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서정주를 ‘서군’이라 깔본 사나이
천하의 서정주를 ‘서군’이라 깔본 사나이
  • 임동현 객원기자
  • 승인 2011.12.1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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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현대문학] ‘대한민국 김관식’의 무한도전(1)

‘시인’이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당연히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나 시를 쓴다고 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려면 ‘등단’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한다. 일종의 ‘면허증’이 있어야한다는 거다. 하지만 등단을 한다고 해서 다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2세대, 3세대가 지날 때까지도 이름

   
▲ 공초 오상순 시인과 김관식이 나란히 걷고 있는 장면
을 널리 알린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때론 문학가 중에는 작품보다는 ‘기행’, 즉 보통 사람과 다른 이상한 행동으로 더 잘 알려진 이들도 있다.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김병연도 방랑의 에피소드들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의 시에 대해서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의 눈에는 ‘기행’으로 보이는 우스꽝스러운 행동들. 그러나 그 기행 속에서 때로는 보석같은 글이 나오고 현실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쓴 아름다운 글들이 나오기도 한다.

오늘부터 서울문화투데이에 연재할 <내 맘대로 현대문학>의 첫 번째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문학가들을 제쳐놓고 ‘김관식’이라는 시인의 이야기로 정한 것은 바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시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여러분께 던져보고 싶기 때문이다. 기행과 병고, 가난으로 얼룩진, 그야말로 허렁방탕 주정뱅이 생활로 일관한 괴짜 김관식. 그가 누구길래 ‘한국 현대문학’을 다룬다는 이 거창한(?) 프로젝트에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일까? 그렇게 ‘내 맘대로’ 현대문학 이야기가 시작된다.

◆육당 최남선에게 한학을 배우다

김관식은 193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4살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정인보, 오세창, 그리고 육당 최남선에게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서울공고와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최남선의 힘이 컸다. 뒷날 그는 '나의 스승 육당'이라는 시에서 최남선을 이렇게 추켜세운다.

'(전략) 누구는 최남선을 한국의 제퍼슨이라 하나/ 그것은 말도 아냐 애당초 망발이야! 토머스 제퍼슨이야 아메리카 최남선// 정말 그렇고말고 아하 정말 그렇고말고/ 행여나 허황하다 사람이여 웃지마소/ 두 나라 독립선언설 비겨 보면 알리라// 일지필 휘두르자 사해(四海)가 진동했네/ 어디라 터뜨리지 못할 겨레의 원통한 마음/ 한고작 두드려 뭉쳐 메아리쳐 울리니// (후략)‘

김관식은 한학과 함께 시에도 재질을 보여 열아홉 살인 1952년에 <낙화집(落花集)>이라는 이름의 첫 시집을 내는데 시인 조지훈이 이 시집의 서문을 써줬다고 한다. 한학에 대한 지식, 그리고 시에 대한 재능. 그것은 결국 김관식의 오만의 상징이 됐다.

◆서군, 조군 , 박군... 문인들을 조롱하다

그의 오만은 유명했다. 술을 마시면 그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에 취한 김관식은 대놓고 큰소리로 ‘서군, 박군, 김군, 조군’을 외치고 다녔다. 그가 깔본 이는 바로 당시 문단의 주류이자 그에겐 대선배였던 서정주(서군), 박목월(박군), 김동리(김군), 조연현(조군)이었다. 이제 갓 약관이 된 그가 ‘감히’ 나이가 한참 위인 문단의 대선배들에게 대놓고 ‘서군’, ‘이놈’이라 욕하며 돌아다닌 것이다.

그런데 그를 정식으로 문단에 추천한 사람은 바로 그가 욕한 서군, 아니 서정주다. 그는 추천을 받기 위해 서정주의 집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데 그 무렵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서정주의 처제였던 방옥례였다.

   
▲ 드라마 '명동백작'(EBS)에서 괴짜시인 김관식으로 출연한 탤런트 안정훈의 모습

방옥례를 아내로 맞이하려는 김관식은 가짜 자살소동까지 벌이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야 알게 된 것은 바로 방옥례가 김관식보다 연상이었다는 것. 서울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김관식은 당시 자신보다 나이 많은 학생을 상대해야 했기에 나이를 속였다고 고백한다.

그가 쓴 시 중에 <초야의 기도>라는 시가 있다. 바로 사랑하는 방옥례에게 고백하고픈 그의 절절한 고백이었으리라.

初夜(초야)의 祈禱(기도)

저녁밥상을
물리고 나면
어느새 땅거미가 짙어 오나니
아내야
초롱에 불을 밝혀라
서울 변두리 조그마한 방에서
맡은 일을 개운히 해버리자고
낡은 책장을 제껴가면서
아득한 옛날 향기를 맡고 있노라는데
독수리 날개 같은 바람이 와서
초롱을 차고 달라나는 것 허지만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라
하다못해 저승에라도 자리를 옮겨
죽은 사람의 하얀 이마를
조용한 빛으로 밝혀 주리라.
임이여.
가난한 우리들은
모두 어디로든지 가고 싶어 하오니
당신의 심부름꾼 바람이 와서
초롱을 앞세우고 떠나가듯이
하루속히 저희에게도 길을 열어 주셔요.

- 김관식 시선집 <다시 광야에>(창작과 비평사)-

결혼도 하고 등단도 하고 이제 김관식의 삶이 달라졌을까? 천만에. 그랬다면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을 터. 지금 1편은 어디까지나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화려한(?) 기벽과 오만은 다음 편에 더 소개하겠다.

▲임동현/'세상사, 특히 문학, 영화, 예술에 관심은 있지만 기웃거리기만 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