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로 먹고살기] 여섯 번째 ‘문학계 편’
[문화예술로 먹고살기] 여섯 번째 ‘문학계 편’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2.05.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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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지금까지 기획기사로 보도된 ‘문화예술로 먹고살기’ 중 가장 힘들게 서술될 부분이 문학계다. 지난 2000년부터 인터넷이 전국에 확산되고부터 국내작가들이 먹고살 기반이 거의 소진됐기 때문이다.

 

▲ 한국문학의 현주소는 위 사진처럼 낡은 타자기가 되어 구석에 방치 되어있거나 조그마한 박물관에 눈요기거리로 전시된 상태이다. 그 자리를 일본문학과 포탈인터넷이 차지했다.

 

최근까지 시인이 시집으로 인세를 받아 사는 경우도 거의 없거니와 국내서점가 또한 해외유명작가들의 소설, 인문사회과학서적으로 채워지면서 국내 작가들의 활동 또한 매우 위축돼 있다.

한 마디로 미래가 없는 분야다.

한국작가회의 이태성 사무국장은 “문학으로 먹고사는 작가들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며, “잘나가던 시인이 막노동으로 먹고살고,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아예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사례가 너무 많다”고 밝힌다.

한국문학은 죽었다?

최근에는 학습지와 아동도서를 통해 기복이 심한 출판계에서 겨우 적자를 겨우 면한 크고  출판사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소설과 시는 시장성이 거의 없다. 일부 유명작가들은 국내 대형출판업계에서 차지했고, 해외작가들도 일부 출판사가 판권을 쥐고 있다. 설령 ‘해외작가와 출판계약을 해도 홍보예산과 조직력이 부족해 대형출판사로 넘기는 형편이다.

더구나 신예작가들의 등용문인 문학상 또한 과거처럼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다. 출판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문학은 화려한 한류열풍에 비해 미풍도 없고 취미생활로 전락된 시점”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일본문학을 베끼고 사는 작가들도 상당히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만화가 가미된 아동서적과 동화책의 경우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지에서 일고 있는 한국어열풍으로 외국인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어교재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동출판물, 국내서점가 ‘엘도라도’로 꾸준히 성장중

동화책과 아동전문서적을 출판하는 H출판사는 편집디자이너, 영업기획, 교열교정 편집자 두 명 등 사장 포함 다섯 명이 운영하는 회사다. 출근시간은 오전 10시, 퇴근시간은 7시까지다. 6~7시간 남짓 일하면서 과연 흑자구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하지만 이들의 입장은 다르다. 타출판사에서 5년, 현재 아동서적전문 출판사에서 5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타이트하지 않은 회사 일과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더 일해 봐야 효과도 불분명하고, 출판은 기획과 영업이 대부분인데 직원 누구라도 집중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책은 기획부터 정성스럽게 제작될수록 판매고가 높아진다”고 답했다. 탁월한 영업력도 결국 ‘책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곳곳에 남아있는 출판사들은 영세한 형편을 감안해 일반다가구주택을 임대해 출판사로 활용하고 있다. 고가의 오피스텔과 같은 근무환경이 오히려 능률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란다. 아울러 출판계는 이직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때문에 사측의 세심한 배려가 없으면 바로 그만두는 사례가 빈번하다.

사측의 작은 배려가 회사를 유지한다?

H출판사 사장은 그동안 서로 호흡을 맞춰온 직원들을 오래두고 일하기 위해 주택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서 식사도 같이하고 냉장고에 먹을 것을 잔뜩 채워 넣고 사원들의 근무환경을 최적으로 만드는 걸 중요히 여긴다. 이곳 사장에 따르면 숙련된 일꾼이 빠져나가면 그것을 메꾸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과 시간이 업무전반에 지장을 줄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5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들 덕분에 다양한 책들을 꾸준히 출판해오고 있다. 업계에서 실적도 좋은 편에 속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혼자 출판업을 하는 B출판사 대표. 그는 기획부터 영업, 편집까지 혼자 한다. 다년간 출판업을 해왔지만 직원들이 자주 그만두고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업무를 보고 있다. 타사로 이적한 편집자들은 B사 대표의 인색하고 안일한 태도를 꼬집는다.

“B사 대표는 쓸데없이 많은 업무량을 주고 월급도 미루는 등 말썽이 많았다. 때문에 전직 직원들과도 안좋게 끝났고, 주변 소문도 좋지 않다” B사 대표가 혼자 출판업을 하는 이유다.

출판계는 일하는 것에 비해 월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출판 판매고에 따라 수당으로 처리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앞서 말한 H출판사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도 읽는 아동서적을 출판해온 점과 사장이 직접 나서 기획부터 영업까지 잘 짜여진 일정표에 맞춰 꼼꼼히 준비해왔다.

또한 많지 않은 월급을 받는 직원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한 덕분에 어느덧 베테랑 근무자와 함께 만성적자로 허덕이는 국내출판계에서 살아남았다. 이른바 블루오션전략을 알차게 활용한 때문이다.

