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울연극협회 박장렬 회장] "현장이 살아있는 한, 연극은 영원불멸합니다"
[인터뷰-서울연극협회 박장렬 회장] "현장이 살아있는 한, 연극은 영원불멸합니다"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정리-이지연 기자
  • 승인 2012.04.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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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연극제, "깊이있는 정통연극의 진수 선보일 예정"

 

최근 지나치게 오락성을 강조한 상업연극이 대학로를 점령하면서, 정통연극은 점점 설 자리를 이어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공연예술의 메카 대학로에는 3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철통같이 정통연극을 지켜온 단체가 있다. 오는 16일부터 열리는 ‘2012 서울연극제’를 준비하고 있는 ‘서울연극협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4년, 출범한 ‘서울연극협회’는 연극의 사회적 위치와 정신을 확대하고, 나아가 연극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노력해왔다.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하는 ‘2012 서울연극제가’가 오는 16일부터, 5월 13일까지 대학로 일대 공연장(아르코예술극장 대·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대·소극장, 설치극장 정美소)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소통과 희망’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연극제는 인간과 세계를 심도있게 구현한 연극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소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의 참된 실천을 위해, 서울연극협회는 연극제 총 수익의 3%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공연 외에도 ‘배우 100인의 독백’, ‘꿈나무 도서바자회’, ‘관객평가단’ 등의 부대행사도 준비돼 있어,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축제가 될 전망이다.

이렇듯, 2012 서울연극제가 많은 화제를 모으는 가운데,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는 서울연극협회의 박장렬 회장을 만나 이번 연극제의 취지와 더불어,  우리 연극계의 비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 주- 

- 이번 연극제의 주제가 ‘소통과 희망’인데요. 

올해는 나라안팎으로 복잡한 문제들이 많이 얽혀있는 해인 것 같아요. 곧 있을 총선과 연말에 있을 대선으로 정치판은 들썩이고, 문화계 역시 주요 기관들의 인선문제로 잡음이 많습니다. 각자의 의견과 의견이 거세게 충돌하는 요즘, 연극을 통해 개인과 개인의 문제 혹은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고찰해보자는 취지에서 주제를 그렇게 정했습니다.

▲박장렬 서울연극협회장

 - 굉장히 뜻 깊습니다. '소통을 통해 희망을 본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사실,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나오잖아요. 연극은 비록 가공된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 속에 세계를 구현하고 있어요. 연극을 보면서 나를 이해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우리가 속한 세상을 한 번 살펴보자는 거예요. 그렇게 ‘이해’를 쌓으며, 서로간의 갈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된다면 그것 자체가 ‘희망’인 거죠. (웃음)

- 이번 연극제 총 수익금의 3%를 기부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기부금은 어떻게 쓰이게 되나요?

그동안 연극인들이 많이 고민했어요. 관객분들이 주시는 사랑에 어떻게 보답할 지를요. 그래서 지난 2010년부터 연극제를 통해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뜻을 모았어요.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관객-공연단체-사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기부문화 확립에, 우리 연극인들이 기여할 수 있어 기쁩니다. 기부금은 연극제 개막날, ‘아름다운 연극인상’을 수상하실, 돌아가신 고 김영환 연출가 선생님께 일부 전달될 예정이에요. 그리고 나머지 기부금은 연말에 종로구청이나 사랑의 열매에 보낼 계획이예요.

-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이 지원금 1억을 사전논의도 없이 삭감해, 연극계에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던 일이 떠오르네요.

그때 연극제 개막을 한달 반 정도 남겨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았어요. 평생을 연극에 정진하며 살아온 많은 연극인들이 상당히 충격을 받았죠. 연극단체의 장기적 투자와 공연의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안정적인 기금확보가 가장 중요한데, 그런 식의 조치는 연극제를 하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죠. 다행히 올해, 예산이 복원됐어요. 하지만 서울문화재단은 축제 하나당 지원금 액수를 제한하고 있어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서울시로부터 직접 예산을 받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 그렇다면, 서울시에서도 동의를 하고 있나요?

