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병철회장의 버려진 여인,'혜화동사모님'
삼성 이병철회장의 버려진 여인,'혜화동사모님'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1.10.18 16:2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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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책 <혜화동사모님>, 서점가에 깔지도 못하고, 광고도 안받아줘

◆<혜화동 사모님>(도서출판 소정)...반평생 호암회장 지아비로 섬기다 삼성가에서 버림받다

 

큰 나무에는 그늘도 많이 드리워진다 했던가. 대한민국 으뜸 기업 삼성. 지금은 지구촌 곳곳을 주름 잡는 삼 성이지만 그 속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사연과 수많은 걸림돌, 깊은 수렁이 널브러져 있는 듯하다. 그 가운데 특히 재벌이 품는 여자 문제는 더더욱 아리송하기만 하다. 품을 때는 온갖 사탕발림을 다하지만 그야말로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난 뒤에는 헌신짝 버리듯이 하니 말이다.

여기 삼성가에 놀림당한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가 먼저 삼성가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 알랑방구를 뀐 것도 아니다. 정부인이 있고, 자식까지 낳은 여러 여자가 있는 이병철 회장이 먼저 그 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여자는 열일곱이란 아리따운 나이에 결혼을 해 자식 셋을 두었으나 남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홀로 된 여자다.

그 여자가 이병철 회장과 20여 년 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다가 이 회장이 이 세상을 떠나자 삼성가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이른 바 ‘혜화동 사모님’이다. 이 회장으로부터 늘상 ‘미세스 박’이라 불리었던 ‘혜화동 사모님’ 본명은 박소진. 박소진 씨는 이 회장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했다. 삼성가에서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해 박 씨를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이건희,자신의 여자형제들에 대해 코멘터리도, 신세계 이명희, 50%지분 갖도록 도움 요청"

저자는 어머니가 불안한 노후에 대해 조그마한 준비라도 할라치면 호암 이병철 회장은 '셋째 건희(이건희 회장)과 와 막내 명희(이명희 신세계회장)가 나 죽으면 다 알아서 해줄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며 이 회장 사후 이들이 자신들에 대한 처우에 섭섭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건희 회장과 명희씨는 삼성가 형제들 중에 그래도 여러번 자리를 했고 ‘혜화동 사모님’이 명희씨와는 골프도 같이 치기도하고 명희씨가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신세계 지분을 50% 가질 수 있도록 도와서 현재 신세계의 실질적인 오너가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도 밝히고 있다.

“나는 어머니의 작고 이후 몇 번에 걸쳐 자살을 생각했다. 2007년 10월 어머니의 작고 이후 당장 생활보조도 끊어져 버렸다. 그들이 생활 보조비를 지급하겠다는 공증서에는 ‘갑’이 비서실 김동환이고 ‘을’은 분명히 내 어머니와 내가 공동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삼성’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바로 그 다음 달부터 단 일원의 지원도 하지 않았다.” -239쪽, ‘그리운 어머니’ 몇 토막.

“미련도 많고, 아쉬움도 많은, 견딜 수 없는 한을 남기신 채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을 찾아 떠나신지 3년. 오직 삼성가와 우리 세 남매를 위해 희생과 헌신으로 생을 마감하신 내 어머님 영전에 이 책을 바칩니다.” -‘책머리 말’ 모두

◆이 책은 왜 서점에서 받아주지 않았을까?

박소진 씨 장남 임정제 씨가 호암 이병철 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어머니, 너무 억울해서 ‘죽어도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한’ 어머니 한 많은 삶을 다룬 <혜화동 사모님>(도서출판 소정)을 펴냈다. 실명을 거론할 정도로 리얼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지만 삼성가의 방해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 책은 지금 서점에도 없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ljj5312)에서만 살 수 있다.

출판사 측은 "서점에서도 안 받아주고 돈을 주고 광고를 내겠다는데도 언론사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책은 임정제 씨가 어머니 박소진 씨 삶을 나름대로 요약한 부록을 포함 모두 5부에 이병철 회장과 박소진 씨 사이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박 씨가 직접 쓴 일기처럼 눈물겹게 적어놓고 있다. ‘회고’, ‘한겨울의 소망’, ‘호암과의 반생’, ‘삼성 사람들’, ‘알면서도 못하게 되는 것들 속에서’ 등이 그것.

