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명칭변경, 찬반양론 설전
덕수궁 명칭변경, 찬반양론 설전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1.12.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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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이냐 경운궁이냐 논란 뜨거웠다

2일 서울 경복궁 고궁박물관 대강당에서는 현재의 덕수궁(德壽宮)을 원래 명칭인 경운궁(慶運宮)으로 변경할 것인지의 여부를  놓고 찬반양측간 날선 공방과 토론이 벌어졌다. 바로 문화재청이 주최한 ‘덕수궁(사적 124호)의 명칭 검토 공청회’다. 이 공청회는 예정시간 3시간30분을 넘기며 뜨거운 관심 속에 마무리됐다.

▲ 2일 덕수궁명칭변경공청회 토론회에서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기자(맨왼쪽 2번째)발언을 지켜보는 공청회 사회자 송석기 교수(군산대학교). 이날 김태식 기자는 조선 태조때부터 상왕이 기거하던 궁인 덕수궁 명칭을 변경하는 근거가 뭐냐며 변경찬성론 측을 비난했다.

이날 공청회참석자로는 사회자 이석기 군산대 교수, 발제자 이민원 원광대 교수, 홍순민 명지대 교수, 토론자로 김도형 연세대 교수, 김인걸 서울대 교수, 김정동 목원대 교수,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서영희 한국산업대 교수,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이희용 전 경기예총 부위원장,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이 토론을 펼쳤다.

◆덕수궁이냐? 경운궁이냐?

“덕수궁은 일제 외압으로 야기된 잔재이므로 원래 명칭인 경운궁으로 변경하자”는 찬성 측과 “구한말 순종과 신하들이 만든 덕수궁 명칭은 일제잔재와 무관하다”는 반대 측간의 뜨거운 설전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 이민원 교수(원광대 초빙교수/동아시아연구소장)와 명지대학교 홍순민 교수의 발제 순으로 시작됐다. 먼저 명칭변경 반대입장을 발제한 이민원 원광대교수는 “덕수궁의 이름을 경운궁으로 되돌리자는 주장은 몇 가지 고려돼야할 사안이 있다” 며 “첫째 대한제국의 융희황제 순종과 당대의 신하들이 결정하여 올린 것을 우리가 변경해도 무방한가. 둘째 경운궁으로 불려진 기간이 3백년이라고 하지만, 실상 왕궁(혹은 행궁)으로 기능하고 지칭된 기간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재위까지 약 30년간(1594~1623)이며 고종 당시 1897년부터 1907년까지 10년으로 통산 40년 내외”라며 덕수궁으로 불리어 온 기간이 짧았다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서울도 대한제국 당시 한양이나 한성으로 이름을 되돌려야 하는지 또 다른 허다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명지대학교 홍순민 교수는 저서 ‘우리궁궐이야기’(2010)를 통해 덕수궁명칭변경을 주장해온 역사학자다. 그는 발제문에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회복하면 대한제국 광무 연간의 역사, 외세에 둘러싸여 압박을 받으며 나름대로 그것을 물리치려 진력을 다하던 고종과 그 시대 사람들, 그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토대로 파괴한 일제식민지와 해방 이후 원칙 없이 흘러온 문화유산정책을 바넝하고,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그 좌표와 방향을 잡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며 찬성입장을 내놨다.  
 

▲ 4시간에 가까운 긴 공청회 끝까지 앉아 경청하는 시민.전문가들의 모습

 ◆명칭변경 토론이 끝장 토론

다음순서인 토론회와 질의시간은 덕수궁과 경운궁 명칭변경 찬반논란 보다 덕수궁이 ‘일제 잔재냐? 아니냐?’ 에 초점이 맞춰졌다. 사적유물 명칭변경이 아닌 당시 역사적 배경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을 놓고 벌어진 공방전인 것이다.

첫 토론자로 나선 김도형 연세대 교수는 “덕수궁은 근현대의 아픈 정치의 현장이었다”라고 밝히고, “원칙에 따라 본래 궁궐의 이름을 되찾아 주는 일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지만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된 사건 또한 역사적이다”라며 반대 의견을 내놨다.

다음 김인걸 서울대 교수는 ‘잊어버려서는 안 될 것과 추억하고 싶은 것의 차이’라는 주제로 발언하며, “경운궁은 임진왜란으로 갈 곳이 없던 선조가 찾아들었던 아픈 과거를 간직한 곳이고, 이곳에서 즉위한 뒤 경운궁이라 이름 붙여주었던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끌려와 인목대비에게 옥쇄를 바친 곳이기도 하다”라고 경운궁으로 불리어 온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아울러 “구한말 일제가 고종을 폐위시켜 감금하고 ‘덕수’라는 호칭을 부여한 곳”이라고 지적하며.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불려 지금까지 ‘추억’의 장소로 ‘사랑’받기도 했으나, 덕수궁이란 이름은 치욕스런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제 제 이름을 불러줄 때가 됐다”고 찬성입장을 밝혀다.

