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행원리 4.3 사건, 20세기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하나
제주 행원리 4.3 사건, 20세기 가장 비극적인 사건의 하나
  • 홍경찬 기자
  • 승인 2011.08.2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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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복판에서 벌여진 공개 처형, 주민들 스스로 위령탑 건립

[서울문화투데이 홍경찬 기자, 제주] 4.3 당시 행원리에서 일어난 조합장 반장사건은 주민들의 뇌리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 이날의 일은 1948년 11월 19일 오전 9시경 제9연대 12중대 토벌군인들에 의해 마을 책임자들인 조합장 반장을 포함한 28명이 향사 자리였던 마을 공회당에서 한꺼번에 총살당한 사건이다. 현재 그 자리에 들어선 마을회관.

▲ 유네스코 제주 세계자연유산마을 행원리. 4.3 사건 당시 행원리 주민들이 공개 처형된 장소로 지금은 마을회관으로 쓰이고 있다.

 4.3 당시 참혹한 기억들은 행원리 주민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다른 마을과 달리 대부분의 주민 희생이 마을 한 복판에서 벌어졌고 이 광경을 모든 주민들이 지켜보왔기 때문이다.

 4.3은 제주도민들의 줄기찬 진상규명운동에 의해 마침내 2000년 1월 12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정부차원의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됐다.

 이어 2003년 10월 15일 정부는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10월 말 제주를 찾아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보고서 내용에 따라 제주도민들과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공식 사과했다.

▲ 2004년 5월 7일 당시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고향인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행원리 마을회관 앞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해 경철 서청이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의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수는 2만 5천~3만 명으로 추청하며 제주도 내 거의 모든 마을이 4.3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제주 구좌읍 행원리에서 벌어진 4.3 사건은 마을 한복판에서 몰살된 조합장과 반장들인 마을 유지들이었으며 이에 주민들 스스로 위령탑을 건립했다.

 지난 1998년 희생자 93위를 모신 행원리 4.3 사건 희생자위령탑을 제막하고 매해 4월 3일이면 행원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