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문 스님 "조선왕실의궤 반환은 이론보다 현실 극복한 쾌거"
혜문 스님 "조선왕실의궤 반환은 이론보다 현실 극복한 쾌거"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7.2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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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식으로 돌아 오는 '환지본처',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 펼쳐

조선왕실의궤 반환은 일본 국왕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간접 사과 받아낸 쾌거

"조선왕실의궤 반환의 과정은 법률적ㆍ학문적 이론이 아닌, 문화재 환수에 있어 실질적인 현실의 한계를 넘었던 사례다. 일본 천황궁에 소장된 조선왕실의궤가 2010년 8월 10일 일본 총리의 담화를 통해 반환이 결정된, 한 국가의 정상을 움직이게 했고 정치적 책임을 지어야 할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반환됐다"

▲ 혜문 스님은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 사무총장에도 활동하고 있으며 환지본처(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온다)의 불교 정신의 사회화 운동에서 기인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혜문 스님(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 사무총장)이 지난 19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문화재 환수 국제포럼에서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대한 사례 발표에서 속내를 털어났다.

 또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의의를 설명하며 "과거 문화재 유출은 약자에서 강자로,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서구 열강으로의 상향식 이동 구조다. 뺏아긴 민족의 정신이 담긴 문화재가 제자리 찾기로 자리잡았으면 한다"라며 "환지본처(본래의 자리로 되돌아 온다)라는 불교 정신의 사회화 운동에서 기인됐다"라고 밝혔다.

 "1965년 한일협정은 나쁜 선례다. 경제개발의 논리에 밀려서 문화재에 관한 문제가 뒷전으로 처리됐다"라면서 "일본으로 건너간 4천 4백 79점의 문화재 중에서 천 4백점으로 종결됐다. 그 문구도 '반환'이 아닌 '기증'으로 대체됐다. 더 우스운건 그때 돌아온 문화재는 짚신 세켤레,우체국 도장,우편발송용 도장, 전화국 간판 등 30점과 현재 가치로 보면 십만원 내외의 문화재가 대부분이다"라면서 경제 논리에 밀린 문화재 환수 노력이 미흡했던 지난 한일협정을 꼬집었다.

 이어 혜문 스님은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위해 ▲ 정부가 요구할 수 없는 시점에서 입법부인 17,8대 국회를 통한 추진 ▲ 사법부인 서울중앙지법 재판 수리후, 일본 궁내청 출석요구서와 송장 송부 ▲ 행정부인 정상회담 통한 문제제기 ▲ 유네스코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연대 ▲ 일본내에서 시민사회, 국회의원, 언론 협조를 통한 연대 ▲ 2010년 8월 일본총리 담화에 의궤 반환을 담겠다는 강한 의지를 통해 전략적인 접근 방안을 세워, 4년 간 걸친 반환 노력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사례 발표를 이어갔다.

▲ 혜문 스님이 조선왕조의궤 반환 과정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한국유네스코 사진제공-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왕조의궤' 반환은 분명 대비된다. 지난 2006년 5월 일본은 조선왕조실록 47책의 학술교류차원에서 서울대로 인도하겠다는 반환 발표가 있었다. 이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의미의 성공은 아니라고 전했다.

 단순히 종이와 먹으로 쓰인 실록의 반환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과거사 청산과 한일관계의 아픔을 치유하는 의미에서는 기증을 통한 지난 실록의 반환 과정은 절반의 성공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실의궤 반환은 조선왕조실록(도쿄대 국립대학 소장)과 달리 일본 왕실인 궁내청 소유의 국유 재산으로써, 식민지 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간접적 방식의 일본 왕실 사과를 받아낸 쾌거라고 결론 지었다.

 한편 조선왕실의궤는 왕실의 주요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등을 상세하게 적고 그림으로 만든 문서다. 1922년 일본 조선총독부에 의해 81종 167책이 일본 궁내청으로 반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