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진형가을축제' 현장을 가다
제6회 '진형가을축제' 현장을 가다
  • 김영찬 기자
  • 승인 2011.11.0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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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대부분 만학도지만 열정은 '젊음 그 이상!'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한 학교에서는 작지만 의미있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학력인정 진형중고등학교는 11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에 걸쳐 제6회 '진형가을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제6회 '진형가을축제' 오픈행사가 이재식성암학원이사장, 김영종종로구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3일오전 10시에 열렸다.

축제는 전시회와 자선바자회, 먹거리장터, 예술제로 나눠져 열린다. 전시회에는 학교건물 1층에서 6층까지 복도를 따라 1층에는 꽃꽃이, 2층과 6층엔 미술반학생들의 작품들이, 4층과 5층에는 사진반과 사군자반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이 마치 작가들의 작품이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의 솜씨를 뽐내고 있다.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예술제는 4일 오후 열린다. 시낭송과 바이올린 독주와 합주, 성악, 피아노 연주 등 이 학교 재학생 60여 명이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그러나 전시회에 참여한 학생과 예술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솜씨보다 더욱 값진 것이 있다. 바로 학생들의 열정이다.

이 학교의 재학생은 20대부터 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지만 50대 이상 장,노년층 학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나 예술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높지만 열정과 작품성 또한 그들의 나이만큼이나 높은 것이 특징.

축제장을 찾아 이 학교 재학생 몇 분을 만났다. 하나같이 자신이 행복하고 이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좋다고 입을 모은다.

▲중학교 과정에 다니는 남점순(77)할머니

성동구 상왕십리에 사는 남점순(77세) 할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이다. 3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연탄리어카를 끌기도 하고, 노점상도 하면서 4남매를 키워 결혼을 시킨 후 홀로 생활하던 중 자식들이 학교를 다녀보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71세 때인 6년 전에 마포에 있는 일신초등학교에 입학했다. 4년만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 전 진형중학교에 진학해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남할머니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너무 좋다고 한다. 영어와 중국어 공부는 힘이 들지만 국어와 사회, 체육시간이 재미있다 한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느냐는 우문에  "조금 알게 되니까 멀리 볼 수 있게 돼서 좋다"는 현답이 되돌아 온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중학교까지는 무상교육이어서 다닐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부터는 돈이 들어서 아마 다니기 힘들 것 같다"는 안타까운 대답과 함께 졸업 후에는 근처의 주민센터나 문화센터를 찾아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 말했다.

▲화가가 꿈인 사연순학생
남할머니와 인터뷰 중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사연순(58, 노원구 거주)씨가 "나도 한 마디해도 될까요?" 하고 끼어 든다. 사씨는 충남 논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후 학교와는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지금은 여기서 공부를 마친 후 대학에 들어가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을 갖고 있다 한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자기 만족 때문인 것 같아요"라며 운을 뗀 사씨는 "이 학교 때문에 자신은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유인 즉 방과 후 수업으로 미술반에 들었는데 선생님께서 너무 잘 가르쳐줘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도록 해주셨기 때문이란다.

구로구 신도림동에 사는 송원희(55세)씨는 남부럽지 않게 사는 주부이다. 남편은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인데다 자식들도 잘 커줘서 별 걱정이 없다. 그런 그에게 고향 친구가 찾아와 자신이 다니는 현재의 학교를 소개하며 함께 다니길 권해 곧바로 이 학교를 다니게 된 케이스다. 자신에게 학교를 소개해준 사람은 지금 이 학교 고등학생이고 자신은 아직 중학생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반드시 대학에 진학, 사회복지학 공부를 한 후 어르신들께 봉사활동을 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송씨는 자신의 주변이나 자식들에게 학교를 다니는 걸 비밀로 해오다 지금은 당당히 밝히고 다닌다. 이유는 늦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이제는 하고 있고, 가난하여 배우지 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고 좀 늦었지만 더욱 열심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의 안내를 맡은 정복남(59), 송원희(55)씨. 사진 속 두사람 사이로 보이는 꽃꽃이 작품은 '소망'이라는 이름의 송씨 출품작이다.

축제 진행과 수업으로 바쁜 가운데 정인숙(50, 국어교사) 학생부장은 학교 곳곳을 안내해주며 학교자랑이 아닌 학생들 자랑을 더 한다. "나이가 들면 암기력이 떨어져 다수의 학과목 수업에 애로가 많을텐데도 너무 열심히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말하며 "최근 교권붕괴 운운하는 일들이 우리 학교에선 전혀 없고 오히려 선생님들께 너무 깍듯하게 대해주셔서 송구스러울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진형중고등학교는 학생 수가 2천명에 이른다. 어린시절 가난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만학도가 대부분이지만 학생들의 얼굴은 상상 이상으로 밝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이들 모두에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