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랑
가을 사랑
  • 시인 도종환
  • 승인 2011.10.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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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나는 살가운 벗들로부터 ‘가을 타는 남자’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가을만 다가오면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어디로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저 발길 닿는 데로 불쑥 여행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땐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손전화도 받지 않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아침, 오늘도 나는 그 여자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소리(시인, 본지 대표 및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