“그(이건희)는 내게 ‘아마도 우리 형제들 성격을 잘 모르실 것’이라며 형제들에 관해 하나하나 비유를 들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첫째 딸은 가시가 많지만 수분이 많은 선인장에, 둘째 딸은 잡초로 핀 꽃에, 막내딸은 아름다운 꽃이지만 잘 가꾸어야만 하는 장미꽃에 비유했다. 그리고 사실 본인은 딱딱한 사업가의 생활보다는 취미생활이나 스포츠를 꿈꾸며 살아왔는데 우리 형편을 잘 알고 계시듯 아버님의 뜻이 완강하여 일을 많이 배우고 있다‘라고 했다.” -199~120쪽, ‘셋째 아들 이건희’ 몇 토막

박소진 씨는 ‘생애 마지막 편지’에서 “당신(이병철 회장)만 바라보며 살아온 순간순간들로 하루를 만들고, 일 년을 만들고...... 그리고 20년이라는 세월을 쌓았습니다”라고 쓴다. 그는 삼성가 사람들에게 “‘최고’를 부르짖는 ‘삼성가’ 사람들, 나를 기억하는 적지 않은 삼성가의 사람들이 얼룩진 세월의 한이 얹어진 내 삶의 가치를 진정으로 귀중하게 인정해 주기를 소원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삼성가는 저와의 조그만 약속도 지키지 않았지요. 그 분들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고 있는 내게 삼성병원에서의 단 하루조차 허락하지 않았지요”라며 “삼성가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처절하도록 비참하고 처참한 대우를 받아야 할 만큼 잘못한 일도, 미움 받을 일도 해본 기억이 없음을 나, 저 세상에서 당신을 만나면 꼭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제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던, ‘먹고 살 것은 셋째(이건희 회장)와 막내딸에게 다 준비시켜 놓았으니 걱정 말라’던 ‘호암회장’도 우리 곁에 없고, 회장을 끈으로 맺어졌던 사람들과의 인연도 모두 끊어졌다. / 정말로 우리만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와 직원, 그리고 가족들에 대해서 막연하게나마 희망을 가지고 계셨었지만 서서히 마음을 돌리시는 듯했다.”-206쪽, ‘호암회장의 부음’

◆<호암과의 반생> 책 출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 억 건네 받아

임정제와 그 어머니 박소진 씨는 삼성가에서 계속 ‘내침’을 당하자 호암회장과 함께 한 20여 년 동안 있었던 ‘사실혼 관계’를 추스려 책을 펴내기로 결심한다. 제목은 ‘호암과의 반생’이었다. 이들은 충무로에 달려가 등사본으로 급히 20여 권을 펴낸다. 근데, 인쇄를 하는 도중 한 권이 삼성 회장 비서실로 빠져 나간다.

이때 당시 중앙일보 이종기 사장이 달려와 이들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 이러시면 되느냐”며 달래지만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삼성가는 그 뒤(1988년 4월) 책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들에게 일 억을 건네며 호암회장과 함께 찍었던 어머니 사진과 여러 자료 원본을 가져간다. 이들은 그 돈으로 식의주를 해결하기 위해 어머니 고향인 광주역에 있는 조그만 여관을 인수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들은 또다시 삼성가 사람들을 만나 어려운 처지를 하소연하기에 이르고, 임정제는 마침내삼성에게 생계보장을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벌인다. 이 시위를 보고 받은 이건희 회장은 “그렇다면 상세하게 알아보고 도와주도록 해야지 그게 무슨 일이냐”라며 1994년 1월 비서실에 있는 고영창 과장을 통해 현금 4억을 건넨다.

이 4억도 그냥 주는 돈이 아니었다. 고영창 과장은 “광주에서의 경험을 살려 조그만 여관을 하되, 임의로 필거나 처분할 수 없도록 삼성 직원 이름으로 5년간 가등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 여관업조차 어려움에 처하자 삼성가는 가등기를 풀어주기는 했지만 이들이 바라는 여관 매각도 뜻대로 되지 않는데...

임정제가 펴낸 <혜화동 사모님>은 삼성이 철저하게 숨겨온 호암 이병철 회장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숨겨진 여인’ 박소진 씨 사이에 있었던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 책은 삼성가가 임정제 어머니에게 저질렀던 숱한 거짓 약속과 음모,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인재 제일의 ‘삼성’이 인재 아닌 평범한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나 잔인하고 철저하게 짓밟는가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는 그 말이다.

글쓴이 임정제(59)는 고 호암 이병철 회장과 20여 년 동안 함께 했던 이른 바 ‘혜화동 사모님’으로 불리었던 고 박소진 씨 장남이다. 호암 회장으로 인해 어머니를 빼앗기고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살아야 했다. 1935년에 광주에서 태어난 박소진 씨는 열일곱 나이로 결혼을 해 여덟 살 난 아들(임정제)과 다섯 살, 두 살 난 딸을 두고 있었으나 남편 폭력과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다. 그는 스물여덟 나이에 호암 회장을 만나 함께 살다가 2007년 10월 24일 위장 내출혈로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해서 존경을 받고 있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도덕성을 다시 한 번 의심케하는 바로미터가 될만한 내용이 고스란히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