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이슈] 300여 출판사 뭉쳐 전자책 만든다!!!
[문학계 이슈] 300여 출판사 뭉쳐 전자책 만든다!!!
  • 최경호 객원기자
  • 승인 2012.04.13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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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전자책 원년... 협상력 드높여 유통사 ‘싸구려’ 끊어

책... 최초로 책 재료가 된 것은 무엇일까. BC 3000년께부터 이집트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파피루스다. 파피루스는 갈대 줄기로 만든 펜에 검댕이나 숯을 물에 탄 잉크를 묻혀 글씨를 썼다. 지구촌에서 만든 가장 오래된 책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도덕론(道德論)을 적은 <프리스 파피루스>다. 이 책은 BC 2200∼BC 2000년께 만든 것으로 어림짐작된다.

지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관에 넣고, 장례에 참석한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던 <사자(死者)의 서(書)>는 그 뒤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에 있으며, BC 1400년께에 만든 책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BC 3세기 진(秦)나라 때 나무나 대나무 등에 붓과 먹으로 글씨를 써서 책을 만들었다. 시황제(始皇帝)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저지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종이는 105년 후한(後漢) 때 채륜(蔡倫)이 발명했다. 7세기 당(唐)나라 초에는 목판인쇄가 발명되었으며, 책은 그때부터 비로소 종이와 인쇄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앞까지 책은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본(筆寫本)이었고,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이와 목판인쇄 혹은 책이 일찍부터 있었고, 스스로 목판인쇄술을 개발했다. 1996년 불국사 석가탑 속에서 751년 앞 목판인쇄물로 어림짐작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쇄물 가운데 지구촌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책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우리에게로 이어졌지만 이제 종이책은 새롭게 나오고 있는 전자책에 밀려 그 빛이 점점 바래지고 있다. 2012년 들어 300여 개 출판사가 어깨에 어깨를 걸고 전자책에 뛰어들어 이른 바 2012년이 우리나라 전자책 원년으로 기억될 수도 있는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이다.

‘전자책 원년’이라는 선언은 몇 해 앞부터 유통사와 단말기 제조사가 마구 떠들었다. 올해는 다르다. 올해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직접 나섰기 때문에 진짜 전자책 원년이라 부를 만하다. 그 핵에는 창비와 문학동네, 민음사 등 300여 개에 이르는 출판사가 주주사 및 제휴사로 참여해 만든 한국출판컨텐츠(e-KPC)가 있다.

이들은 전자책 사업이 ‘전자산업’이 아닌 ‘출판산업’임에도 그동안 전자업계가 시장을 주도한 데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직접 뛰어들었다. 전자책을 펴내는 출판사들이 닿고자 하는 산마루는 영화나 음악계 전철을 밟지 않는 것이다.

영화는 인터넷을 통한 불법 다운로드에 제대로 맞서지 못해 극장 매출에만 기대는 기형을 띤 산업구조로 바뀌었다. 영화인과 정부가 꾸준히 불법 다운로드를 막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불법 다운로드에 익숙한 누리꾼들 마음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음악은 초기에 디지털 음원시장에 맞서지 못했다. 개별 기획사들은 그동안 대기업 계열사인 음원 판매 사이트에 협상력에서 밀렸다. 그 결과 대기업이 매기는 가격과 수익 배분 비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플 음원 유통 서비스인 아이튠즈는 곡당 수익 가운데 70%를 음악제작자와 뮤지션에게 나누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0% 이하다. 그나마 각 사이트 정액제 때문에 곡당 가격이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e-KPC는 크고 작은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유통사와 협상력을 드높였다. 전자책 정가를 정해 유통사들 덤핑 경쟁을 막고, 기존 온라인, 오프라인 시장과 같이 도서정가제로 나간다. 예전에는 출판사가 종이책 파일을 통째로 유통사에 넘기면 유통사가 직접 전자책을 만들어 파일 유출, 완성도 저하 등 문제가 많았다.

이들은 이러한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출판사가 직접 전자책을 만든다. e-KPC 회원사인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과거 ‘전자책 원년’은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2012년은 콘텐츠 중심의 원년”이라고 귀띔했다.

전자책 시장이 이처럼 활기를 띠면 해마다 “어렵다”는 말을 거듭하는 출판계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운송·포장·보관 등 물류비용이 사라지고 출판사가 지닌 으뜸 고민이라 할 수 있는 반품도 없다. 여기에 잘못된 부분은 언제든지 고칠 수 있고, 예전 종이책 형식에 어울리지 않게 페이지가 너무 적거나 너무 많은 글도 부담 없이 펴낼 수 있다.

창비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 <도가니>, 사회과학 서적 <2013년 체제 만들기> 등 대표도서 16종을 이 달 안에 전자책으로 선보인다. 민음사는 <스티브 잡스>, <안녕 시모기타자와>를 내놓았고,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전자책 버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전자책은 6000부, 1억 원이라는 판매실적을 올렸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5일부터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네이버북스를 통해 10만여 권에 이르는 전자책을 펴내고 있는 네이버다. e-KPC는 한국 인터넷 검색 시장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버가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자책 시장이 활짝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출판계 일부에서는 여전히 전자책 시장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현재 전자책 베스트셀러 순위는 장르 소설과 가벼운 경제+경영서 등 굳이 종이책으로 소장하지 않아도 될 책에 쏠려 있다”며 “전자책 시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마냥 전망이 밝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내다봤다.

인문서를 펴내는 출판 한 관계자도 “인문 서적은 전자책 시장의 독자층이 아직 검증되지 않아 새로운 편집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전자책을 내야할지 의문”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일본 출판계는 곧 진출을 앞두고 있는 킨들(미국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및 서비스를 통칭)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e-KPC는 방향은 잘 잡았지만 아직 전자책 시장에서의 확실한 주도권을 잡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출판사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는 “디지털화의 핵심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며 “국내 출판 시장의 양극화가 해외와 국내 시장의 양극화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영미권 출판시장의 공세에 맞서 지역 언어의 보존이 중요해진 만큼 국내 저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