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인사동은 어떻게 변해왔을까?
  • 김영찬 기자
  • 승인 2011.11.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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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 신구세대와 외국인까지 공존하는 곳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예전의 인사동길은 종로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까지만 지칭했다. 인사동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점상이 사라진 최근의 인사동
인사동은 북쪽으로는 관훈동(寬勳洞), 동쪽으로는 낙원동(樂園洞),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積善洞), 서쪽으로는 공평동(公平洞)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중부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에 속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행정 구역 개편 때는 원동(園洞), 승동(承洞), 대사동(大寺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인사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인사동이 가지고 있는 대표 이미지는 '한국의 문화의 거리'이다. 그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고려시대(918~1392)부터 조선시대(1392~1910)를 살았던 한국인들의 삶과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기에 가능했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원각사로부터 조선시대의 고관대작들의 주거지, 그리고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독립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던 곳이자 해방 이후에는 화랑과 필방, 표구점 등이 등장해서 오늘날 문화의 거리 인사동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인사동의 역사를 보면 중심에서 중심으로 과거 충훈부(忠勳府), 이문(里門) 등이 있던 조선 도읍의 중심지에서, 현재 전통문화와 미술문화 일번지로 탈바꿈한 인사동임을 알 수 있다. 종로 거리는 예로부터 상업의 중심지로 육주비전 등의 궁중에 납품하는 물건을 취급하는 상점이 들어서 있었다. 조선 태조 때부터 국가나 왕실에 공을 세운 사람을 공신으로 책록하기 위해서 그 업적을 조사하던 관청인 충훈부(관훈동 135번지) 터와 도적을 경버하고 법에 금한 사치스런 잔치나 풍기문란 등을 단속하던 이문(인사동 22번지) 터 등이 있다.

1919년 2월 20일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을 중심으로 전문학교 대표들이 모여 제1회 학생지도자 회의가 열리는 등 인사동은 3․1운동의 대표적 본거지 중 하나이다.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의 장소로 삼았던 태화관 자리에는 현재 태화빌딩이 들어서 있다. 이 밖에도 민영환선생 자결터(공평동 2) 등 인사동은 금세기 초 민족 독립의 염원을 담은 거리였다.
 
이후 인사동 거리는 종로라는 전통상가의 면모를 반영한다. 이미 1960년대에는 골동품점, 필방, 표구점, 고서점 등이 형성됐으며, 70년대 후반에는 이들과 관련된 지업사, 민속공예점, 전통찻집 등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인사동 거리는 명실공히 전통문화 활동의 중심지가 됐다.

1960년대 골동품점, 필방, 표구점, 고서점 등이 형성된 인사동은, 1970년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상업화랑이 들어서면서 상설 전시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와 관련된 지업사, 민속공예점, 전통찻집 등이 들어서게 됨으로써 인사동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문화의 거리가 됐다.
 
인사동은 조선시대 도화서가 위치했던 곳으로 그때부터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미술중심지로서 맥을 이어왔다. 고서화, 고서적, 금속 및 목기, 고가구 등의 고미술점과 필방, 전통 음식점이 골목골목에 있어 아기자기한 맛을 느낄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현대적 상업화랑들이 하나 둘씩 인사동에 둥지를 틀면서, 인사동은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지는 미술문화지역으로 발전해왔다. 

오늘날 인사동은 전통과 현대, 신구세대가 함께 공존하는 다양함과 생생함을 지닌 살아있는 문화이자 박물관과 같은 거리이다. 거리 곳곳에 한국의 역사가 배어있는 유적지들이 남아 있고, 또 한편으로 골목마다 들어선 전통찻집과 음식점, 묵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필방, 고미술상과 화랑 그리고 생활 속의 예술을 구현하는 공예업소 등이 자리하고 있다. 평일과 주말 구분없이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중국어와 일본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일부 점포 직원의 큰 목소리 때문에 마치 내가 외국에 여행을 온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들게 하는 곳이 현재의 인사동 거리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