이에 반해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과)는 참석한 토론자와 다른 주장을 펼쳤다. 김교수는 ‘덕수궁명칭변경’ 반대를 표명하면서 “‘덕수궁 궁역’ 복원이 급선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 근거로 1910년 2월에 제작된 <덕수궁 평면도>를 영상자료를 통해 공개했다. 김 교수는 “이 평면도에 따르면 덕수궁 궁역은 미국대사관과 영국대사관, 성공회교회, 구세군건물, 정동극장, 예원여중도 포함된다”라고 밝히며, “지금은 덕수궁 이름을 바꿀 때가 아니라, 덕수궁 궁역을 복원을 위해 궁역 찾기 중건공사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 위 사진은 덕수궁 명칭변경을 찬성하는 학자전문가들이다. 맨오른쪽이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 김인걸 서울대 교수. 그 옆으로 서영희 교수, 이희용 전 경기예총 부위원장의 모습이 보인다. 전부 명칭변경 반대의견을 상기된 표정으로 경청중이다.

 ◆공청회 하이라이트 김태식 기자 vs 서영희 교수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기자는 “지난 9월 15일 문화재청이 덕수궁을 경운으로 명칭 변경한 방안을 추진키로 한 근거가 희박한데다 설득력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명칭변경을 반대했다. 이어 교과서 등에 덕수궁과 경운궁의 역사적 배경이 서술된 점을 들어 “학자들이 다뤄야할 일을 굳이 공개공청회까지 열며 재론할 필요가 있느냐”며 “몇 가지 역사지식을 더 갖췄다고 해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이 아는 역사지식이 전부인양 착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덕수궁명칭변경 찬성한 교수들을 비난했다.

다음 토론자로 나선 서영희 교수(한국산업기술대학교)는 “김태식 기자님보다 먼저 발언했으면 좋았을 걸 괜히 다음 토론자로 나왔다”고 운을 떼며 “1970년대 ‘광무개혁 논쟁’과 2004년 ‘교수신문 논쟁’에 이르기까지 역사학계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일반 국민의 인식은 여전히 그에 못 미치는 ‘망국책임론’에 머물러 있다”며 “경운궁으로의 명칭변경은 단순히 옛 이름을 복원하자는 것이 아니라 망국의 역사가 아닌 경운궁과 덕수궁이 되면서 묻혀버린 대한제국의 여가를 복원하자는 얘기이며, 대중적 인식의 전환, 혹은 역사 교육의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며 앞서 김태식 기자 주장에 맞불을 지폈다.

◆덕수궁 호칭은 중국에서 유래한 제도

한편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덕수궁은 조선 초기 태상황(태조), 상왕(태종) 등이 기거하던 궁에 대한 보통명사, 곧 일반 호칭이다”라고 밝히며, “상왕(上王) 또는 태상왕(太上王)이 기거하는 궁을 덕수궁으로 부르는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 설명했다. 덧붙여 “선조와 광해군이 잠시 머물렀던 행궁(덕수궁)으로써 훗날 1907년 7월 일제에 의해 강제퇴위당한 고종이 태황제가 되고 기거하던 곳이다” 라며 “1919년 1월 고종이 승하한 뒤로는 덕수궁으로 계속 불릴 이유가 없었다”고 말하며, “고의적인 외면인지 지시 부족인지 가릴 수 없지만, 조선, 대한제국의 관례에 비추면 덕수궁은 ‘이태왕’훙거 후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말아야 할 궁호다”라고 언급하며 덕수궁을 경운궁으로 명칭변경하자는 찬성 측이 입장을 피력했다. 

반대측 토론자로 나선 황평우 소장(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은 “덕수궁은 朝鮮과 大韓, 우리 역사”라고 발언하며, “한편에선 덕수궁의 의미와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 경운궁으로 환원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경운궁으로 환원하자면 그에 타당한 건축물의 중건도 따라야하며 무엇보다 덕수궁명칭에 대한 논란보다 朝鮮과 大韓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끝으로 이 날 토론회 뒤 자유발언 및 질의시간에는 문화재청 전직직원임을 밝히는 목을수 씨(71)가 토론발제자들에게 ‘덕수궁에서 경운궁으로의 명칭변경이 잘못됐다’며 <성종실록> 의 기록을 들어 ‘연경궁(延慶宮)으로 바꾸자’는 주장을 펼치는 등 공청회가 끝났음에도 시간을 연장해 일반시민 7명이 각종 질의와 자유발언을 하는 등 공청회에 참석한 일반시민들 관심 또한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