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억해야 할 20대에 사라진 문학가들의 유언과 인권
우리가 기억해야 할 20대에 사라진 문학가들의 유언과 인권
  • 이수경 /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1.07.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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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몽규, 윤 동주, 마키무라 코, 츠루 아키라, 고바야시 다키지의 생명과 바꾼 평화 사회

2011년7월4일 월요일 오전, 일본의 교원양성대학교를 대표하는 도쿄가쿠게이대학교에서 교사가 될 수강생 약200여명을 포함한 특별기획이 열렸다.

 

 

필자는 못 다한 유학의 꿈을 교육의 현장에서 재검토하고 평화를 생각하는 기회로 삼고자 윤동주 추모회의 모임을 개최해 왔으나, 국제 인권 교육과 한일 근대사, 평화학 수업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는 윤동주 뿐이 아니라 20대의 나이에 무력 탄압이 횡행하던 공간의 희생으로 사라진 문학가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모두가 좋은 세상이 되길 바랬다가 처참히 죽어간 강점기 공간의 실태를 통해, 몇 년 뒤에는 교사로 활동할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심어주는 것은 물론, 그들 문학가들이 추구한 곧고 바른 삶과 명예를 회복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기획한 것이다.

국가 간의 관계가 그릇되면 100년이 지나도 정상 회복이 힘들다는 것은 한일병탄100년의 상황을 봐서도 잘 아는 바, 결코 침략 전쟁이나 분쟁으로 인해 죄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 위에 역사를 더 이상 얼룩지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다짐을 폭력의 희생이 된 문학을 사랑한 그들을 통해서 재삼 다짐해 보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송몽규와 윤동주는 중국 동북지방은 물론 한반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에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두 사람은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라 할 수 있다.1917년의 9월과 12월에 같은 땅(지금의 연변 용정시)에서 태어나 같이 연희 전문학교에서 문학에 경도하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교토의 하숙집에서 한국말로 민족 문화 계승과 한민족의 독립을 말했다는 이유로 시모가모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1945년 2월과 3월에 같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원인모를 옥사를 당했다.

송몽규도 일찌기 문학적 재질이 뛰어났었으나 그는 직접 독립 운동에 가담하여 활동을 하다 일본 특고에 요주의 인물로 찍혔고, 윤동주는 자신의 작품을 책으로 발행하려다가 시기적으로 좋지 않아서 친구에게 원고를 맡겨둔게 다행히도 남겨져서 나중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으로 후세에 전해지게 된 다.

당시의 일본은 진주만 공격에서 대패하여 정신 무장으로 총력전 태세에 돌입하던 시기였고, 식민지 출신 사람들이 순수히 내 나라 내 민족 걱정을 하여도 모든게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처벌 받던 시기였기에 [생각한다는 것]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던 암흑의 시대였다. 그 결과,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지배국이 아닌 피지배국의 자신들의 입장에서 미래를 걱정하고, 사람답게 살 수있는 평화스러운 삶을 지향하는게 용서받지 못하는 광기의 시대가 된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천재시인으로 불렸으면서도 전쟁 준비를 위한 군사훈련에 의문을 던지고 영창 생활을 한 뒤, 일본의 침략 전쟁의 모순을 시(센류)로 발표하다가 28세의 나이로 고문후유증으로 죽어간 츠루 아키라(鶴彬; 1909-1937) 와, 신동으로 불리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 왕족 앞에서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강의를 했지만 침략 전쟁 준비를 위한 군사 훈련의 모순에 저항하며 제국주의 일본의 폭압과 식민지 조선이 처해졌던 비참한 상황을 치밀하게 파악하여 서사시[간도 빨치산의 노래]를 발표하며 조선의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다 체포를 반복해서 당하고 심한 고문으로 인해 26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마키무라 코(槇村浩; 1912-1937), 가혹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으로 고생하는 노동자들의 생활 실태를 고발하고 그 뒤에 숨겨진 국가 권력의 의도를 규명하여 [게공선]이란 작품 등을 발표하여 처참한 노예 생활 같은 노동자들의 생활 향상을 호소하다가 스파이에 의해 체포된 당일날 저녁에 고문으로 인해 향년 29세의 삶을 마감하게 된 고바야시 다키지(小林多喜二;1903-1933) .

그들은 초라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짐승적 본능과 야욕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암흑 속에서,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관, 그들이 추구하는 평등하고 평화스러운 세상을 위해 결코 타협하지 않다가 희생이 된 것이다. 비록 가난하여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없었을지라도 사람이 살아야 할 인간다운 환경을 주장하며, 인간의 올바른 도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 숭고한 정신은 민족이나 국경을 초월한 인도 박애 정신으로 길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영웅을 추앙하는 정신 무장 사상을 선호하는 사회보다, 모든 시민들이 사람답게 불평등이 없도록 복지 및 환경, 인권이 보장된 안정된 사회가 풍요로운 선진국임을 잊지 말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선진 민주 시민사회임을 다시 한번 그들의 삶에서 확인한 기회가 되었고, 많은 일본인 학생들이 송몽규와 윤동주를 알고,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문을 통해 미래를 향한 교육의 역할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7월4일 Program

・인사 및 인물 소개, 근대사 상황 소개
・서예가 다나카 유운(田中佑雲)씨의 한국 관련의 작품 설명과 한일 가교 역할에 나선 이유
・강연:곤다니 노부코(紺谷延子・교토 우지시 윤동주 시비건립위원회 사무국장)씨

・곤다니씨와 경인 교대 유학생 백 소라씨, 근대 문학가 구라모토(倉本)씨에 의한 시 낭송

① 윤동주의 [서시][새로운 길]
② 츠루 아키라의 시(센류)
③ 송몽규의 [밤](『조선일보』1938년9월12일 게재지 참고)
・기타 반주; 히가시지마 미라이(東島未来, 도쿄가쿠게이대학교 포크송 동아리 대표)

참고; 별지 소개를 했던 윤동주의 작품은 생략하고, 여기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츠루 아키라와 송몽규가 적었던 시를 소개해 둔다.
츠루의 센류(5•7•5조의 17음 정형시)작품의 1번은 16살 때 느낀 사랑에 대한 감정을 표한 것이고, 2번은 전시 체재 속에서 총알 받이 군인들을 많이 낳아서 키우면 훈장을 주겠다는 당시의 국가 정책을 비아냥거린 시이다.
1) 暴風と海の恋を見ましたか(폭풍과 바다의 사랑을 보았는지요?)
2) タマ除けを産めよ殖やせよ勲章やろう
(총알받이를 낳아라 늘려라 훈장을 주마)

《밤(夜)》

                      延專(現在の延世大__)  宋 夢奎

고요히 沈澱된 어둠  (__かに夜の帳が下りた暗闇)

만지울 듯 무거웁고 (__れるそうで重く)

밤은 바다보다도 깊구나  (夜は海よりも深い)

홀로 밤 헤아리는 이 맘은 (一人夜を過ごすこの心は)

險한 山길을 걷고―――  (__しい山道を__き)

 

―――나의 꿈은 밤보다도 깊어 (我が夢は夜よりも深し)


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     (__れ動く水の音を後に)

머-ㄹ 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遠くの星を見上げ口笛を吹く)

(1938년8월16일지음. 『조선일보』1938년 9월12일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