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시] 꽃싸움 - 한용운
[시인이 읽어주는 아름다운 우리 시] 꽃싸움 - 한용운
  • 이소리 시인,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2.05.1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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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 詩세계

 꽃싸움 
 
                  한용운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맞추겠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사랑... 사랑은 대체 무엇일까? 한용운 선생이 말하는 것처럼 ‘꽃싸움’ 같은 것일까. 어떤 때는 그대가 흰 꽃수염이 되고, 내가 붉은 꽃수염이 되었다가 또 어떤 때는 서로 바뀌는 것, 그것이 참 사랑일까. 참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깡그리 내주는 것이라 했다. 그래야 나도 그 누군가를 참으로 사랑했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소리(시인,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