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든지 잘 먹는 식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와서 무슨 까닭인지 밥맛이 영 없다. 그래서 입이 당기는 만큼만 먹었더니 몸무게가 5킬로나 빠져 버렸다. 무슨 병인가 해서 의사 진찰까지 받았으나 건강은 정상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먹어가는 나이 탓인 듯하다.
그러나 나는 요즈음 와서 내가 밥맛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식사 그 자체가 맛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밥이 잘 지어졌고, 국과 반찬이 잘 장만되어 있으면 밥 한 그릇을 제대로 비우기 때문이다.
나는 서양문학을 전공하고 외국 생활을 조금 오래한 편이지만 식성 하나만큼은 철저하게 한국식이다. 하물며 결혼식장의 피로연에서 나오는 양식은 딱 질색이다. 나는 커다란 고기덩이를 칼질하여 그냥 한 두 조각 입에 대는 둥 마는 둥 한다.
커다란 접시에 고기덩어리 말고는 정말 야채라고는 손톱만큼 올려져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례를 하거나, 결혼식장에 갔을 경우, 그냥 굶고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사이는 꾀가 나서 결혼식장에 갈 때는 집에서 먼저 식사를 하고 간다. 그래야만 허기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지방에 있는 직장(공주대) 관계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집을 비우기 때문에 나는 하루 식사 세끼에 골머리를 앓는다. 어떻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기야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두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가.
지방에 직장을 가진 아내를 가진 것도 나의 운명이다. 어찌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있으랴. 35년을 이렇게 살아 온 것을... 그래서 나는 여러 가지 식당 안내책자를 손에 들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내 식성이 맞는 식당을 찾아 헤맨다.
누군가가 남대문 시장 안에 있는 갈치조림집에 가보라는 말을 했다. 4호선 회현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시장 한 복판으로 한 3백 미터쯤 내려오면, 좌편으로 갈치조림 골목이 있다. 내 식성에 딱 맞는 집이었다. 나는 단번에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비슷비슷한 갈치조림집들이 임립해 있지만, 흔히들 희락 식당을 제일로 치고, 역사가 50년을 넘었다고들 한다.
젊은이들 데이트 코스는 못되고, 나같이 밥맛없어 고생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가 볼만하다.
고춧가루와 마늘을 많이 넣어 갈치를 잘 조리했는데, 맛이 정말 한국적이다. 연애를 오래하여 정이 깊이 든 사람들은 여기로 가도 괜찮다. 하지만 설익은 연애를 하여 체면을 생각해야 할 처지라면 말리고 싶다. 시장 바닥이니 낭만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