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대해 말 할 때의 언어사용 습관
문화에 대해 말 할 때의 언어사용 습관
  • 박 래 경 /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 승인 2011.07.14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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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는 괴테 (W.v.Goethe) 의 말을 그대로 따를것 같으면,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 전제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에는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알기 위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간과 노력의 투입이 선행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포함된다.

그래서 관찰 대상이 되는 물적인 상태로서의 텍스트부터 제대로 되어있느냐의 확인부터 시작해서 작품 또는 유물을 분석 ,해석하고 그 내용을 제대로 밝히고 제대로 전달 할 수 있는 능력을 말 하는 것이 되겠다.  그러니까 그런 능력 기르기가 계속 문제 된다는 말이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고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과거 문화예술을 제대로 볼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말과 같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은 사실 이다.

한편 오늘날과 같이 일반 대중의 왕성한 지적욕구와 호기심이 전문가의 전문영역에까지 파고들게 되고, 특히 문화예술 분야의  탐구에서, 그것이 충족되기를 기대하는 시대에는 어떻게든 이에 대한 타개책을 강구해 보아야할 필요성이 생긴다. 말하자면 전문 학문연구의 대중화 작업에의 관심이다. 사실 전문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대상과 그 연구방법은 학문적인 전문성을 지키며 키워 가는 일을 위한 불가결한 요건이다.

그러나 이제 그 연구 결과로서의 성과인 열매는 지난날의 과거와 같이 전문가의 전유물만은 결코 아니게 되었다. 오늘날의 미술관, 박물관에서 소위 대중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왕성하게 요구되고 또한 그렇게 실행되고 있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환경의 새로운 변화 과정에서는 예기치 않던  새로운 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일상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전문적인 내용과 연계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 드려질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리 정리된 설명문이나 소개책자에서가 아니라  작품이나 유물을 관람객에게 직접 연계시켜 소개, 설명할 때의 경우가 거기에 해당 한다. 그것도 과거 시대 보다 특히 현대작품의 경우에 그런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가끔 했던 말을 도로 머금고 없던 일로 행동 하거나, 아니면 과장된 형용으로 내용과 맞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되거나 아니면 전혀 맥락이 통하지 않는 이념성을 강조하여  엉뚱한 성향의 작품으로  연결 짓게 되는 일도 심심찮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반인을 상대로 한 교육 현장에는 그 내용이나 상황에 따라 예기치 않는 새로운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큰일이나, 눈에 띄는 야단스러운 일에는 관심을 기우리고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비교적 조용하고 세부적인 작은 일이라고 볼 수 있는 작은 범위의 행동 영역에는 그러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문화 예술을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보는 일의 축적을 위해서 는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교육 환경과 현실을 분석하고 경우에 따라 좋은 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논의된 사례들은 열심히 살피고 일하는 교육 현장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더 잘 설명하고 더 잘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욕에서 오히려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큐레이터나 기관의 책임자인 관장과 같이 전문가의 경우에는 정도는 다르지만 유사한 일들이 많지는 않지만, 더러는 일어날 소지는 있다. 그 경우 역시 일상적인 생활습관에서  오는 언어사용에서 기인 한다. 가령 그 기관을 방문한 관람객이나 외국 전문가, 혹은 작가와의  면담 도중에, 한번 입 밖에 내뱉은 말을 나중에 도로 입속에 넣음으로써 약속 이행을 하지 않게 되는 소위 식언 (食 言)을 한다거나 아니면, 자국 문화예술을 소개하면서 지나친 상찬의 표현을 아끼지 않고 내 뱉는 말이나 글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말 하는 것이다.

사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런 일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가시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 사람들은 더 하다고 그냥 던져 버릴 일은 어느 모로 보더라도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하찮게 여겼던 일에서 모르면 몰라도 적지 않는 댓가를 나중에 치를 일이 생긴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심각해진다. 어찌됐던 오늘의 우리 일상 속에는 식언 하는 버릇이나 과다, 과잉의 표현 행위가 팽배해 있다는 점만큼은 기억 해 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그런 버릇이 들지 않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겠다.

오늘날‘세계화’라는 시대적 환경에서는 과거에 없던 다원적인 문화적 실체들을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우리문화와의 연관성이 예견된다면 그 문화에 대한 관심 고조는 말 할 것도 없고 그런 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지평의 확대는 우리문화 연구영역의  확대를 동시에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가령 태극 도형과 같은 상징 도형의 하나의 예를 통해 과거역사의 얽힌 실 타레를 하나 하나 풀어 나가듯이 연결고리를 찾아 나선다면, 그것이 비록 세대를 이어 계속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실제를 탐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무슨 식언과 같은 언행으로 거짓을 행하고 과격, 과장의 표현으로 허세를 부릴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는 좀 더 문화 일반에 대해서 의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늘의 시대에 다른 나라는 자국 문화를 어떻게 알리면서 지켜 나가고 있는가를 살피는 일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한다. 우리가 5천년 역사의 문화를 가졌다면 다른 나라의 그러한 시기의 문화를 가진 유적 유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의 예로 아일랜드 수도 더불린 (Dublin)에서 서북쪽 약 30 킬로 떨어진 곳에 뉴 그렌지( New Grange) 라는 유적지가 있다. 그 유적 입구에는 기원전 3200년경의 것이라는, 방향을 달리한 세 개 씩의 나선형 문양이 두 묶음으로  뚜렷이 새겨진  자연석  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선사문화를 그들이 자랑할 만한 자국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세계에 알리며 그런  책자 문구들이 누구나 볼 수 있게 준비 되어 있다. 그런 소개 문구 속에 그 어디에서도 단정적이고 독단적인 상찬의 어귀를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러한 겸손한 표현은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책자에도 마찬가지 톤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그들의 문화 자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표현 전달의 행위가 되겠다. 말하자면 선사시대 선조들 못지않게 진지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후세인들의 깊은 심정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게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의 현황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마음놓고 진정성을 가지고 외래인들과 얘기하면서 식언이나 과도한 과장에 의한 스스로의 과찬을 넘어서서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가 하는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 눈에 제대로 보일 정도로 우리의 과거문화에 대한 앎을 축적해 왔던가, 더욱이 한반도의 좁은 공간 범위를 벗어나서, 오늘의 지구촌 차원의 전 지구적인, 총체적 시각에서 우리 문화 역사를 조망 해 본적이 있는가, 적어도 전문 학자의 울타리를 넘어 서서 일반대중을 위해  그런 일들을  함께 진지하게  살펴 볼 수 있는 일에 충분히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몇 십년 전의 과거나  요즘이나 해외에 나가는 학생들이나 기성세대나 타지 사람들에게서 늘 지적당하게 되는 공통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너희들은 너희 나라문화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 점 한번 다 같이 곰곰이 생각 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 한다. 세계인들과 기탄없이 소통할 수 있는 높은 문화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