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설날 ‘제야의 종’,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발행인칼럼] 설날 ‘제야의 종’, 한 번 생각해 봅시다.
  • 이은영 발행인
  • 승인 2012.01.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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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상징성도 없는 보신각 떠나 광화문 광장으로 옮기면 어떨까?

설날을 앞두고 생뚱맞게 ‘제야의 종’에 대해 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지 의아할 독자들도 있겠다.

올해가 며칠 지나지 않아 전통문화 분야에 전문가라 할 한 지인과 전화로 신년덕담을 주고 받던 중 그가 갑자기 ‘제야의 종’ 이야기를 꺼냈다. “문화신문을 발행하고 계시니 보신각 타종을 비롯 제야행사와 관련해 샅샅이 보셨겠어요?”라고 툭 던지 듯 말했다.

그가 지적한 ‘제야의 종 행사’ 에 대한 불만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보신각 타종식을 볼 때마다 늘 그렇듯이, 올해도 너무 옹색해 답답한 심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말해보자’며 보신각의 정체성과 행사의 의의 등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줄줄이 털어놨다. 보신각과 범종 모두 진짜가 아니고 보신각의 위치마저도 원래의 장소가 아닌 곳으로 오리지널리티도 찾아 볼 수 없는, 적은 인파에도 미어터지는 그곳에서 옹색하게 새해를 맞아야 하는지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엄숙함과 경건함을 동반한 행사인데 그에 걸맞는 공간과 의식을 갖췄으면 한다며 구체적인 대안까지도 줄줄이 쏟아냈다. 

지인의 지적과 대안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내용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타종 행사는 원래 불교 의식에서 유래했다. 33번 종을 울리는 이유는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 세상인 도리천(33천)에 닿으려는 꿈을 담고 있으며, 나라의 태평과 국민의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조선시대에 성문을 여는 신호인 ‘파루’에  보신각 종을 33번 친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의 불교 의미를 차용했다 한다.

오늘날 제야의 종 타종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서다. 1927년 2월 16일에 첫 방송을 개시한 경성방송국에서 특별기획으로 1929년 정초에 제야의 종소리를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이 시초다.

그래서 일부에서 제야의 종 타종식이 ‘일제잔재’이므로 폐지돼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해방 이후 끊겼던 이 행사가 1953년 말부터 재개됐고 조선시대에 줄곧 인경과 파루종으로 보신각종이 사용되었다. 이후 국민의 성금으로 새로 주조된 종이 1985년 8월 14일 보신각에 걸렸고, 8월 15일 광복절에 처음 타종되는 역사를 거쳐온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제가 끼어들어 타종행사를 시작했다고 하나 종교를 떠나 깊은 의미가 담겨진 타종식은 계속 이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 해를 보내며 반성과 아쉬움을 달래며 새해 소망을 비는 의식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재야행사들은 모두가 하나 같이 유서 깊은 그 나라의 대표 상징물(거의 문화유산)이 있는 명소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그들만의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다. 중국(천단공원), 영국(빅벤 주변), 프랑스(개선문과 샹젤리제거리, 에펠탑), 독일(브란덴부르크문 광장), 러시아(크렘린궁전과 붉은 광장), 호주(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그리스(아테네신전 일대)...등

물론 우리나라에도 분단 상징의 하나인 임진각에서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제야행사가 있기도 하다.
위의 지적대로 정체성도 의의도 제대로 찾을 수 없는 타종행사라면 차라리 공간도 넓은 광화문에서 하는 것을 어떨까?

광화문에는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던 세종대왕님도 앉아 계시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온 몸으로 막아내신 이순신 장군도 계신 터라 타종 의식이 가진 국태민안의 기원과도 딱 들어맞는 조합을 이룬다

타종에 쓰일 종은 현재 덕수궁에 있는 흥천사 동종을 다시 걸면 좋을 듯 하다. 흥천사 동종은 흥선대원군이 광화문 중건시 광화문 문루에 걸었다가 1910년 9월 일제에 의해 떼어진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동종이 다시 광화문 문루에 걸린다면 일제에 의해 입었던 상처 치유 효과까지 보태진다. 또한 배경으로 경복궁이 자리하고 있으니 보기에도 훨씬 격조있는 그림이 나온다.

설날을 앞 둔 세밑에 철 지난 이야기처럼 ‘제야의 종’ 행사를 거론하는 것은 올 한 해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옹색하지 않게,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해 의미있는 한 해의 시작을 맞으면 좋지 않겠나. 그래서 2012년 12월 31일 ‘제야의 종’ 행사를 좀 더 품격 있는 축제로 승화시켜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