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세대의 문명사(2)
386 세대의 문명사(2)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5.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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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년 농경시대의 마지막 목격자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이을 막중한 책무 있어

IMF이후 닥쳐온 386 세대의 위기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38선(38세 명퇴),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 은퇴)라는 말들이 생겨나며 그들을 압박하던 사회 경제적 풍조는 지금도 그들에게 좋지 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 고용정보원 고용대책모니터링 센터가 최근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 1월 40대의 실업급여 신청자 수가 3만1천5백72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2만1천2백32명보다 48.7%(1만3백40명) 늘어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에 실업급여를 신청한 40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53.1%는 실직 전의 사업장에서 1년도 근무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이같은 통계수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386 세대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 이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허리띠 졸라매며 보냈건만 아직도 그들의 고난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 발 금융위기가 새롭게 덮치면서 새로운 국면의 위기가 더 심화되며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차라리 10년 전 IMF때는 그때까지  모아두었던 쌈지돈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동안 이것 저것 해보며 그 쌈지돈 마저 다 소진한 상태다.

지난 정부(국민의 정부)는 “벤처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며 땜질식 경제처방으로 국민의 쌈짓돈에 대출창업을 부추겨 ‘온 국민 빚쟁이 시대’를 유도했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피해자가 된 386세대들은 이제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태’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혼신을 다해 일해 왔던 그들의 직장, 그들의 사회, 그들의 나라는 그들의 열정에 보답하기보다 38선으로, 사오정으로, 오륙도로 몰아내며 쌈지돈 마저 털게 만들었다.

물론 이런 위기는 유독 386세대만이 겪는 것은 아니다. ‘88 세대’라는 말이 있듯 오늘날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젊은이들은 변변한 일자리를 잡아보지도 못한 채, 아르바이트니 인턴이니 하며 비정규직 88만원짜리 수입을 전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88세대보다 386세대의 위기가 더 심각함은 그들이 이 나라의 허리 층을 이룬 데다 한창 처자식을 부양해야 할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처자식이 딸린 상태서 한창 일 할 나이에 겪어야 할 그들의 위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386세대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가? 필자는 386세대의 희망을 그들이 지닌 ‘문명사적 의미’에서 찾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 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 소년기와 80년대 청년기를 보내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그들은 수 천 년을 이어온 이 땅 농경시대의 마지막 목격자들이다.

그들은 할머니의 물래 젓기와 베틀놀이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지게와 소ㆍ쟁기, 아버지의 경운기, 자신의 자동차와 최첨단 컴퓨터로 이어지는 수 천 년, 아니 1만년 동안 진행된 문명 발전 단계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마지막 세대들이다.

1만년 문명의 유전인자를 한 필름에 감아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들이라는 말이다. 386세대의 이런 문명사적 경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문명을 하나로 연결하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세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돈 문제를 놓고 말이 많다. 아울러 ‘친노 386’에 대해 낙인을 찍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386은 이렇듯 정치적 의미만 지니는 세대가 아니다. 정치를 넘어 문화사적, 문명사적 의미를 지닌 세대들이다. 이 땅 이 나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야 할 거대한 책무를 지닌 세대들이다.

386들이여, 분발하라. 젊은 시절의 열정을 잊지 말라. 그리고 어서 빨리 486ㆍ586으로 업그레이드된 이름을 남겨라.       

권대섭 대기자 kd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