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한반도 명운 좌우할 '운명의 공'이 뜨다
[데스크 칼럼]한반도 명운 좌우할 '운명의 공'이 뜨다
  •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1.12.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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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그릇이 큰 대한민국 기대...

중국 남송의 유학자였던 주자는 송나라 명신들의 언행을 기록한 '송명신 언행록'에서 인물을 평가하는 몇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준들이 제시된다.

형편이 좋지 않을 때 어떤 사람과 친밀하게 지내는가, 부유할 때 어떤 사람에게 베푸는가, 높은 위치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채용하는가, 궁지에 몰렸을 때 부정한 행위를 하는가, 빈궁할 때 취하고자 욕심을 부리지 않는가...등의 기준들이다. 그런데 이 기준들은 일반 사대부나 선비들을 평가하는 기준일 뿐,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제왕이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선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나라를 다스리거나 이끈 최고 지도자라면 마땅히 그가 지닌 역사의식과 정치철학을 봐야 할 것이며, 그것의 발로로서 나라를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갔는지, 백성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피는 등 보다 복잡다단한 관점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7일 아침 급작스레(?) 서거한 북한 지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다.

그를 직접 보거나 만날 기회가 없는 우리들로선 우선 외국 지도자들의 평가에 의존해 김 위원장을 가늠해 볼 수 밖에 없다. 김 위원장에 대해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 평가는 미국 부시 前대통령의 독설을 들 수 있다. 북한과의 전쟁까지 마다않을 각오로 압박정책을 강행했던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악의 축', '폭군', '버릇없는 아이'라는 표현을 넘어 '피그미'(아프리카의 키작은 못난 부족)라는 용어까지 썼다.

부시의 이 같은 독설은 그의 대북 압박정책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2006년 중간선거 패배이후 대화기조로 선회할 때 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부시의 이 같은 평가는 언뜻 보기에도 상대를 대화상대로 인정치 않는 전제하에, 다분히 의도적이며 악의적인 모욕을 퍼부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을 약 올리려는 심리전의 면모라는 것이다. 부시의 이 같은 독설에 대해 김 위원장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독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미국이 대화기조로 선회했다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에 대해 독설을 퍼부은 이 중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 前 수상도 빼 놓을 수 없다. 리 수상은 김 위원장에 대해 "경기장을 활보하며 과찬을 갈구하는 무기력한 늙은이"라는 발언을 쏟아내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런 반면 김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도 없지 않다. 대부분 그를 만나 본 외국 지도자들의 평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前 총리는 2003년 1월 김 위원장과의 회담이후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주요 8개국 선진국 지도자들을 연구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내 놓았다. 아베 신조 前 총리도 "논리적이며 전략적인 인물"이라 평 한 바 있다. 푸틴 러시아 前 대통령은 2005년 5월 그를 만난 이후 "조국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1년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을 수행했던 풀리코프스키는 "김 위원장이 주변보다는 훨씬 진보적으로 보였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김대중 前 대통령과 함께 남북정상회담(2000년)을 실행했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평가가 눈에 띈다. 그는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실용적이며, 미국과 관계개선을 통해 개혁개방을 하려는 북한 내 대표적 친미성향의 인물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 남북문제를 잘 풀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마도 2000년 6월 김대중 前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각하께서 나를 은둔의 정치로부터 해방시켜 달라"며 농을 던지던 김 위원장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김 위원장에게서 받은 인상은 '대화가 통하는 사람' 또는 '앞뒤가 막힌 사람은 아니다'라거나 '호방한 면이 있는 지도자'라는 정도였다. 최근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거침없고 솔직했다"란 평을 전하고 있다.

평소의 김 위원장은 영화광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동서양의 영화란 영화는 모조리 섭렵할 정도였다는 소문이다. 남한의 유명 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을 납치한 사건은 영화광인 그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는 이제 갔다. 한반도의 역사를 끄는 한 쪽 축이 갑자기 사라진 이때가 남과 북의 한반도 전체 국민들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어쩌면 박지원 민주당 원내 대표의 말처럼 그가 있을 때 남북관계를 잘 풀어 평화체제 구축을 진행시켜 놓았어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념보다 실용을 추구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그 전 군부정권 시대의 사상적 지평보다 더 꽉 막힌 이념대결을 조장하다 경제발전과 민생안전이란 '실용'을 놓치는 결과를 초래한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이제 김 위원장 때 보다 더 불안정하며 격랑치는 북한 및 한반도 정세와 씨름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북정책 기조로 봐서 이 대통령에게 그런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슬기롭게 대응할 비전이 있는 지 의구스럽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 사태와 향후 1년간 한반도 정세는 이 대통령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불안하게 된 북한을 잘 상대해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안정적 발전이 긴요한 이슈로 등장한 지금, 이 대통령이 이를 잘 관리해 이끌 수 있는 역사의식과 비전을 갖추기만 한다면(없다면 남의 머리를 빌려서라도), 이는 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방지할 큰 건수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순간 대한민국은 진중해야 할 것이며,  전 민족의 운명을 건 지혜와 그릇이 큰 국민성을 발현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한반도 전체 국민의 명운을 좌우할 '운명의 공'은 이 대통령과 남한 국민들에게 넘어 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