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코너]피아노 실기고사
[에세이 코너]피아노 실기고사
  • 천지영 / 수필가
  • 승인 2011.07.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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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실기시험은 비공개와 공개로 나뉜다. 비공개는 피아노만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인데 처음에는 시험관이 옆에 있었으나 요즘은 커튼으로 학생과 시험관 사이를 나눠놓았다. 공개는 무대 위에 올라가서 치는 것으로 3~5명의 교수님이 무대 앞좌석에 앉아있는데, 그쪽은 쳐다도 안보고 피아노 앞으로 가는 것이 떨림 예방에 좋다.

내가 본 시험은 공개였다. 보통 내 앞사람이 연주할 때 같은 시험장 안에 입실해서 대기한다. 그래서 앞사람 연주를 듣게 된 것이 이 글의 시작이다. 처음 곡은 쇼팽 에튀드 op.10 no.1이었다. 에튀드는 프랑스어로, 번역하면 연습곡이다. 쇼팽이 재미없는 음표나열 연습곡에 멜로디를 주어서 큰 인기를 얻은 곡이다.

op는 곡이 만들어진 순서를 말한다. 그 안에서 1번이라는 뜻이다. 4번이나 12번 보다는 쉬운 편이지만 이 곡 들고 나가면 심사위원이 연필을 까딱거리며 미스터치수를 센다는, 틀리기 쉽고 까다로운 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설대로 건반 미스가 났다. 설상가상으로 이 녀석은 한 번 나타나면 두 번, 세 번 계속 하염없이 튀어나온다. 내 앞사람도 한 번 미스가 나자 계속해서 미스가 났다.

저 마음이 어쩔까 싶어서 측은하게 보고 있는데 이 애가 코를 마시는 소리가 피아노 소리보다 크게 났다. 점점 숨소리도 커지고 어깨가 출렁였다. 그 때 아무 감정 없이 메마른 종소리가 났다. 다음 곡을 치라는 신호다. 처음 곡을 망쳤을 경우에는 최대한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심호흡을 한 뒤 다음 곡을 연주하는 것이 좋은데 이 학생은 그냥 연달아 계속 연주했다. 그리고 눈물방울이 건반에 떨어져 튀는 것처럼 슬픈 소나타를 쳤다. 이미 눈물 쏟고 코를 훌쩍이느라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굴렸을 것이리라.

가끔 그 여자애가 코를 마시던 소리와 뒷모습이 떠오른다. 나와는 달라서이다. 나는 내가 기울인 노력에 비해 결과가 하찮다고 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그렇다면 저 학생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찾은 답은 태도에 있었다. 임하는 태도. 그 성실성 여하가 달랐던 것이다.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했으면 그렇게 온 몸을 떨며 울었을까.

그깟 시험 하나 망친 것으로.. 아, 이것이다. 이 마음가짐이 달랐던 것일 거다. 그녀에게는 어떤 것도‘그깟’이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