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고추
[시] 고추
  • 이소리 / 시인, 본지논설위원
  • 승인 2011.06.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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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유명선(시인)

오월의 달콤한 햇살 
육, 칠월 살갗이 벗겨질 뜨거움 
가슴속에 연두 빛 사연으로 꾹꾹 쟁여놓다
뻐꾹새소리 산 능선 넘기 숨이 차오면
겨우 달아오르는 무심한 심장
여름 내 무던히도 오가던 정성
진저리 치도록 쓰다듬던 손길
몸이 기억해 비로소 달구어지는 


기다림의 절정
밭둑가 고개 숙인 해바라기 
장인 수염 밑에서도 피한다는 가을비 슬쩍 흩뿌려
밭고랑 사이 꿩 놀라 날아오르면 
간직해 온 사랑
조심스레 방안 가득 노란 등불 밝혀 걸고
장막을 거두어 내
더는 감출 것도 없이 
남은 그리움까지도 뽀송뽀송 마를 수 있게


햇빛,
딱 열흘 동안만 내 몸을 더 불살라주게

 

*그래.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사랑이 아무리 급하다 해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고추가 제대로 빨갛게 익기 위해서도“여름 내 무던히도 오가던 정성 / 진저리 치도록 쓰다듬던 손길 / 몸이 기억해 비로소 달구어지는 /  기다림의 절정”이 없이는 제대로 익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