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 땅의 예술작가...정치를 풍자하다
[데스크칼럼]이 땅의 예술작가...정치를 풍자하다
  •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2.01.18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동천 교수 ‘탁류’(Muddy Stream)...국민에게도 경종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1980년대 각하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한 탈랜트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됐습니다. 그만큼 방송매체의 영향력에 대해 정치가 민감하게 대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엔 개그 콘서트(개콘) <사마귀 유치원>에서 정치 풍자 코미디를 벌이던 한 개그맨이 모 국회의원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그 콘서트는 더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됐지요.

정치인 성대모사로 유명해진 이도 있습니다. 방송인 배칠수씨입니다. 그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대통퀴즈’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정부정책을 풍자하는 개그를 선보였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런 정치개그가 인기를 끄는 이면엔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진짜 웃기는 정치풍토’가 있다는 겁니다. 만약 정치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얻었다면 정치개그를 벌일 방송인도 없을 것입니다.

어찌 방송인뿐이겠습니까? 정치풍자는 이제 미술계 자락까지 적시며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습니다. 미술가 윤동천 교수(서울대 서양화과)가 지난해 11월부터 새해 1월 15일까지 수송동 OCI 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탁류(Muddy Stream)’는 가히 압권입니다. ‘탁류’란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들은 온통 이 땅의 ‘정치가들을 위한 도구’들로 설치한 연작이었습니다. 미술관 3개층 전관을 활용, 52점의 평면과 설치작업을 해 놓았습니다.

 

투명한 아크릴 박스 속에 곱게 모시듯 해 놓은 파리채와 락스, 끈끈이, 세척제, 살충제 등을 보며 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또 너무 지나친 정치혐오증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랄한 분위기였습니다. 평범한 일상용품들이 발상 하나에 따라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나뭇가지에 군모를 질끈 묶어 만든 똥바가지의 배치도 기가 막힐 정도였습니다. 윤교수는 애드벌룬에 철선을 이용해 만든 오리발에 ‘정치가’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습니다. 정치가들이 귀를 막고 있다는 뜻의 ‘경청’, 못 지킬 약속을 한다는 ‘공약’. 몰려 다니는 철새 떼에 비유한 ‘특질’, 검은 안감을 댄 버선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의 ‘속’ 등의 설치연작들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풍자로 공감을 일으켰습니다. 모두가 이땅의 정치인들을 향한 경종의 메시지였습니다. 정신 차리라는 뜻이랍니다. 생활주변에 흔해 빠진 물품들이 이리 근사하게 정치인들에게 충고하며 꼬집는 도구로 활용됐습니다. 그 기발함과 창의성, 샤프한 끼를 감상하는 재미가 솔솔했습니다. 덧붙인다면 이런 설치 작품들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어필, 잘못된 정치풍토와 정치인들을 용납하는 어리석은 국민들에게도 동시에 경종을 울렸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아무리 정치인들을 풍자해 봤자 결국은 그 국민에 그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사과가 사과나무 밑에만 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 국민이 있기에 그런 정치인과 그런 정치 풍토가 가능한 것입니다.

요즘은 모 정당에서 돈 봉투를 돌린 일로 시끌벅적합니다. 국민의 눈총이 따가우니 쇄신한다고 난리겠지만 선거 때가 되면 다시 지역감정에 따라 표를 결정하는 어리석은 국민들이 숱하게 있을 겁니다. 남북관계에선 미국과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을 거부했다는 소식입니다. 평화와 협력으로 통일대국의 길을 걸어갈 ‘큰 정치’의 기미는 아직 멀어 보입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저런 정치 난제들이 오히려 방송 개그를 통해, 또는 미술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을 일깨우며 웃게 하며, 문화예술 재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그 어떤 소재로도 문화와 예술을 풍부하게 구성해 가는 이 땅의 많은 작가들...그들의 끼와  창의성, 부정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은 낙천적 웃음을 선사하는 솜씨 앞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