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열전 30] 김동원
[배우열전 30] 김동원
  • 김은균 공연전문기자
  • 승인 2011.12.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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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하시면서 기억이 남거나 호흡이 잘 맞았던 배우는 누구를 꼽으실 수 있으신지요?
  해랑과의 관계는 전편에 언급한 그대로이고 생각이 나는 배우가 있다면 남자로는 황철과 여배우로는 김선영을 꼽을 수가 있지. 내가 지켜본 황철은 인품과 연기력 면에서 모두 뛰어난 천부의 예술인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 선이 뚜렷한 쾌남형이었으며 바리톤에 가까운 음색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 그야말로 무대에서는 적격이었지.
  알다시피 영화는 얼굴이 작아야 카메라 효과를 잘 받지만 연극은 그 반대로 얼굴 윤곽이 뚜렷해야 강한 인상을 주는데, 그는 이러한 외적인 조건 이외에도 낮은 목소리는 뭐라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맑으면서 정감이 깃든 소리라고 표현한다면 맞을까 몰라. 그리고 그의 진정한 매력은 온화한 성품과 단아한 행동에 있지 않았나 해.
  그는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갖게 하였으며 다정다감했지. 연기적인 감수성도 빨라서 만약 그가 신파 아닌 신극에서부터 시작하였더라면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가 되었으리라 확신해.
  김선영은 신협의 전신인 극예술협의회(극협)에서 만났는데 1947년에 창단된 극협은 유치진 선생을 대표로 나와 이해랑, 이화삼, 박상익, 김선영, 조미령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 졌지. 나는 이 ‘극협’ 이야말로 오늘날의 현대극단 시대를 여는 주춧돌이었고 민주극단으로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자부를 하곤 해. 해랑과는 주연과 조연 사이의 콤비였다면 김선영과는 최고의 파트너였지 않나 싶어. 나는 다른 연기자들보다 비교적 주연 행운이 많아 여러 여배우들과 공연을 해 보았으나 김선영 만큼 동질감을 느낀 연기자는 흔치가 않았어. 그녀는 외견상으로는 그야말로 너무나도 평범한 가정주부였지. 용모나 체격 어느 것 하나 두드러진 점이 없는, 하지만 무대에만 오르면 연기의 동작 하나하나가 나비처럼 날렵했고 음색은 옥쟁반에 옥 굴러가듯 그렇게 투명하였어. 그리고 예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 또한 본받을 만하다 여겨져. 보통 남보다 2시간 정도는 일찍 나와 정성들여 분장을 했는데 그녀의 분장 솜씨는 정말 최고였지. 아무튼 평소 그녀의 모습과 무대에 선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어. 아마 배우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해.

▲1952년 부산에서 초연된 '처용의 노래' 에서 열연 중인 김동원 선생님

1962년 드라마센터 공연에서 맡은 햄릿은 어떠하셨는지요?
  보통 번역극을 할 때에는 대사의 운율이 굉장히 중요하지.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라고 원문에는 씌어 있는데 이를 그대로 번역해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읊는다면 이는 햄릿의 고뇌를 제대로 이해를 못 한 것이 되어 버린단 말이야. 왜인고하니 햄릿의 문제는 죽음에 직면한 것이 더 직접적이기 때문에 “죽느나,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표현해야만 햄릿이 하고 있는 고민의 선택이 분명해 지기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문장을 그대로 직역하는 것보다는 번역상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우리 식의 정서로 끌어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져.

선생님의 연극관이랄까 연기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내가 고보 시절부터 배운 유치진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는 리얼리즘 계통의 연극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리얼리즘 연극의 특징은 대사 전달의 엄격함에 있다는 걸 거야. 배우는 대사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아무리 큰 극장에서라도 맨 뒷자리까지 대사는 들리게 단련해야 해.
  그리고 연기는 대사와 대사의 주고받는 호흡에서 결정되는데, 이는 대사와 대사 사이에서 주고받는 것과 밀고 당기는 것, 마찬가지로 배우와 배우 사이에도 적용이 되고 그리고 가장 궁극적인 것은 배우와 관객 사이에 주고받는 호흡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일본에는 축지(築地) 소극장이라고 있는데 극장의 절반을 뚝 잘라서 반은 객석 반은 무대로 양분되어 커튼으로 드리워져 있지. 커튼을 보면 포도송이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협동을 상징한다고 해. 그래서 프로씨니엄 무대에서 무대를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 연극을 만들 수가 있는 거거든.  나는 사실주의만이 유일한 연극 형식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형식이라고 생각해. 무대는 미화되고 신비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지.  그런 면에서 프로씨니엄 무대라는 그림틀도 필요하며 관객과는 일정한 거리도 필요하다고 봐. 물론 추함 속에 아름다움도 있지. 그러나 예술은 그러한 것들을 걸러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 있다고 생각을 해. 모두가 발가벗기어지면 그건 현실이지 예술이 아니지 않아? 그런 면에서 나는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하고 싶어. 예전에 어떤 이들은 사회운동을 위해서 또 어떤 이는 별별 목적으로 연극을 했다지만 나는 그저 연극이 좋아서 해왔을 따름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