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일본속보]재일교포 김 석범 작가'과거로부터의 행진' 출간
[이수경의 일본속보]재일교포 김 석범 작가'과거로부터의 행진' 출간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2.02.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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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와나미 서점 발행,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재일교포 유학생 불행한 삶 그려

제주도 4.3 사건에 대해 일본에서 [화산도(火山島)]라는 명작으로 당시의 실태를 고발하고 기록하여 널리 알려진 재일교포 작가 김석범씨(1925년생)가 일본을 대표하는 이와나미 서점에서 [과거로부터의 행진(過去からの行進)]이라는 책을 출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석범 작가

필자는 지난 2월 24일,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음식점인 [청학동]으로 가서 막 인쇄 출판을 끝낸 책을 갖고 오신 김 석범 작가와 만났다. 상・하권으로 나눠진 두꺼운 책 두 권은 아직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를 할퀴고 간 흔적을 다룬 아픔만큼이나 무거웠다.

이와나미 서점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세카이(世界)]에 2009년 4월호부터 2011년12월호까지의 2년6개월 동안을 연재(2011년 5월호는 대지진 특집땜에 쉼)했던 장편을 편집하여 출판하게 된 것이다. 내용은 우리 사회가 군부 정치로 혼란을 거듭할 즈음에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사건이 일어나고, 그 와중에 희생이 된 교포의 인간 포기와 극기가 그려져 있다. 당시의 이념 논쟁의 희생이 된 사람 중에 몇 십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적지 않다.

시대가 다르고 민주의식이 싹트면서 사람으로서의 권리나 주장이 나오지만, 그런 주장을 억압하고 지배하며 강압적 정책을 써왔던 우리의 슬픈 기억이 행간에 스며들어 있다. 책 표지의 소개글을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군부 정치 때 재일 교포 유학생인 한성삼(韓成三)이 어느날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한 폭력을 받게 된다. 결국 굴복하고 심신이 깊은 상처를 입게 된 한 성삼은 일본에 돌아온 뒤, 술에 빠져 영혼이 빠진듯한 생활을 하게 된다. 몇 년 후, 그를 고문한 정보부(중앙정보부) 요원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들의 공작에 협력해라]…

결국 군정 당시 극단적으로 치닫던 이념 문제를 정책의 이용 수단으로 삼던 정보부의 희생이 된 재일 교포 유학생의 불행한 조국에서의 아픔을 통해 연로한 작가가 휘신을 다하여 토로하고자 한 것은 조국의 비애에 대한 울부짖음이기도 하다. 그런 불행한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착이 내용 행간마다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분단된 조국의 희생으로 폐인과 같은 생활을 보내던 주인공이 어떤 운명에 놓이는지, 어떻게 인간 회복(부활)을 하게 되는지를 그려놓은 이 책은 결코 재일 교포만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한민족으로서의 아픔을 어떻게 나누고 치유해야 하는지,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지금도 하나의 통일 평화 조국을 간절히 원하는 김 석범 작가의 눈빛은 항상 분단된 국가의 디아스포라로서의 슬픔으로 가득 잠겨져 있다. 만나는 곳은 언제나 삼겹살이나 닭한마리 등의 한국요리를 잘하는 음식점이다. 그런 작가는 87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실 일이 많다고 매일같이 바쁜 일정에 쫓기신다.

 

▲필자 이수경 교수
거리를 걸을때도 흐트럼없는 곧은 걸음으로 젊은 우리들보다 빠르게 걸으신다. 그런 의지력으로 2년 6개월이란 긴 시간을 들인 장편 소설이 출판이 되었으니 가슴은 한결 가벼워졌으련만,하나였던 조국의 분단과 그 분단 속에서 파생된 수 많은 내 민족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모습은 결코 가볍지가 않다.

 

작가의 아픔이 영글거리는 이 책 속에는 우리 사회가 겪어왔던 과거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챙길 수 없었던 재일 교포들의 생활과 고뇌가 표출되어 있고, 국경을 간단히 넘을 수 있는 다문화 사회가 된 지금도 아직 일그러져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