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레드 콤플렉스
[데스크칼럼] 레드 콤플렉스
  •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2.04.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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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스크바 중심광장의 이름은 '붉은 광장'이다. 몽골의 수도인 올란바트로는 '붉은 영웅의 도시'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부패한 국민당 정권을 쫒아내고 중국 혁명을 이룩한 모택동의 별칭은 '대륙의 붉은 별'이다. 예수 탄생을 알리며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도 유난히 밝고 붉은 색을 띈 '붉은 별' 이었다. 암컷을 차지하고자 멋있게 볏을 세운 수탉의 머리위 깃도 '붉은 볏'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열렬히 사랑해 열정을 불태울 때도 그 가슴을 일러 '붉은 가슴' 이라 한다.

 우리 역사상 김유신 장군이나  강감찬 장군 등 훌륭한 위인이 나타날 때도 붉은 별이 혜성처럼 밤 하늘을 장식해 징후를 알렸다고 한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고려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을 과시하며 읊은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하며 불렀던 그 일편단심의 단심(丹心)도 '붉은 마음' 이다. 로마를 세운 제국의 시조 로뮬루스 형제를 젖 먹여 키운 존재는 바로 광야를 떠돌던 '붉은 늑대'였다.

 붉은...붉다는 것은 곧 살아있는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무미건조함을 너머 객끼와 생명력으로 요동칠 창조적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의 횡포에 대해 새로운 변화와 역사를 만들고자하는 정의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역동성을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래서 뭔가 강조하거나 빛내고 싶을 때 곧잘 붉은색, 붉은빛과 함께 '붉은'이란 수식어를 사용한다.

 4월 11일 제19대 국회총선을 맞은 옛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면서 당을 상징하는 로고를 빨강색으로 정해 눈길을 끌었다. 당초 실용을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말과는 달리 유난히 이념에 집착한 ‘레드 콤플레스’적 정책을 펼친 끝에 나온 변화라 더 의아한(?) 관심을 끌었다. 대한민국의 정치란 게 원래 당의 인기가 떨어지면 이름을 바꾸어서 선거를 치르며 명맥을 이어 온 터라 당명개명이나 로고색 변화에 별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과를 두고 보면 알겠지만 새누리당의 변화액션도 무늬만 바꾸어서 국민을 헷갈리게 한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로고색 바꾸기가 잠시 분위기를 환기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사람들 입에 회자된 것은, 현정부와 여당의 ‘레드 콤플렉스’를 드러낸 이념대결적 정책과 행태가 남북관계와 대한민국 사회전반을 숨 막힐 듯한 답답함으로 몰아부친 데 대한 역설적 반응으로 보인다. 그만큼 우편향적 대결정책과 냉전시대로 회귀한 퇴행적 사고가 이 땅에서 필요이상의 긴장과 갈등을 유발해 온 최근 몇 년간이란 생각이다.

 이제 또 한 번의 선거가 끝나고 더 큰 선거판이 다가오고 있다. 민주주의란 원래 다양한 종교 사상 이념과 정책들의 용광로와 같은 것이다. 그 안에서 모든 종교와 사상, 이념과 정책들이 자웅을 겨루며 때로 융합하며 국민대중의 보편적 지지를 얻어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국민대중으로부터 보편적 지지를 얻지 못하거나 민심의 등돌림을 받는 종교나 사상, 이념과 정책들은 자연 도태되거나 소수세력으로 전락하고 말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겐 그런 민주적 과정보다 서로 다른 것들을 인정치 않으며 포용할 줄 모르며, 감정적 대결로만 치닫는 문화가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다. 아직 진짜 민주주의가 뭔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정치인들의 수준이나 국민의 수준이나 고만고만하다는 말이다.

 1500년 전 고대 중국을 보라. 그때도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며 온갖 서로 반대되는 사상과 철학들이 난무하며 ‘백가쟁명’을 이루었지만 그런 것들이 거대 중화를 이룬 토대로 작용해 오지 않았는가. 오늘날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종교와 사상, 좌우이념과 정책들의 대립이 때로 첨예하더라도 결국은 하나의 큰 한반도안에서 함께 살아갈 날을 향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종교, 다른 사상, 다른 이념, 다른 정책들을 서로 인정하며 민주주의 대중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고 굴러가는 사회 말이다.

 붉은(빨강) 것을 그리도 싫어하던 한 정당이 그 색깔을 상징색으로 선택하는 현상을 보며 행여 필자가 꿈꾸던 ‘종교 사상 이념의 활달성’(종교와 사상과 이념과 인종과 정책이 달라도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이 구현되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려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