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코너]1: 29: 300 ,하인리히의 법칙
[에세이 코너]1: 29: 300 ,하인리히의 법칙
  • 김은희 수필가
  • 승인 2011.09.0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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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소리들이 가까워진다. 깨어나 보니 구급차가 도착했다.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구급차에 태워진다.

 차에서 몇 번 토하고 인근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는 내 눈을 보고 여기 저기 초점을 맞춰보라고 하고 팔에는 링거가 꽂혀진다. CT 촬영 등 머리와 심장에 관련된 몇 개의 검사를 하고 몇 시간을 더 병원 응급실에서 안정을 취한 다음 후들거리는 다리를 내딛으며 집으로 향했다.

최근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두 번을 쓰러지면서 온 집안을 놀라게 하고는 큰 병원에서 2주에 걸쳐 여러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단다. 다행이다. 두 번 다 집에서 쓰러졌던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평소처럼 집 거실에 놓인 컴퓨터 앞에서 번역을 하던 중에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 일어나면서 의식을 잃었다. 처음엔 혼자 있다가 그랬기에 그냥 넘어갔었고, 이번엔 마침 친정엄마가 함께 계셨기에 구급차를 불러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장시간을 투자해서 각종 검사까지 해보았지만, 의사들은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는 정도였다.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1 : 29 : 300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1920년대 미국의 여행보험회사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 통제 부서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하인리히는 업무 성격상 많은 사고 통계를 접하게 된다. 그래서 실제 발생한 7만 5,000건의 사고를 정밀 분석하여 1931년에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하인리히는 이 책에서 재해에 의한 피해 정도를 분석해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어떠한지를 숫자상으로 명확히 밝혀냈는데, 그 비율이 바로 1 대 29 대 300이었다. 하인리히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큰 재해가 한 번 발생한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작은 재해가 29번 있었고, 또 운 좋게 재해는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사건이 무려 300번이나 있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어떤 우연한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만한 개연성이 있었던 경미한 사고가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과학적 통계에 근거하여 도출된 하인리히 법칙은 어떤 상황이든 간에 큰 재해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쓰러지기까지 내 몸에도 여러 번의 작은 이상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작은 이상 증세들과 반응들에 귀 기울일 여유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쓰러지는 원인이 뭐냐고 자꾸만 묻는 우리 식구들의 질문에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인체에 대한 인간의 이해정도는 지구에서 육안으로 달을 보며 관찰하는 정도”라고 한 의사의 말이 가장 솔직하면서도 인상 깊게 들렸다. 그런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기 몸의 작은 이상 신호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도 인간사도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주변의 작은 울림과 신호에 조금 더 민감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