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코너] 15번가의 커피와 차
[에세이코너] 15번가의 커피와 차
  • 정충영 수필가
  • 승인 2011.08.1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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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충영 수필가
‘15번가의 커피와 차(15th Avenue Coffee & Tea)’라는 간판을 단 찻집이 미국 북서부 해안 도시 시애틀 15번가에 문을 연 것은 2009년 7월 25일이다. 골동품 점에서 옮겨온 것 같은 테이블과 의자에다 라이브 뮤직도 연주된다.

 깨끗하고 차갑고 메마른 스타벅스의 분위기와 달리 따뜻하고 살갑게 환대하는 분위기의 찻집. 도시인들은 이곳에서 ‘매끈한 골리앗’ 스타벅스에선 느낄 수 없는 위안을 받는다. 거대한 체인을 이루어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나 비슷한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성업 중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가 탄생한 도시 시애틀에서 독립적이고 고풍스런 이 찻집이 인기상승중이라 한다.

  전자동 커피머신에서 자동으로 믹스해 종이컵에 일정량을 채워주는 커피대신 수동 커피 머신을 사용해 바리스타의 섬세한 터치로  머그잔에 따라 부어주는 커피가 사람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녹여주나 보다.
  직선의 테이블과 의자가 주는 단절감과 딱딱한 감촉에 테이크아웃(take out)이 대세인 유리벽 안의 커피 전문점에선 스쳐가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산만해진다.

 거대한 체인점에서 대량으로 공급받아 오래 묵은 커피원두로 전자동기계가 뽑아주는 종이 커피 잔을 받아든 사람들은 싸늘한 도시에 일렁이는 소외감의 파도에 휩쓸린다.

 부드러운 곡선의 빈티지 풍 차탁과 의자의 포용하는 느낌, 갓 볶아낸 커피콩의 진한 향기, 마음을 울리는 선율들이 어우러진 이 예스런 찻집이 비정한 도시에서 쓸쓸한 사람들을 오아시스처럼 빨아들이고 있나보다.

 -스타벅스에서 영감을 받아서- ‘15번가의 커피와 차’라는 간판 밑에 작게 써진 이 말은 이 찻집 주인의 정체를 짐작케 한다. 고객의 빠른 회전으로 매상을 올리려는 속셈이 처음엔 통했지만 돈만 아는 야박함에 고객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판매 부진으로 문 닫는 지점이 늘어나자 스타벅스 체인의 경영진이 생각해 낸 이 실험적인 찻집은 하강곡선을 타고 있던 공룡 그룹의 돌파구가 되고 있다. 한결같이 깨끗하고 차갑고 메마른 초현대식 분위기에서 다정하고 따뜻한 빈티지 풍으로의 발상의 전환이 성공의 키포인트다. ‘태양 아래 새로운 건 없다.’ 는 말처럼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스럽고 포근한 정에 끌리고 있나보다.

 TV나 오디오 기구들이 디지털화 되면서 빠르고 쉽고 간편한 디지털에도 허점이 많이 드러나자 그 해결책으로 자연적인 파장을 가능한 한 그대로 재현해내는 방식인 아날로그와 눈금과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을 혼합한 새로운 기술인 ‘아나디지’의 세계가 탄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