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기행-작가 정소성, 시대를 줍다]
[맛기행-작가 정소성, 시대를 줍다]
  • 정소성 단국대명예교수
  • 승인 2012.03.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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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시장 갈치조림 골목

나는 뭐든지 잘 먹는 식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와서 무슨 까닭인지 밥맛이 영 없다. 그래서 입이 당기는 만큼만 먹었더니 몸무게가 5킬로나 빠져 버렸다. 무슨 병인가 해서 의사 진찰까지 받았으나 건강은 정상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먹어가는 나이 탓인 듯하다.

▲필자 정소성 단국대명예교수

그러나 나는 요즈음 와서 내가 밥맛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식사 그 자체가 맛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밥이 잘 지어졌고, 국과 반찬이 잘 장만되어 있으면 밥 한 그릇을 제대로 비우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문학을 전공하고 외국 생활을 조금 오래한 편이지만 식성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한국식이다. 하물며 결혼식장의 피로연에서 나오는 양식은 딱 질색이다. 나는 커다란 고기덩이를 칼질하여 그냥 한 두 조각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한다.

커다란 접시에 고기덩어리 말고는 정말 야채라고는 손톱만큼 올려져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례를 하거나, 결혼식장에 갔을 경우, 그냥 굶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사이는 꾀가 나서 결혼식장에 갈 때는 집에서 먼저 식사를 하고 간다. 그래야만 허기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지방에 있는 직장(공주대) 관계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집을 비우기 때문에 나는 하루 식사 세끼에 골머리를 앓는다. 어떻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기야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남대문시장 갈치조림

지방에 직장을 가진 아내를 가진 것도 나의 운명이다. 어찌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있으랴. 35년을 이렇게 살아 온 것을...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식당 안내책자를 손에 들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내 식성이 맞는 식당을 찾아 헤맨다.

누군가가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갈치조림집에 가보라는 말을 했다.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시장 한 복판으로 한 3백 미터쯤 내려오면, 좌편으로 갈치조림 골목이 있다. 내 식성에 딱 맞는 집이었다. 나는 단번에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비슷비슷한 갈치조림집들이 임립해 있지만, 흔히들 희락 식당을 제일로 치고, 역사가 50년을 넘었다고들 한다.

젊은이들 데이트 코스는 못되고, 나같이 밥맛없어 고생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가 볼만하다.

고춧가루와 마늘을 많이 넣어 갈치를 잘 조리했는데, 맛이 정말 한국적이다. 연애를 오래하여 정이 깊이 든 사람들은 여기로 가도 괜찮다. 하지만 설익은 연애를 하여 체면을 생각해야 할 처지라면 말리고 싶다. 시장 바닥이니 낭만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필자 정소성
소설가. 1977년 <현대문학>에 단편 ‘질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불문학과를 마친 뒤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프랑스 그로노블 3대학에서 생떽쥐페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단국대학교 교수를 맡고 있다가 지금은 같은 대학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1985년 <아테네 가는 배>로 제17회 동인문학상을, 같은 해 <뜨거운 강>으로 제1회 윤동주문학상을 받았다. <소설 대동여지도>로 월탄문학상을, 중편소설 <말>로 박영준문학상 받음.
창작집으로 <아테네 가는 배><혼혈의 땅> <뜨거운 강>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천년을 내리는 눈> <안개 내리는 강>(상, 하) <최후의 연인> <사랑의 원죄>(상, 하), <사상의학> <소설 대동여지도>(5권) <여자의 성>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