯이 배우 이광기가 무대 위에서 이 땅의 부모들 가슴에 눈물을 내리게 한다.

몇 년 전 뜻하지 않게 7살난 아들을 잃은 이광기는 요사이 연극 ‘가시고기’로 오는 6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친정엄마’ 등 엄마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는 요즘, 엄마의 남편인 ‘아버지’는 정작 우리사회에서 소외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광기는 이런 아버지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가 말한 ‘아픈 사람이 아픈 연기를 할 수 있다’를 연기로 증명해보이며 직접 풍금도 치고 노래도하며,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 못다한 아들에 대한 사랑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는 이번 공연을 통해 오히려 자신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관객과 서로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 희망과 용기를 드리는 것. 그는 아들의 죽음이후 아이티 어린이를 위한 자선공연과 모금 등으로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엔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서도 열연을 중이다. 무대에서 그는 아픈 가슴을 조금씩 풀어내며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씩’하고 날린다. 아픔을 넘어 치유의 눈물로 다가서는 배우 이광기를 만났다.

 '엄마를 부탁해' 절묘한 타이밍... '부성애'로도 무게중심 잡아야

연극 ‘가시고기’는 ‘아버지’가 주된 주제인가? 관객들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오는 6월 29일까지 무대에 올려지는 가시고기. 객석을 뒤로 하고 있는 배우 이광기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사진 정리 홍경찬 기자):최근 ‘엄마를 부탁해’. ‘친정엄마’ 등 엄마와 관계된 것들이 많아요, 근데 '아버지' 스토리가 없어요. 갈수록 메말라 가는 아버지에 대한 갈증을 이 가시고기가 풀어줄 절묘한 타이밍이라 생각해요. 사실 어깨가 쳐져 있는 아버지들이 대다수예요. ‘사랑한다 내 자식들’ 열 마디 말보다 몸소 전해주는 아버지를 그렸어요. 아버지 역인 정호연 연기가 눈물 콧물 빼는 신파 섞인 부성애가 아닌 진짜 우리 아버지 이야기에요.

아시잖아요, 제가 아픔이 있고...(잠시 침묵) ‘아픈 사람이 아픈 연기를 할 수 있다’를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이는 관객들께 희망과 용기를 드리는거에요. 물질만능만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네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회복하는 의미가 됐으면 해요. 가시고기에서의 눈물은 저를 위한 아픔의 눈물 넘어 치유의 눈물이라고 생각해요.

아픔이 있지만 치유를 관객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네요. 이번 가시고기 공연은 언제까지 이어지나요?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6월 29일까지 무대에 올려져요. 좋은 소식이 있는데 가시고기를 앵콜로 해달라고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또 큰 극장이 개관하는데 개관작 겸 장기 프로젝트로 무대에 올려 질거에요. 저희 뉴데이픽쳐스 대표하고 이야기가 잘 진행되고 있어요.

지난 09년 1월에 ‘기러기 아빠’ 음반을 내셨네요. 음반과 책 등을 낼 생각이 있는지요?

사실 음반과 책은 더 시간이 흘렸으면 해요. 자료도 수집을 해야 하고요. 이유는 저를 위한 게 아니라 저를 아시는 분들을 위한 훌륭한 선물인 책과 음반이 돼야죠. 아이와 함께 했던 신앙생활, 봉사, 고마움과 감사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저희 딸과 자료를 직접 모아 쓴 에세이 말이죠. 책은 딸 이름도 들어가고 아이티 이야기도 넣고 2년 후 쯤에 해볼까 해요.

 대외적인 활동 말고 방송에서는 언제 만나볼 수 있나요?

 할 만큼 했잖아요?(웃음) 연달아 작품 두 번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웃음). '민들레 바람되어'와 이 연극이 끝난 후 당분간 두세 달 충전 해야죠. 오는 9월엔, 아이티 어린이들이 보고 싶어서 갑니다. 귀국하면 사극 드라마에 투입이 돼요. 내년 상반기까지 드라마를 합니다. 연극 후에 충전해 봤자 두세 달이에요, 금방 가잖아요(웃음)

 '가시고기' 이 연극 아버지들이 많이 보고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 아버지들이 가장 공감할까요?

 요즘 아버지들이 다들 공허함을 느껴요. ‘내가 가정에서 아버지 역할을 잘하고 있나?’

아버지 위치는 잊지 않고 있지만 자아의식 속에 자꾸 흐릿해지는 아버지 역할을 되물어 보고 계실 거예요.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나?’ 살아가는 이유가 아버지인 본인도 있지만 내가 지켜야 되는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거죠. 이번 연극을 통해 잊고 있던 아버지 역할과 모습에 대해 뚜렷하게 가시화 시키죠. 이런 연유로 아버지 관객이 박수도 많이 쳐줘요.

게다가 어린이들도 이외로 좋아해요.

 “암 말기 아버지...가출하던 나를 쫒아 오시더니 2만원을 접어 주셨어요.

이 녀석아...친구 만나려면 돈이 있어야지...중학교때 일이예요...“ (중간) 

배우 이광기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나요?

▲ 아픈 사람이 아픈 연기를 할 수 있다를 보여준 배우 이광기. 엄마를 부탁해와 친정엄마 등이 넘쳐 나지만 정작 아버지를 위한 이야기를 들고 나와 부성애를 보여주고 있다.

