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들‘반란’그 속내엔?
40대 여성들‘반란’그 속내엔?
  •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1.07.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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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원화 첫 소설집 <길을 묻다> 펴내

사랑! 사람들 으뜸 화두인 사랑은 무엇일까. 그 시작과 끝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미안! 미안은 또 무엇일까? 미움이나 증오도 아닌 미안은 사랑에게 언제나 고개 숙이는‘사랑의 패잔병’일까. 그대는 정녕 사랑을 믿는가. 사랑은 어쩌면 미움과 증오, 그 사이에 머무는 ‘미안’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기에 미안하고, 미안하기에 사랑하고 있지는 않을까.

바다는 늘 꿈을 꾸게 하는 힘이 된다는 여자. 일찍 결혼해 두 아이를 두었고 늘 허공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듯해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는 여자. 그가 다닌 방송통신대와 광주여자대학교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길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여기는 여자.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 관계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여자.

그 여자가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이원화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바다를 낀 작은 섬에서 태어나 바다를 보고 자랐고 바다를 마음 깊숙이 품었다. 그 바다는 그가 바라보는 진짜 바다이기도 했다. 그 바다는 그가 살아가는 이 세상살이이기도 하다. 그 바다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사랑을 위해 아웅다웅 살아가는 것처럼 그가 발을 디딘 이 세상도 그랬다.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새로운 물음표...( ? )
“하루하루가 태풍이 몰려오는 먼 바다의 파도 같았습니다. 출렁이는 파도에 멀미를 하며 몸살을 앓았습니다. 이 책을 엮으며 알았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허방에 서 있듯 위태로우면서도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다처럼 지켜봐주시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작가의 말’ 몇 토막

2006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길을 묻다’가 당선되면서 글동네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작가 이원화. 그가 첫 단편집 <길을 묻다>(문학들)를 펴냈다. 이 소설집은 작가 스스로 겪었던 이 세상살이에 대한 속내 깊은 슬픔이자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새로운 물음표다. 단편‘길을 묻다’에서‘나’가 김 기자에게“사랑을 믿으세요?”라고 물은 것도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소설집에는 단편 7편이 마치 바다 속에서 살아가는 숱한 생명들 몸부림으로 파닥거리고 있다. 이 단편들은 간혹 혼돈과 불안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기도 하고, 조개가 되기도 하고, 파래가 되기도 하고, 불가사리가 되기도 한다.‘길을 묻다’,‘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늘 그런 것’,‘그곳이 어딘지’,‘그 눈빛의 깊이는 얼마였을까’,‘하루’,‘파문’이 그것.

작가 이원화는“‘죽음’이라는 화두에서 시작해 이와 연결된 현실적인‘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되짚는다. 그는“혼돈과 불안 속에서도 최소한의 생활을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삶을 주로 다뤘다”며“우리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처한 부조화의 삶으로 고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보여 주었으면 한다”고 못 박았다.

생활전선에 뛰어든 40대 여성들이 겪는 사랑
“그때는 몰랐다.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용재를 사랑했으므로, 사랑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미숙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스스로 옷고름을 자르지 않으려고 오늘까지 버텨온 미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은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남편의 손길에서 느껴지던 뱀 같은 차가움이 아닌...”-‘그곳이 어딘지’ 몇 토막

이원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대부분은 남편을 잃고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40대 허리춤에 접어든 여자들이다. 여기에 죽은 남편에 대한 애틋한 기억, 다른 남자와 만남 그 사이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여자, 남편이 있어도 외롭고 괴로운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그 40대 여자들이다.

그렇다고 작가가 그리는 40대 여성들이 은밀한(?) 사랑타령을 하거나 이상한 감정놀음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과 사별한 여자가 겪는 고통을 다룬 단편 ‘길을 묻다’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단편 ‘늘 그런 것’에 나오는 여자 이경, 단편 ‘파문’에 나오는 여자 현금은 대형 스포츠센터 수영장 관리업무를 맡은 직장여성이다.

단편 ‘그 눈빛의 깊이는 얼마였을까’에 나오는 인경은 보험회사에서 신입보험사원들을 교육하는 교육업무를 맡고 있다. 단편 ‘그곳이 어딘지’에 나오는 미숙은 시숙과 윗동서가 꾸리는 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단편 ‘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에 나오는 희수와 은서, 미정은 봉제공장에서 ‘공순이’ 생활을 하다가 동네식당 혹은 어부 아내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사랑’이‘미안’이 되는 새로운 날들에 대한 애탐
“인경은 는개 피어오르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지치고 힘이 들 때, 엄마 품처럼 아늑하게 인경을 품어주곤 하던 바다였다. 그녀는 지금 썰물의 바다에 서 있다. 푸른 물의 생명력으로 바다의 온갖 생명들을 키워내던 그녀의 바다가 바탕을 드러낸 채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그 눈빛의 깊이는 얼마였을까’몇 토막

이 소설에서“는개 피어오르는 바다”는 인경이 사랑이 모든 걸 안아줄 것이라 여겼던 처녀 때를 말하는 듯하다.“썰물의 바다”는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40대 허리춤께 있는 인경 그 자신이며, “그녀의 바다가 바탕을 드러낸 채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삶, 사랑이 미안이 되는 그런 새로운 날들에 대한 애탐이다.

소설가 채희윤은 “그녀의 세상에 대한 진술은 명확하고, 거리낌 없다”고 말한다. 그는“작가 이원화의 체험에서 육화된 리얼리즘은 때때로 너무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나오는 까닭에 일상에 침윤되어 있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라며 “그 자리가 소설가로서 그녀의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못 박았다.

문학평론가 변지연은“이원화의 소설들에서는 인물의 심리나 사건의 정황에 대한 묘사 부분 또한 물과 바다의 이미지, 그리고 멸치, 붕어 등 물과 연관된 소재들이 자주 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라며“이원화의 모국어는 다름 아닌 물의 언어, 그 중에서도 특히 소금기와 해풍 가득한 바닷물의 언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