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가’ 박인환을 소개합니다
‘문화비평가’ 박인환을 소개합니다
  • 임동현 객원기자
  • 승인 2012.03.1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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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현대문학] ‘애정남’ 박인환의 ‘달과 서울 사이’(5)

1949년 한 권의 동인시집이 출간됐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이 시집에 참여한 시인들은 당시 서정주를 위시한 전통적 서정시에서 벗어나 후기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선보였다. 박인환, 김수영, 김경린, 김병욱 등 ‘마리서사’를 거점으로 뭉쳤던 시인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이 시집은 50년대 후기 모더니즘의 등장을 알린, 한국 시사(詩史)에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중심엔 박인환, 그리고 김수영이 있었다. ‘신시론’의 동인이었던 둘은 절친이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는 사이기도 했다. 박인환은 어려운 시어를 써가며 심오한 이야기를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속내용은 단순하다면서 김수영의 어려운 시를 비판했고 김수영은 센티멘탈과 겉멋에 찌든 시에 불과하다며 박인환을 비판했다.

술에 취해 서로를 비판하고 내가 옳으니 네가 틀리니하며 으르렁대다가도 결국 서로를 부둥켜안고 화해했던 그들의 행복은 전쟁의 포화와 함께 참담하게 깨져가고 있었다.

김수영과 박인환의 슬픈 갈등

6.25가 터지자 박인환은 대구로 내려가 육군 종군 작가단에 들어가면서 종군 기자가 됐지만 김수영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는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던 두 사람. 전쟁의 상처는 결국 두 사람의 우정에 큰 장애물이 되고 만다.

반공 포로와 공산 포로의 끝없는 싸움, 서로가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시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려두는 참혹한 수용소의 모습. 김수영은 그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세상이 결코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게 깨달았다. 너무나 큰 상처를 입고 서울로 돌아온 김수영에게 박인환의 센티멘탈리즘이 좋게 보일 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가난과 굶주림에 쓰러져가는데 ‘한잔의 술을 마시고...’가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 때문에 김수영은 박인환을 멀리하게 되고 심지어 독설까지 퍼부어댔다. 그가 쓴 글에서 그는 박인환을 싫어하는 이유를 이렇게 썼다. “그처럼 재주가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의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몰랐던 박인환의 뒷모습

하지만 박인환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김수영이 비난하는 것처럼 그렇게 ‘댄디한’ 삶만을 살았던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1949년 자유신문 기자였을 당시 다른 네 명의 동료 기자들과 남한 단독정부의 수립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체포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사회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게다가 그는 문화비평을 통해 한국의 문화가 나아갈 길을 제시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1948년 초에 쓴 ‘아메리카 영화 시론’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아메리카 영화를 감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의식을 뺏기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아메리카인의 기계화되고 모노폴리화된 영화가치보다도 흥행가치에 중점을 둔 영화로 잠시간은 재미있게 보내나 그 고화가 우리에게 주는 한 가지 의문은 자기 계급이 어디 있는지 똑바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또한 1956년에 썼다는 글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오래도록 미국 영화는 남의 것을 가지고 많은 좋은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이러한 독창적인 스타일은 구라파를 그리고 전통이라는 것을 미국이 완전히 이해하고 배웠다는 것을 의미하는 새로운 증좌다’

장 콕토의 영화, 오손 웰즈의 <제3의 사나이>를 보고 영화관에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감격벽의 소유자 박인환. 그렇지만 그 영화를 보는 박인환의 시각은 냉철했다. 미국 영화에 심취해도 우리의 의식은 뺏기면 안 된다라는 그의 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박인환의 ‘댄디함’ 뒤에는 문화를 보는 냉철한 시각과 식견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박인환을 재평가하는 사람들은 박인환이야말로 현실적인 글을 쓴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구사한 시는 멋으로 쓴 글이 아니라 전쟁 후의 황폐함을 바탕으로 한, 50년대 한국인의 공허한 마음을 표현한, 현실에 바탕을 둔 시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탁월한 문화비평가이자 시인이었던 그가 이처럼 과소평가를 받은 이유는 김수영과의 소원한 관계도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김수영의 과한 비판이 박인환을 김수영과 완전히 반대의 길을 간 시인이라고 사람들에게 기억됐다는 것이다.

 

글쓴이:'임동현

세상사, 특히 문학, 영화, 예술에 관심은 있지만 기웃거리기만 하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