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즐거운 여행을 꿈꾼다면 입맛부터 바꿔라
[여행칼럼] 즐거운 여행을 꿈꾼다면 입맛부터 바꿔라
  • 정희섭 글로벌문화 전문가
  • 승인 2011.10.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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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나라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이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여행지의 음식을 맛보고 즐길 수 없다면 여행의 묘미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한 나라의 음식에는 한 나라의 사상과 모든 생활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 음식을 통해서 그 나라의 기후와 토양의 성질까지도 알아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음식을 통해서 그 나라 사람들과 친해지고 음식을 통해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음식을 테마로 해서 전세계를 도는 식도락 여행가도 많이 있다. 먹었던 음식을 못 잊어 방문했던 나라를 계속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태국 닭살 덮밥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마누라는 바꿔도 입맛은 못 바꾼다라는 속담 아닌 속담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아내까지 바꿀 수 있는데 왜 입맛은 못 바꾸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난 태국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아니 나에게 이 속담은 좌절을 안겨주었다고 해야 맞을 거 같다. 태국 통신 사업자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일년 동안 태국에서 머물 때의 일이다.

 “ 오늘은 정말 한국 음식을 먹어야겠어요, 아무리 멀어도 한국 식당에 가야겠습니다.”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요.” 
 
 “ 프로젝트가 계속 연기되고 있는데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태국 음식을 드십시다.”

 난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엔지니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매 끼니 때마다 벌어지는 동료들과의 논쟁에 난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지쳐간다기 보다는 태국 통신사업자의 요청 사항에 대응하는 속도가 점점 지연되는 것이 참으로 걱정스러웠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일정은 지연되고 같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엔지니어들은 그런 사실은 망각하고 한국 음식을 고집하는 상황이 정말 싫었다. 한국 음식 때문에 한국 사람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는 고객에게 받는 스트레스보다 더 정도가 심했다. 그것도 음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라니. 나는 한국 음식을 고집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증오심이 불타오를 정도가 되었다.

 지금은 태국 방콕에 지하철도 생기고 BTS라는 스카이 트레인도 생겨서 많이 좋아졌지만 십 년 전 만해도 태국은 가히 교통지옥이다. 러시 아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차가 막힌다. 아침 출근 시간부터 저녁 퇴근 시간까지 방콕의 모든 도로가 막힌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버린다. 택시로 수백 미터를 가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택시에서 내려 걸어가려고 해도 습도가 높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서 수십 미터만 걸어도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차가 막혀도 차 안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태국 쌀국수

 

“ 프로젝트가 지연되니 오늘은 제발 태국 음식을 먹도록 합시다. 한국 식당에 가는데 한 시간, 오는데 한 시간, 식사하는데 한 시간, 한 끼를 먹기 위해 세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너무 낭비라고 생각해요. 우리 주말에 한국 식당에 가서 실컷 먹도록 합시다.” “ 제발 현재의 프로젝트 상황을 이해해주기 바래요. 지금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어요.”
 
 “ 안돼요, 난 오늘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태국 음식은 냄새가 심해서 먹을 수가 없어요.” “태국 음식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싶어져요.”

 다음 날도 난 동료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무려 세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태국 음식도 맛있기만 한데 한국 음식을 고집하는 동료들이 원망스럽기 까지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프로젝트 리더인 나의 말이 이렇게 안 통한 적은 지금까지 없을 정도였다. 음식이 뭐길래 이렇게 심각한 갈등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난 망연자실했다.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왜 이런 사람들과 여기서 음식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어야 하지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을 꽉 채운다.

 물론 나도 얼큰한 김치찌개와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많았다. 빈대떡도 먹고 싶고 김치가 그리웠다. 왜 나는 자장면과 떡볶이가 그립지 않겠는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음식을 통해서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태국 음식도 참으로 맛있는 음식이다. 맛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 속의 편견이 태국 음식을 먹어서는 안될 음식으로 여겨 버리는 것 같았다. 우리 스스로 태국 음식을 마음 속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 속으로부터 거부하고 있으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토불이라는 고사성어를 실천하듯이 우리 마음은 한국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훈련되어 가고 있었다.

 비단 태국만이 아니라 해외로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되면 음식은 큰 골칫거리가 된다.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도 한국 식당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혼자라면 모르지만 팀으로 움직일 경우 식사문제는 팀워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팀워크는 고사하고 현지에서 심하게 싸워서 인간관계가 나빠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제 여러 나라의 문화가 서로 섞이고 어우러져 사는 시대가 되었다. 그것이 패션이던 건축이던 음악이던 한 나라의 문화만이 독야청청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입맛도 때에 따라서는 바꿀 필요가 있다.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외국 사람이 한국에 와서 김치를 맛있게 먹는 것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다른 나라에 가서 한국음식만을 먹기를 고집한다면 진정한 여행가가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당신이 원할 때 마다 당신에게 한국 음식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지 음식에서 나는 특정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처럼 한국 음식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좋아서 먹는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더구나 다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 나라를 좋아하고 즐길 수 없게 된다.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면, 그리고 여행을 잘 마무리하기를 원한다면, 아내마저 바꿀 수 있다는 우스꽝스런 속담을 생각하기 이전에 입맛부터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입맛을 바꾸기 이전에 현지의 음식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