인기저자로 알려진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자신이 집필한 책이 5천부 이상 팔려나가면 출판사도 자신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바 있다. 인문사회과학 서적과 소설 등은 예전과 달리 수천부만 판매 되도 잘된 경우다. 하지만 대부분은 1천부 미만 판매로 멈추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 혹은 유명인사 자서전 출판이 그나마 현재까지 유지되는 분야다. 하지만 이것도 선거철과 관련된 특수경기이며, 지지자들이 사주지 않으면 판매고도 올리지 못하고 폐품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문학작가로 살기가 버거운 대한민국

인기 드라마작가는 3~5명의 보조작가(일명 ‘새끼작가’)들을 데리고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 현실은 보이는 것과 달리 열악하기 그지없다. ‘도제방식’으로 운영되는 드라마작가 그룹은 급여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고, 설령 ‘있다’고 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친다. 이런 탓에 매년 새끼작가로 활동하던 20대 예비 작가들이 자살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또 새끼작가들이 어렵게 쓴 작품을 그대로 가져다 드라마와 영화대본을 집필하고, 무일푼으로 내쫓는 사례도 많다. 한때 인기드라마 작가의 새끼작가로 활동하던 김 모양도 몇 년 전까지 일하다가 최근 서울시내 편의점에서 야간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해외유학이다. 대학교 국문과까지 졸업하고, 드라마 작가로 성공하기위해 작가양성소를 다니고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돌아온 건 60만원 남짓한 월급. 잦은 아이디어 회의와 톡톡 튀는 대본을 써주고 유명작가로부터 인정받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온 건 “작가로서 성공하기 힘들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작년 초 최고은 영화작가가 생활고와 지병으로 사망한 사례를 돌이켜보면 영화, 드라마 작가들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국가와 관공서로부터 지원되는 작가들을 위한 혜택은 전무한 실정이다. 아울러 지난 2008년 SBS 교양프로에서 활동하던 막내구성작가의 투신자살사건은 잦은 회의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결국 자살로 이어졌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들에게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하는 살인적인 업무량도 작가들에게 피할 수 없는 악재다.

 

▲ 교보문고 아동부스. 이곳은 아이들은 물론 일본, 중국 등 해외관광객들이 북적대는 곳이다.

 

한국어로 먹고사는 방법 없을까?

번역문학은 국내문학계의 오랜 숙원이자 한계점이다. 하지만 현재 번역작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숙련된 작가도 드물다. 일본이 낳은 유명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래 직업이 ‘영문번역작가’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분야는 번역가보다 교열교정을 보는 편집자들의 노력이 아니고는 문장자체가 나오기 힘들다. 오히려 국내에서 대형온라인카페를 운영 중인 미국드라마팬클럽 ‘자막 번역팀’의 번역능력이 기존 작가들보다 훌륭할 때가 더 많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영어 등 외국어로 번역하는 경우도 쉽지 않다. 차라리 외국인이 한국어를 현지 언어와 문화정서에 맞게 번역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이부분만큼은 결국 해외 주재 한국문화원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외국인들이 적합하다.

하지만 한국어로 된 창작분야만큼은 언제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최근 들어 한국드라마, 케이팝 열풍에 힘입어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중 일부는 종로 교보, 영풍문고, 서울문고 등을 오가며 아동도서구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뿐 아니라, 만화출판물도 인기다. 대부분의 구매자는 일본인과 중국인이다. 한국관광코스로 서점가를 찾는 이들도 자주 발견된다.

가령 한국어를 능숙하게 읽을 줄 아는 일본관광객은 소설과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구입한다. 이들은 국내출판물 사이트를 직접 접속해 온라인으로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대형서점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해외거주 외국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육이 계속해서 늘어날수록 한국서적구입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활용하면 할수록 단순히 한국 대중문화를 넘어 아동문학, 문학, 인문사회분야까지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구태에 젖은 작가지원 시스템

한국어와 문학시장은 언제든 성장가능하다. 문제는 정부가 국가지원시스템을 단발성 홍보인지 장기적인 로드맵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올 해 문화체육관광부예산은 3조 6,006억 규모다. 이는 전체예산의 10%수준이다. 과연 이 정도 규모로 한국문화를 살릴 수 있는지?

국내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작가로 활동하기기 힘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잘돼봐야 임용고시를 통해 학교선생님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곳은 국가지원이 절실함에도 국가홍보차원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한국어교육이 전부다.

독일을 사례로 보면 전 세계 92개국 150개 자국문화원에서 운영 중인 ‘괴테 인스티튜트’(Das Goethe-Institut)라는 독일어학당을 기반으로 독일어는 물론 문학, 자국영화 상영을 통해 독일문화를 알리고 어학당 학생들과의 잦은 교류로 해외 독일어 번역문학작가들도 육성하고 있다. 아울러 자국 출판박람회에 이곳출신자들의 번역 작품들을 전시하고 지원하는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종이매체가 필요 없는 IT시대를 맞아 독일출판계가 살아남는 이유가 바로 독일문화원을 근간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한 독일정부도 자국출판물에 대한 저작권을 보장하고자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세계 여러나라들과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문화체육관광부 강당에서 개최된 축제관련 세미나 ‘강강술래 세미나’에서 이준경 생명그물 정책실장이 현 정부의 4대강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생명을 도외시한 토목공사로 개조된 낙동강 제방 길을 보며 회의가 들었다”고 밝히고 “숲과 오솔길도 없는 콘크리트 위에서 과연 무엇이 창출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문화부 예산이 10%에서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