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보다”
  • 임동현 객원기자
  • 승인 2011.1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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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현대문학] ‘대한민국 김관식’의 ‘무한도전’(4)

지금의 서대문구 홍제동 일대가 한때 ‘문화촌’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이 곳은 50년대 말 이기붕을 중심으로 한 자유당 정권이 가난한 문화인들에게 집을 무료로 주겠다고 하면서 만들어 낸 일명 ‘문화인의마 을’이었다.

▲김관식과 방옥례의 결혼 사진

당시 이기붕과 자유당은 자신들이 계속 집권을 하려면 문화인들의 표를 모아야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가난에 허덕이는 문화인들에게 무료로 집을 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기붕의 꼼수를 알고 있던 문화인들의 호응은 자유당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었고 결국 4.19 이후 문화촌은 한동안 ‘슬럼가’의 형상을 띠게 된다.

이렇게 홍제동 문화촌이 오욕을 겪는 동안 서울의 또다른 동네인 홍은동에는 판자집을 짓는 자와 그 집을 부수는 자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었다. 국유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집을 부수는 공무원들에 맞서 엄연히 그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며 부수는 족족 다시 집을 짓는 이 사내. 그가 누군지는 이 글을 처음부터 읽은 독자들이라면 다 짐작했을 것이다. 역시 ‘대한민국 김관식’이다.

비어있는 국유지, “내 땅이다!!”

장면과 민주당에 ‘빅엿’을 날리고자 민의원(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민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김관식. 술에 취해 계속 “이놈들아! 이놈들아!”를 외치고 돌아다녔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그의 ‘무한도전’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김관식은 홍은동 지역의 비어있는 국유지를 발견한다. 아무도 없는, 임자없는 땅인 것을 알게 된 김관식은 바로 그 국유지를 ‘내 땅’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땅에 집을 지어 집없는 이들에게 팔 생각을 한다. 감히 ‘국가의 땅’을 무단 사유화(?)한 것이다. 또 하나의 엄청난 도전이었다.

당연히 당국은 김관식의 집을 허물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또 지었다. 그렇게 짓고 부숴지고 짓고 부숴지고.. 그러다 마침내 몇몇 가난한 시인들이 그 땅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결국 지리한 전쟁을 버티지 못하고 당국은 두 손을 들었고 비록 허름하긴 하지만 판자집으로 이뤄진 마을이 완성됐다. 김관식이 꿈꿨던 시인의 마을이 생긴 것이다. 김관식의 ‘무모한 도전’이 희미하지만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나의 죽음은 자정에 오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말술과 오만방자로 삶을 살아왔던 김관식. 그러나 가난과 병고는 그의 오만방자도 이길 수가 없었다. 아니, 그는 그것을 잊기 위해, 드러내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오버’했던 건지도 모른다. 자신이 그 동안 배웠던 한학이,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던 김관식은 몸으로 세상과 싸웠고 그것 또한 그의 몸을 병들게 했다.

김관식의 몸은 썩어갔다. 폐결핵이 생기고 간염이 생겼다. 몸 상태로는 그가 도저히 30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호쾌하던 김관식도 병 앞에선 무기력했다. 그는 죽음을 기다렸다. '나의 죽음은 자정에 오라'고 하면서. 결국 1970년 37세의 나이에 김관식은 부인 방옥례와 2남 3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病床錄(병상록)>을 소개할 때가 왔다. 병으로 신음하면서 김관식은 남겨질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며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이 시에 배어있다.

호쾌함도 오만함도 심지어 한학적 취미도 없다. 단지 눈물과 미안함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김관식의 시 중 가장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시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괴짜’ 김관식을 ‘시인’으로 인정하게 만든 시이기도 하다. 김관식도 결국 사람이었다. 그것이 더 슬픔을 자아낸다.

病床錄(병상록)

病名(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 누운 지 이제 10年(년).
高速道路(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肝(간), 心(심), 脾(비), 肺(폐), 腎(신)......
五藏(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生物學(생물학) 敎室(교실)의 骨?標本(골격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極限狀況(극한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熱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燈盞(등잔)에 불을 붙인다.
房(방)안 하나 가득찬 철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登錄金(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憂患(우환)에서 살고 安樂(안락)에서 죽는 것.
白金(백금) 도가니에 넣어 鍛鍊(단련)할수록 훌륭한 寶劍(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김관식, <다시 광야에>, 창작과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