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 참 아련하다.
정동! 참 아련하다.
  •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 승인 2012.02.0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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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 덕수궁터 보존, 가장 큰 힘은 시민들 지지와 성원

목수 신영훈 선생님께 한옥을 배우며 전국을 누비는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당시 전국을 답사하며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을 넓힌 것은 현재 나의 토대가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특히 한국 건축의 집대성격인 궁궐건축을 배울 기회도 많았다. 이후 홍순민 교수를 통해 궁궐의 역사를 함께 답사하며 배웠고 덕수궁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그때이다.

덕수궁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태조와 신덕왕후의 정릉을 알게 되고, 임진왜란과 선조, 조선후기 고종과 대한제국, 그리고 현대사의 질곡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600여년의 역사와 정치사, 문화와 건축사를 이해하게 된다.

2002년경 일제에 의해 훼손된 덕수궁의 선원전터(구 경기여고 터)에 18층짜리 미국대사관과 9층짜리 미군해병대 숙소가 들어선다는 계획을 알고 난 후, 나와 동료들은 덕수궁 터를 보존하기 위해 4년 반을 싸웠다. 나는 그 기간을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힘들 것이라는 생각 없이 “문화재 보존 운동”에 뛰어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나는 김정동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현재 목원대 교수이며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장이다.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1970년대 젊은 시절부터 이 땅에 있는 근대 건축을 조사하고 기록하고, 의미를 남긴 분이다.

정동의 덕수궁터 보존을 위해 우리 4인방은(강찬석, 강임산, 천준호, 황평우) 김정동 교수에게 정동의 역사, 근대 건축사를 지도 받았다. 특히 우리 넷은 자신들의 모든 안테나를 동원하며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고 대응해 나갔는데 정동의 덕수궁터 보존에 있어서 가장 큰 힘은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러한 시민들의 문화재 보존의지를 인정해준 노무현 정권과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 해주고 대사관을 용산고 옆의 ‘캠프 코이너’로 이전해서 건축을 하는 미대사관측에 감사를 표한다. 물론 ‘캠프 코이너’ 자리에도 환구단이 만들어 지기 전에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던 남단 터가 남아 있으므로 잘 보존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지난 1월 26일 정동 일대 근대문화유산 관련 18개 기관 및 단체 관계자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가 '정동 프로젝트' 원년임을 선포하는 신년하례식을 개최하면서 정동 일대 근대문화유산 관련 기관 및 단체 간 친목과 교류는 물론, 나아가 정동 일대 근대문화유산의 자발적 보전활동과 지역 활성화 등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처음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 당시 정동의 덕수궁터 보존운동을 할 때는 정동 일대 근대문화유산 관련 기관 및 단체 관계자가 참여나 지원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 정동 프로젝트에는 기대를 해 볼 일이다. 정동 일대 유서 깊은 근대문화유산에 깃든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시민들과 널리 공유해 가고, 지역사회 구성원 각자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 공동체 만들기의 전형을 만들어 갈 것을 권유하며 과거 정동과 덕수궁터 보존을 위해 싸웠던 기록도 잘 기억하기 바란다.

1월 26일 오후 2시! 강찬석은 암투병중이다. 천준호는 서울시장을 보좌하고 있었고, 나는 지방 출장이었다. 김정동 교수는 학교에서 책과 씨름 중이었다. ‘정동 프로젝트’ 에 관해서 자신(정동)을 지켜주고 기억해서 너무 고맙다고 한다.

강임산은 문화유산신탁법인에서 사무국장역 을 수행하고 있으며 정동을 살리자는 하례식 준비를 했고 4인방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

강찬석 선배가 빨리 쾌유되어 같이 정동을 걷다가 또 논쟁을 하고 막걸리도 마시고 싶다. ‘뻥’ 수준의 자랑과 만담도 이제는 다 들어줄 터이니 제발 일어나기만을 학수고대하겠다.

그래서 정동은 나에게 참 아련하게 남아있다.


[프로필]
▲종로역사문화박물관(육의전) 관장 (2012년 5월 개관)
▲문화연대 외규장각 약탈문화재환수 특별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