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현대문학] ‘애정남’ 박인환의 ‘달과 서울 사이’(2)
[내맘대로 현대문학] ‘애정남’ 박인환의 ‘달과 서울 사이’(2)
  • 임동현 객원기자
  • 승인 2012.01.1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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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어, 오르페!”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추위를 잘 타는 필자에게는 반가운 소리가 아닌 이 말. 이것은 박인환이 더운 여름날 겨울 코트를 입고 어느 다방에 나타나서 외친 말이라고 한다. 한여름에도 비싼 겨울 코트를 걸치고 거들먹거릴 정도로 박인환은 멋부리는 것을 좋아했다.

박인환은 50년대 중반 대한해운공사에서 근무했지만 생활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의 ‘멋내기’ 때문이었다. 그는 월급의 대부분을 옷을 장만하는 데 썼다. 계절에 따라 코트와 양복을 바꾸고 영국 신사처럼 멋을 내며 명동을 돌아다니던 사람이 박인환이었다.

그의 멋은 옷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술도 계절에 따라 다른 위스키를 즐겼는데 특히 ‘조니워커’를 좋아했다. 박인환이 죽고 그를 망우리 땅 속에 묻던 날, 동료들이 눈물을 흘리며 수십 갑의 담배와 함께 묘지에 뿌렸던 술이 바로 조니워커였다.

이런 그를 보며 동료들은 때때로 ‘미친 녀석’ 운운하며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박인환은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빙긋 웃으며 그 말들을 들어주곤 했다. 어쩔 때는 “야, 꾀죄죄한 옷 좀 바꿔 입어라”라고 웃는 얼굴로 동료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여자와 서울 뒷골목을 누벼도 아무 문제 없었어!”

박인환은 은근히 ‘뻥이 센’ 인간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그는 권투를 잠깐 배운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동료들에게 한때는 여자를 데리고 서울 뒷골목을 누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그 말을 듣고 동료들이 웃으면 그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그는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같이 좋아하며 이야기를 계속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감격벽은 대단했다. 그가 좋아하던 시인이자 영화 감독이기도 했던 장 콕토의 '오르페우스'를 보며 그 자리에서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고 오손 웰스의 영화 '제3의 사나이'를 보고 나서는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조셉 코튼의 역할을 꼭 해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무엇인가에 꽂히면 거기에 몰입하는 그를 보며 동료들은 배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박인환은 사실 대단한 배우였다. 시를 읊을 때도, 이야기를 할 때도 그는 항상 배우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졌다. 그래서 그를 좋아하는 여성 독자들도 많았다. 이런 스타일의 남자를 보면서 은근히 ‘바람둥이’를 연상하는 독자들이 계실 지도 모르지만 안심하시라. 박인환은 한 번도 아내를 버리지 않았고 아내를 계속 사랑했다.

■‘대단한 배우’ 박인환

그러나 생활비까지 탕진하며 멋을 내고 다녔다는 점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분들도 계실 것이라 생각된다. 뒷날 박인환은 직장을 그만둔 뒤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것 또한 그의 죽음을 앞당긴 한 이유가 됐다. 생활의 찌듬을 드러내지 않고 멋의 가면을 쓰고 명동을 누볐기에 박인환은 ‘대단한 배우’로 불리기에 충분했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리던’ 시대의 상황 속에서 박인환은 그 모든 죽음을 부정하고 멋과 감격과 기쁨의 삶을 누리며 버티고 싶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멋이 있었기에, 그의 감격벽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박인희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세월이 가면'을 만나고, 읊조리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 바로 그 '세월이 가면'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