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詩세계
물 잔에 담기는 달빛
윤범모
우물을 판다
한 삽만큼 비워지는 땅
그만큼 채워지는 바람
(하기야 우리네 삶, 바람이 왔다 가는 일이지)
우물 한 두레박 퍼 올린다
보름달도 덩달아 끌려온다
친구들 잔에 물을 따른다
잔 가득히 나누어 주어도
달빛은 줄어들지도
상처를 남기지도 않는다
그대 잔 속에 담긴 달빛 우물
초승달인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보름달인가
(아니, 우물 팔 땅만 필요하다고?)
*우리네 삶은 어쩌면 매일 우물을 파면서 “한 삽만큼 비워지는 땅”에 한 삽만큼 바람을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판 그 우물에 한 삽만큼 고이는 우물물을 퍼 올리다 간혹 그 우물에 빠진 보름달까지 함께 퍼 올리며 새로운 꿈에 젖는 것... 그래. 우리네 삶은 어쩌면 “그대 잔 속에 담긴 달빛 우물”처럼 잠시 흔들리다 사라지는 그런 것일 게다. ‘영원’이 아닌 ‘순간’ 말이다.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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