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품의 역사를 읽으며
기호품의 역사를 읽으며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1.11.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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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 문화와 커피문화의 차이

지난 해 출판(5월)된 '기호품의 역사'(저자 볼프강 쉬벨부쉬)는 향신료, 초컬릿, 커피, 맥주, 담배, 심지어 아편 역사마저 서술하며 유럽에 커피가 도입되기 전 독일과 주변국들이 맥주스프와 빵으로 식사하고, 전쟁터까지 맥주통들을 끌고가야만 했던 병사들의 삶을 적절하게 묘사한다. 또 귀족과 평민의 차이가 없을 때가 바로 '술자리'라며 평등가치구현을 깨버린 것이 다름아닌 커피라고 지적한다. 

▲ 중세당시 대중음식이었던 맥주스프(Biersuppe)와 맥주를 즐겼던 유럽인들은 다른 어떤때보다 풍요로왔다. 현재 맥주스프는 남독지방으로 가야만 맛볼수있는 별미가 됐다.

커피는 아랍문화

커피의 원조는 물론 에티오피아다. 그럼에도 이 음료는 북아프리카를 비롯해 아랍권에서 각광 받아왔다. 이를테면 마시는 물도 귀하고 음주마저 금지된 이슬람문화권에서 '커피'란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사색과 대화가 가능한 음료다. 커피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융성하던 시기에 유럽에 전파되면서 맥주와 와인문화를 가진 유럽을 산업혁명으로 유도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어쩌면 커피는 당시 시민계급을 격상시키고 산업화를 일궈낸 계몽적(?) 음료로 혹은 중세유럽카톨릭이 지닌 술문화를 깨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필두로한 금욕과 산업화를 이끈 공로자다. 요컨대 마리화나 판매를 글로벌 담배 회사들이 막으려는 의도가 수익 때문이라면 커피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 될수 있다. 즉 더 많은 노동력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야만 하는 자본가 입장에서는 당시 주류문화에 젖어살던 농민과 노동자들이 하루종일 일만 시킬수 있는 커피가 훨씬 나아 보였던 셈이다.

그런데 위 같은 자본가들의 그 야심찬 노동시장독점계획을 깬 것이 아일랜드란다. 현지 아이리쉬커피는 브랜디와 커피를 혼합해 만든 음료로써 아일랜드 어부들이 잠도 깨고 그 차디찬 바닷바람을 이기려고 아침마다 마시는 음료. 카톨릭문화라는 장점이 어우러진 탓일까? 아일랜드산 흑맥주 기네스는 커피보다 더 유명한 아일랜드 수출품이다.

이어 저자는 담배, 초컬릿 등도 소개하는데 프로테스탄티즘을 여과없이 투영한 커피 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듯 커피를 마시며 쏟아지는 잠을 깨우고, 서민들의 남아도는 힘을 싼값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수 백년동안 유럽사회를 지배해왔음을 알수있다. 그러면서 커피 원조국가인 이슬람교를 혐오하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맥주, 막걸리가 낫다

별다방과 콩다방에서 파는 커피는 후진국 어린이와 여인들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착취한 산물이다. 몇년 전 우석훈 교수가 언급한 공정무역이 아니고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반대로 맥주와 막걸리는 집에서도 담그지 않던가? 돈 열심히 벌어서 세 끼 떼우는 것 말고 5천원이 넘는 커피를 마시다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럽 어딜가도 커피 체인점은 없다. 더구나 커피 체인점은 미국문화다. 

유럽 어디건 보는 커피점은 미국이나 한국처럼 본사에 지불할 로얄티가 없다. 커피 한 잔 가격이 2천원 내외인게 당연하다. 맥주도 0.5리터가 1천원이 안된다. 그런데 한국만 오면 모든게 2배 내지 3배 비싼 가격에 커피가 팔리고 있다.

다시말해 한국인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미국문화란 유럽에서 봤을때 그냥 역사 200년 정도 된 잡종이다. 여기에 커피부터 햄버거까지 로얄티를 지불하는 한국은 역사만 반 만년이 넘는 나라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을 서구문명의 전부로 생각하고 살았을까? 시내 곳곳에 미국 식음료 체인점이 가득한 건 무슨 이유 때문일까? 이런 무지가 또 어딨을까 싶다.

끝으로 커피로 각성하고 종교로 계몽될 사회라면 저녁마다 귀족과 평민이 마주앉아 맥주로 대화하는게 훨씬 나아보인다. 더구나 공정무역도 거부하고 달려온 미국문화라면 우리도 기호품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미 차와 주류문화가 존재한다. 막걸리도 있고, 보성 녹차도 있다. 기호품의 역사라는 책이 독일과 유럽이 가진 역사라면, 이제 '한국 기호품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판되야 할때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