 연극제를 지원하는 일보다, 실질적으로 복지쪽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예산을 들여 ‘피맛골 연가’같은 대형 오케스트라 뮤지컬을 직접 제작하는 건 공평한 처사가 아닌 것 같아요. ‘피맛골 연가’ 제작비의 일부분만 서울연극제에 투자해도 저희한테는 큰 도움이 되거든요. 그리고 모든 예술공연은 민간차원에서 추진되야 된다고 생각해요. 공무원들이 직접 공연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등의 행위들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이 전 시장 재임시에는 실제로 그렇게 해서 효과를 거둔 적도 없어요. 그러나 이번 시장님께는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 기업으로부터 후원도 많이 받지 않으시나요?

우리투자증권이 2년 연속으로 매달 천만원씩 협회를 지원해 오고 있어요. 현금이 아니라, 천만원 어치의 연극표를 사주는 방식으로요. 우리투자증권은 그렇게 구입한 연극표를 영업소를 찾는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어요. 대단히 반응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역시 관객을 많이 유치해서 좋구요. (웃음)

-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극의 메카 대학로를 한국의 에딘버러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대학로는 반경 1km내에 공연이 상시 이뤄지는 연극무대가 143개나 몰려있는 곳이에요. 어디 그뿐인가요? 주변에 경복궁 등의 문화재와, 쇼핑센터도 갖추고 있어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유치할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셈이죠. 게다가 대학로는 민간인들의 투자로 자생화 된 곳입니다. 때문에 행정적인 지원만 뒷받침돼 준다면, 불가능한 꿈이 아녜요.

- 대학로에 거주하는 민간인들의 의지는 충분하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어차피 다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고, 따로 홍보할 필요도 없이 관객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곳이 대학로 아닙니까? 문제는 행정가들이 구체적이고도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줘야 한다는 점이죠. 단순히 대학로의 비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비전이 되야 해요. 일단, 몇 개 극장을 지정해서 번역된 자막도 흐르게 하고, 전문 가이드도 양성하는 등 차근차근 추진했으면 좋겠어요.

- 그런데, 현재 대학로 공연이 점점 상업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관객들은 순수연극이든, 상업연극이든 다 같은 연극의 카테고리로 봅니다. 상업연극은 일종의 초보자 입문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재밌는 걸’ 반복해서 보다보면, 결국 깊이있는 작품을 갈망하는 마음이 생겨요.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예요. 철학을 쉽고 재밌게 풀어낸 만화를 보던 초등학생이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원서를 보고자 하는 거죠. 뭔가 더 심도있는 것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 혹은 갈증이 생기는 거예요. 또, 연극제작자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관객의 기호를 염두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연극인들이 워낙 어렵게 살아가고 있어서 이런 문제들이 맞물리는 거예요.

- 연극인들의 생계문제를 거론하셔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지난해 10월 국회를 통과한 ‘예술인 복지법’이 연극인들의 생활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까요?

 일단 연극인들의 4대 보험 기금이 마련이 안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어요. 노동부 관계자한테도 말을 했지만, 예술인 복지법은 예술인의 특성을 고려해 적용되야 합니다. 올해부터 연극인들은 상해보험 혜택을 받게 되는데요. 결국 작업을 해야지만, 혜택을 보는 거예요. 그런데, 연극인들은 직업적 특성상 노는 것과 작업의 구분이 분명치가 않아요. 이런 부분에서 정부가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줬으면 좋겠어요.

 - 이번 연극제에서 공연되는 작품 중, 특별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공식참가작 중에 ‘인생’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인물, 박헌영을 조명하는 작품이죠. 30년대 초반, 소련과 중국에서 활동하며 활발하게 혁명활동을 펼쳤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여다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여태까지 그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없었기 때문에, 신선하게 다가오실 겁니다. 또, 장자번덕 극단이 공연하는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는 지난해 전국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에요. 이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공연이 많이 마련돼 있어요.

