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칼럼] 칠흑 같은 밤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이 박물관에 등대는 없는가?
[박물관칼럼] 칠흑 같은 밤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이 박물관에 등대는 없는가?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2.04.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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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2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유달리 관심을 갖고 경청하던 여자 분이 눈에 들어왔다. 강의 후에도 질문이  많아 박물관에 관심이 크신 분이구나 생각하고 명함 한 장을 건네고 서울로 올라왔다.

  늦은 오후,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울렸다 다름 아닌 그분의 남편이었다. 강원도의 모 박물관에서 일을 봐드린 적이 있어 그때 학예사자격증도 취득하였으며 또 박물관에도 관심이 있어 지금 충남 당진에 도량형박물관을 개관준비중이라고도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그분은 박사학위도 취득한 도량형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막상 박물관을 하려고보니 보통 복잡 한 게 아니며, 생각보다 경비도 많이 들어가 걱정이라는 토로였다.

  관장이 될 부인은 평범한 가정주부인데, 박물관 운영을 위해 여기저기 강의도 듣고 전문가의 조언도 구하는 등 소양을 갖추느라 여념이 없다고 했다. 등록을 위해 막바지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어보였다. 이후로도 자주 전화가 와 이것저것 아는 범위 내에서 자문을 해드렸다.  

 그러던 차, 3월 초 지방에 볼일이 있어 당진을 지나게 되었다. 문득 그 박물관이 궁금해 연락을 했더니 충남도에 등록신청을 해 놓았고 내일 전문가 실사단이 방문하는 날인데, 너무 부족한 게 많아 걱정이니 꼭 좀 들러 봐달라는 것이었다. 이길 저 길을 작은 농로를 타고 한참을 헤매다 산비탈 가파른 언덕에 작은 집 두 채를 발견했다. 북향에 늦은 오후라서 초봄의 긴 태양은 검은 산 그림자를 크게 드리운 채 박물관을 덮고 있었다. 채 공사가 마무리 되지 못한 박물관 주변에는 건축자재가 흩어져 있고 간간히 불어오는 찬바람까지 더해 분위기는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박물관을 좌측으로 끼고 뒤편에 자리 잡은 사택 앞에 차를 세우니 그 여자 분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우선 박물관이 궁금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타고 박물관내부로 들어갔다.

  방부목과 철골구조물로 되어있는 박물관은 가건물처럼 허름한데다 공사마저 끝나지 않아 한기가 옷 속까지 파고들었다. 예산이 없어 모델하우스며 건축현장에서 폐기된 자재를 가져와 마련한 유물 대는 들쑥날쑥 높낮이와 크기는 물론 색상까지도 잘 조화되지가 않았다. 도량형과 관련된 자료 - 저울, 자, 쌀되 등은 비교적 잘 정돈되어보였지만 협소한 공간에 관람 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겨우 2종 박물관의 조건(전시장 면적 82㎡)만을 갖춘 듯해 보였다.

  사택 1층에 있는 수장고는 외벽이 통유리로 되어있어 일반적인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두 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질문을 해왔지만 필자나 함께 간 전문가 선생님은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이미 꽉 짜진 틀이었고 지금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그분들에겐 현실성이 없는 걱정으로 다가올 거라는 사실을 빤히 알기 때문이었다.

  박물관 30m쯤 앞에는 식용 닭을 키우는 양계장이 있었는데 다 자란 닭을 출하할 때인 매월 중순과 하순에는 주기 적으로 악취가 난다고 했다.

  많은 박물관을 다녀보았지만 이보다 더 열악할 수 있을까? 큰 걱정과 책무감이 가슴을 짓눌러왔다. 겨우 2차선이 될 듯 말 듯 한 좁고 긴 농로, 협소한 전시장,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는 어려운 테마, 그리고 양계장.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두 분을 놓고 발길을 돌려야했던 안타까움은 한 달이 지난지금도 어제 같다. 거친 파도가 이는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쪽배 같았다.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지 않는다면 또 멀리서나마 등대의 불빛을 비춰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죄송하고 답답한 마음만을 가슴에 간직한 채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제2, 제3의 도량형박물관은 어디에도 있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의 손길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다. 중앙 및 지방정부는 정책마련과 지원을 관련기구 및 전문가는 제반사항에 대한 자문과 조언을, 지역주민은 따뜻한 성원과 관심을 표명해주어야 한다. 좋은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의 힘을 합쳐야한다. 우리가 감히 할 수 없는 숭고한 과업의 무게를 그들에게만 짐 지울 순 없다.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