 저의 아버지는 81년에 작고했어요. 너무 오래 잊고 살아왔죠. 이번 공연 후에 아버지 묘소를 찾아 뵐 거예요. 제가 19살에 재수를 했어요. 암 합병증으로 운명을 달리 했어요. 몸이 아픈 와중에도 아들을 위해 사셨어요. 정말 우리 아버지도 가시고기 같은 아버지였어요. 한 번은 아버지와 언쟁이 있었죠. 저는 친구들 만나러 가야 되고 아버지는 어떤 연유로 가지 말라 하셨죠. 결국에 제가 싸우다 지쳐서 나가 버리니 아버지가 뒤쫓아 오시더라고요. 저 잡으러 오는 줄 알았는데 글쎄 제 주머니 속에 2만원을 고이 접어서 넣어 주시더라고요.

그때 하신 말씀이 ‘친구들 만나러 가는데 돈은 있어야 되지 않겠나?’ 하셨죠.

집을 향해 돌아 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죠. 그때가 암 말기였을 때였어요(잠시 침묵)

그날 혼자서 못 마시던 소주를 2병사서 컵도 없이 담벼락에 앉아서 새벽까지 컵도 없이 마셨죠. ‘꿀컥 꿀컥’ 한 병 마시니 지구가 뒤집어 지더라고요, 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도 못하고 나 혼자 미안해서 엄청 울었죠.

가시고기 중에 주옥같은 대사가 많아요. 특별히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면?

▲ 연극 가시고기서 시인이자 아버지인 정호연 역으로 열연하는 배우 이광기. 이번 연극에서 이광기 배우는 아픔을 넘어 치유의 눈물로 다가서는 연기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다 주옥같죠. 청년 다음이의 대사 중에 ‘세상의 아버지는 영원하다. 영원히 항상 너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아이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가는 거야’ 이런 거죠. 개인적으로는 ‘우리 다음이 눈 내리는 거 정말 좋아했었는데’. 저희 아이에게 한 말과 같았어요. ‘필리핀에서 한국에 가면 눈 볼 수 있겠다’ 결국 그토록 좋아하던 눈을 못 봤죠. 눈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게 참 아프죠. 2009년 5월 달에 귀국해서 11월에 눈을 못보고 그렇게 됐죠.

 85년에 고2 때부터 배우를 해온 걸로 알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을 꼽자면?

 네, 85년도에 시작했어요. 26년이 흘렸네요. 2000년도 태조 왕건 시청률이 56% 나왔고 비중도 컸어요. 이 작품으로 상도 받고 연기상도 받고 15년간의 무명 생활을 씻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라 잊을 수가 없어요. 연극으로는 이 ‘가시고기’가 오랫동안 남겠죠. 몇 년 동안 해야 될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하면 감동이 배가되고 좋아하시고 관객이 연극을 본 후 '행복했다'라고 말해주니 제가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가시고기는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다’라고 다짐해요. 처음에 연습실이 다 울음 바다였죠. 저 뿐만 아니라 연극 스텝들도 다 울고, 무대에서 관객을 보면 처음에 훌쩍 훌쩍 울다가 아예 대놓고 펑펑 우세요(웃음).

 앞으로 이런 역할과 작품을 꼭 해보고 싶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는 배우가 어떤 역할을 규정짓고, 하나 만을 위해서 생각하면 안 될 거 같아요.

주어진 역할은 저희 주관적인 생각보다는 캐스팅에 있다고 봐요. '객관적으로 저를 보고 맡겼구나'를 우선시해요. 신중해야 하죠. 제작자에게는 흥행 참패는 물질과 관련되고 제작비랑 관련되니깐요. 물론 저도 재검토를 하겠지만 오케이 후에는 어떤 역할이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최고의 설정을 통해 최고의 연기자가 되는 게 저의 바람이고 보람이죠.

 연예계의 마당발이라 알려져 있어요. 부활의 김태원과 김구라 동료 배우들이 가시고기 연극에 카메오로도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구요.

 아니에요. 마당발이라뇨.(웃음) 저는 일을 많이 만드는 편이라 사람들을 아무래도 많이 만날 수 밖에 없죠, 서로 만나 진심이 통하다보니 그렇게 사람들이 많아진 것같아요. 그리고 공연장에 온 부활의 김태원, 김구라, 이홍렬, 김용호 등 방송국 선후배들은 '이러다 너 쓰러지는 거 아니냐 무대에서 에너지를 너무 폭발시킨다. 보약이라도 해먹어야 되지 않냐'라고 전해 주더라고요(웃음)

▲ 인터뷰가 끝난 후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직접 풍금을 연주해주고 있다. 이 장면은 연극 한 장면

 요사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시나요?

 요즈음 자꾸 비우고 버리려고 해요. 그래도 사람인지라 욕심이 생길 때 그때도 버려요.

모든 게 다 내 것이 아니다라고 할 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즐거워요. 배역이나 스케줄이 5-6개 되다가 1-2개로 줄어들면 어떻겠어요?

오히려 비움의 마음으로 지금은 많이 편해요. 오히려 명쾌하게 되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밀알이 되서 저를 바뀌게 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인생에 대한 터닝 포인트가 된거죠.

*가시고기 수컷은 산란 후 떠나버린 암컷을 대신해 최후까지 알을 지키며 태어난 어린 가시고기들의 먹이까지 되는 부성애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