 - 이번 연극제 홍보대사로 한류스타 ‘장나라’씨를 위촉하셨는데요.

장나라 씨의 부친이신 주호성 씨가 연극을 하시잖아요. 이번에 거의 10년 만에 연극 '인물실록 봉달수'의 연출을 맡으셨구요. 그분의 연극을 향한 열정도 대단하지만, 작품을 보는 식견도 대단하세요. 그래서 평소에 저희가 여러모로 도움을 청해 오다가, 이번에 '위촉대사'로 따님과 함께 제대로 모시게 됐어요.

- 1979년부터 시작된 연극제가 벌써 33회 째를 맞았네요. 이토록 오랜 기간 연극제를 주최해 오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요?

 

아무래도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어렵죠. 모두가 알다시피, 순수예술인 연극은 사회적인 경제논리에 의해 소외되고 있어요. 서울시나 문화부의 행정가들은 언제나 대한민국이 ‘글로벌 문화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외쳐요.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그럴 뜻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33년이나 명맥을 유지해 온 저희 연극제가 지닌 역사성과 가치에 대해 행정가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어요.

-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회장님께서 연극계에 뛰어든 지가 25년 정도 되셨는데, 연극의 어떤 점이 지금까지 오게 만들었을까요.

이런 얘기를 하려니, 굉장히 쑥스럽네요. 글쎄 모르겠어요. 단순하게, 제가 하는 작업이 좋아요. 물론 힘들죠. 그렇지만, 가끔식 제게 ‘당신의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혹은 ‘어렴풋이나마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등의 고백을 하시는 관객분들이 계세요. 이런 분들을 만나, 제가 느끼는 감동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분들은 저로 인해 위안과 감동을 받았다지만, 제가 더 울컥해요. 보람을 느끼구요. 또, 연극창작이라는 작업은 지루할 틈이 없어요. 굉장히 액티브한 장르에요. 전 이런 연극이 정말 좋습니다. (웃음)

- 이번 연극제에 오실 관객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연극을 재미나게 보는 관람 포인트 하나를 가르쳐 드릴게요. 마음에 박힌 어느 연출가, 어느 극단, 어느 배우를 지속적으로 한 십년만 지켜봐 주세요. 화초를 정성껏 키울 때, 지그시 오래 바라보잖아요. 그와 같이 해주세요. 시간이 갈수록 눈부시게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상당히 감회가 새로우실 거예요. 그리고 가끔씩 시간이 나시면, 그들에게 직접 찾아가 응원의 한 말씀도 건네주세요. 여러분의 그 한마디에 그들은 창작에 계속 매진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얻을 거예요. 제가 그랬듯이요. (웃음)

-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 연극계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밝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연극에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연극이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른 장르를 누를 수 있는 힘은 바로 현장감에 있어요. 관객은 배우를, 배우는 관객을 직접 바라보죠. 배우들의 생생한 숨소리와 땀냄새까지 객석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이 현장감은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에 무섭도록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갈수록 더 많은 이들이 ‘연극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고 떠들어도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배우와 관객이 절실한 감정을 교감하는 그 찰나의 순간. 관객이 연출가가 구현한 세계속으로 ‘풍덩’하고 빠지는 순간의 마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력'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이 세상엔 어떠한 표현으로도 그 자체의 본질에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도무지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 말이다. 사람들이 흔히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배우들의 생생한 숨소리와 땀냄새'가 빚어 내는 '열정의 향연'에 매료돼 평생을 연극에 매진해 온 그.연극을 왜 하느냐?는 질문에, '그냥 좋다'고 수줍게 대답하는 그.

'그' 자체가, 곧 '열정'이었다. 

◆박장렬

▲1965년 서울 태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제3대 서울연극협회 회장▲ 연극집단 반 대표  100연극공동체 위원장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