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맛골 연가...홍랑 연가
피맛골 연가...홍랑 연가
  • 권대섭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1.09.0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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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아련

 

권대섭 객원논설위원
조선 선조 때 함경도 경성의 관기(관아소속 기생)였던 홍랑은 그곳 북도평사(北道評事)로 부임한 최경창(1539~1583)과 서로 사랑했다. 얼마나 사랑했던지 한양과 북변을 오간 끝에 객사한 최경창을 위해 홍랑이 직접 시묘살이를 했다.

 미색이 출중했던 그녀는 3년 시묘살이를 시작하며 자신의 얼굴을 칼로 난도질했다. 또 숯덩이를 삼켜 성대를 손상시키며 벙어리가 되었다. 젊은 여인이 묘를 지키며 혼자 살면 남자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는 다 늑대인 모양이다. 시묘살이를 끝낸 홍랑은 최경창이 지은 시를 모아 해주최씨 본가를 찾아갔다. 최씨 본가 자손들은 이를 가지고 ‘고죽 최경창 시집’을 내었다. 그리고 기생 신분임에도 의리를 다해 준 홍랑의 고마움을 기려 그녀를 족보에 올리고, 문중 선산에 묻은 후 오늘날 까지 제사와 시제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다율리 해주최씨 문중 묘역이 그 현장이다. 최경창의 묘소 바로 앞에 그녀의 묘도 있다.

 

묏버들 가려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옵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날인가로 여기소서

 함경도 북변에서 서울로 부임지를 옮기게 된 최경창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워 함관령(咸關嶺) 고개까지 따라온 홍랑이 눈물로 석별의 정을 읊은 노래다. 울음을 삼키며 버들가지에 다가간 그녀는 가지 하나를 꺾어 님에게 전한다. 그리고 몸은 떨어져도 연정은 시들지 않아 심기만 하면 다시 싹을 틔우는 묏버들처럼 항상 곁에 있겠다는 심정을 읊은 것이다. 한양까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북변의 기생 신분으로 도성 땅을 밟을 수 없었던 계급사회의 법이 지엄해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던 홍랑이었다. 

 이후 두 연인은 최경창이 다시 함경도로 부임하며 재회의 기회를 갖는 듯 했지만 이듬해 최경창이 다시 성균관 직강직을 제수받아 서울로 오던 중 45세로 객사함으로써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만다.

 400년의 세월이 흐른 2011년 9월. 홍랑의 이름이 다시 사랑의 화신으로 등장했다. 이번엔 기생의 신분이 아니라 양반집 규수로서 서자 김생을 사랑하고 있다. 역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다. 배경은 서울 종로 피맛골. 말을 타고 지나가는 고관대작들의 행렬을 피해 서민들이 바쁜 길을 갈 수 있게 배려해 둔 뒷골목. 바로 그 피맛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다.

 재개발을 앞둔 종로 피맛골. 살구나무 혼령인 행매는 뿌리채 뽑혀 사라질 신세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랑 ‘김생’과 ‘홍랑’의 인연을 회상한다. 조선시대 서자출신인 김생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양반 홍생의 대리시험을 치러준다. 장원급제한 홍생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김생을 죽여 사실을 은페하려 하고, 홍생의 동생인 홍랑은 살구나무 아래서 만났던 김생을 구해준다. 둘은 서로 끌리게 되고...

 뮤지컬 ‘피맛골 연가’를 소개하는 브로셔 내용이다. 관객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전환무대와 모던함을 더한 한복의 아름다운 의상에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다. 국악과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소리와 장소영 음악감독의 주옥같은 넘버들을 폭풍같은 가창력의 배우들이 생동감있게 전해준다. 특히 김생과 홍랑의 애달픈 사랑은 조선시대 실제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사랑을 오버랩 시키며 가슴 저민다.

눈물을 거두고 웃고 또 웃어, 고운 사람아 보내지 않으리.
영원히 함께 하리. 아침은 오지 않으리. 아침은 오지 않으리

날이 새면 헤어져야 하는 연인의 노래다. 오라버니 홍생의 욕심 때문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1900년대 경성(서울)이란 시공간으로 훌쩍 넘어 피맛골 살구나무 혼령 행매의 도움으로 다시 만나는 김생과 홍랑. 조선시대 계급제도란 탐욕이 갈라놓은 실제 사랑의 주인공 최경창과 홍랑이 최씨 문중 후손들의 도움으로 족보와 묘역에서나마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진실한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이렇게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