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환이, 너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인환이, 너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2.04.22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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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현대문학] ‘애정남’ 박인환의 ‘달과 서울 사이’(7)

집에 쌀이 떨어져도 월급을 받으면 고급 옷을 사서 멋을 부리던 남자, 한여름에 겨울 코트를 걸치고 나와 “어서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여름은 통속이야!”라고 외치는 남자, ‘그 흔한 가락국수 사먹을 돈도 없으면서’ 문인들을 만나면 술을 마시고 외국 시를 읊조리며 자신만의 낭만의 세계에 빠지던 남자, 조용한 영화관에서 갑자기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감격벽을 표출하던 남자.

그 남자의 죽음에 문인들의 통곡이 이어졌다. 시인 박인환이 죽던 날, 문인들은 박인환의 시신 둘레에 빙 둘러앉았다. 누군가가 박인환이 좋아하던 조니워커 병을 꺼내 죽은 박인환의 입에 넣어주고 자신도 마셨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박인환의 입에 술을 부어주고 자신도 술을 마시며 슬퍼했다.

그가 마지막 가던 날도 마찬가지다. 울음 소리가 망우리 묘지에 가득 퍼진 가운데 그의 무덤가에 조니워커 한 병이 뿌려졌고 관 위에는 수십갑의 담배가 던져졌다.

‘.../너는 누구보다도 멋있게 살고 멋있는 시를 쓰고 언제나 어린애와 같은 흥분 속에서 인생을 지내왔다/인환이,/네가 없는 명동, 네가 없는 서울, 서울의 밤거리, 네가 없는 술집, 찻집, 영화관, 참으로 너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가는구나/...’

절친이었던 조병화가 눈물과 함께 낭송한 조시처럼 그는 ‘정들다만 애인처럼 소리 없이’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났다. 누구보다 멋있는 삶을 살았던, 멋있는 시를 썼던, 아니, 누구보다도 멋있게 전쟁 후의 피폐함을 버텨냈던 박인환을 이제 떠나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센티멘탈 속에 숨겨진 50년대 우리의 자화상

박인환의 시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센티멘탈’의 감성 속에 숨겨진 50년대 서울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만약 그의 감격벽과 겉멋, 허세가 아무 의미없는 ‘잘난 척’에 불과했다면 이렇게 많은 문인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의 시도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인식이 떨어진, 서양 시의 모방’이라는 평가 속에 묻혀졌을 것이다.

그러나 50년대는 너도나도 전쟁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사람’이 철저하게 그리웠던 시기였다. 전쟁과 가난이 대한민국을 휩쓸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고 이념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 조금만 삐딱한 행동을 해도 ‘빨갱이’로 낙인찍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서울은 무너진 도시였다. 건물과 다리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무너진 도시였다.

바로 그 모습을 박인환은 ‘센티멘탈’을 통해 드러냈다. 아니, 드러냈다는 표현은 잘못됐다. 그는 센티멘탈 속에 현실의 아픔, 50년대를 사는 사람들의 슬픔을 숨겨뒀다. 그의 시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지금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의 시에서, 그의 글에서 숨겨진 우리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 ‘달과 서울 사이’

1981년 발표되어 그해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쓴 노래가 있었다. 우리에겐 이 노래의 부제인 <Best that You Can Do>로 너무나 잘 알려진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Arthur's Theme>다. 이 노래의 후렴 내용은 이렇다.

당신이 어쩌다 달과 뉴욕 시티 사이에 있게 된다면/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그냥 사랑에 빠지는 것’

이 노래 가사를 보며 나는 다시 박인환을 떠올린다. 50년대 문인들은 누구나 ‘달’과 ‘부서진 서울 거리’ 사이에 어쩌다 놓여졌다. 박인환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노래 가사처럼 ‘그냥 사랑에 빠지는 것’을 택했다.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세상이지만 원망도 비난도 책망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것이 그의 시였다.

물론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그의 시에도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죽은 지 4년 뒤, 4.19 혁명이 일어나고 혁명의 꽃이 피기도 전에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격변의 시기마저 박인환은 사랑했을까? 김수영의 변화만큼 박인환도 변화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며’ 그냥 사랑에 빠지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그 답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이미 그 당사자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우린 그저 그의 시에서 사람냄새나는 삶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슬픔을 찾아야 할 뿐이다.

그의 시 <목마와 숙녀>를 다시 한 번 읊조리며 박인환을 떠나 보낸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중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람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