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여행칼럼] 힐링의 땅 나가노(長野)에서 한국의 흔적을 만나다 (2)
[이수경의 여행칼럼] 힐링의 땅 나가노(長野)에서 한국의 흔적을 만나다 (2)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 승인 2012.05.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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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원시림과 유황냄새, 온천수 분출하는 협곡사이로 흐르는 눈 녹은 에메랄드빛 아즈사강과 신비의 호수, 백제 불교의 명사찰 젠코지(善光寺), 그리고 마츠시로(松代)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그리고  다이쇼이케의 다이나믹한 자연을 만끽하며 호숫가를 따라가 파바시라는 유명한 다리까지 걸었다. 숲 속 길로 들어서니 먹이를 찾아내려 왔는지 원숭이들이 떼로 몰려와 있었으나, 원숭이가 흉폭한 것을 필자의 교토히에이잔 생활에서 익히 체험한 터라 귀엽게 보여도 그들을 무시하며 걸었다.

짙은 갈색 유황물이 그윽한 숲을 지나 아즈사강변이 얕아 보이기에 우리는 신발을 벗고 강에 들어갔다. 학생들과 왔다면 1분 이상 참을 수 있으면 밥을 산다는  내기를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물이 뼈까지 시려오기에 친구도 강물이 너무 차다며 소녀 같은 미소로 자연과 어우러졌다.

강변을 따라가다 숲으로 가니 북 알프스 및 가미코치를 서양에 알린 영국인 웨스턴경의 공적현판이 보였다. 왠지 매번 볼 때마다 씁쓰레해지는 그 곳을 걷다보니 바람이 세어졌기에 부근의 가미고치 온천호텔(일본 근대 문학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작품집필을 위해 묵었다는 유명 호텔)이 제공하는 무료 아시유(足湯, 온천수에 발을 담그며 쉬는 곳)에 발을 담구었다.

웨스턴경의 공적 현판

다이쇼케의 야생원숭

에메랄드 빛의 강물과 설산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그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설산 절경이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갓파바시 앞의 신슈소바(信州そば, 이 지역은 메밀국수로 유명)집에서 소바와 토마토소스 카레 등을 먹으니 별미였다. 1986년 여름에 필자가 처음으로 가미코치를 찾았을 때,  신슈 대학교 학생들이 경영하는 300엔짜리 텐트에 머무르며 아즈사강물 옆에서 현지의 학생들이 만들어주던 카레밥을 먹으며 캠프교류를 즐겼던 것이 싱그러운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가미코치 다이쇼이케

그곳에서 우리는 몇 장의 기념사진을 찍은 뒤, 우리를 기다려주던 그 택시기사를 만나서 사완도에서 급히 노리쿠라 고원으로 향했다.  1시간 가까이 장관을 이루는 설산을 따라 높은 고원을 오르고 좁은 산림도를 조심스레 올라가서, 구불거리는 협곡 아래로 한참을 가자니 짙은 유황냄새가 퍼지는 시라호네(白骨)온천이 나왔다. 가미코치에서 바로 왔으면 30분정도로 올 수 있지만 지금 붕괴된 도로 건설을 하느라고 그 길은 폐쇄되어서 둘러온 것이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선택의 여지도 없었기에 유일하게 온천욕을 할 수 있는(대부분이 숙박예약자 우선) 곳으로 가서 유황냄새 진한 온천을 체험했다. 입욕료 700엔의 감동은 마치 짙은 삶은 계란 냄새 같은 유황냄새가 밤까지 이어지는 에피소드로 기억이 되었다.

가미코치 다이쇼이케

우린 숨겨진 은신처 같은 시라호네 온천을 뒤로 하며 일단 바깥 세계로 나왔다. 마츠모토에서 고속으로 한 시간가량 달려서 나가노시에 예약한 메트로 폴리탄 호텔에 묵었다. 인터넷에서 아침식사가 괜찮은 곳으로 검색을 해서 찾은 곳인데, 신슈소바는 물론 현지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로 깔끔하고 풍부한 메뉴가 있어서 다양한 신슈요리를 맛 볼 수 있었다.

젠코지 주변 풍경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 근처의 젠코지(善光寺)로 향했다. 입구 근처의 유료주차장에 차를 둔 뒤, 젠코지 정문을 향해 가다 보니 역사가 깊은 사찰이라서 전통적인 분위기와 자그마한 사원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본 사찰 외에 천태종의 [大勸進]과 25사원, 정토종의 [大本願]과 14방의 사원이 들어있고, 그 중에서도 [대본원]은 비구니 사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입구를 향해 가다보면 옆길 사이사이마다 오래된 작은 사원들이 들어 있는데, 사찰 정문을 향해 가다보면 오른쪽 길 안에 世尊院이란 사원이 나온다. 그곳의 석가당에는 973년에 지금의 니이가타에서 어부가 어망으로 건진 석가열반상(중요문화재)이 모셔져있고(한번 회람하는데 1000엔을 지불), 기타나가노시 지정 문화재 등이 들어있는데, 무엇보다도 그 불당벽 위에는 1931년 4월 9일에 조선왕조 마지막황태자였고 친숙하게 영친왕으로도 불리는 의민 황태자 이은(당시 34세)이 그 곳을 방문했던 사진이 걸려있다.

젠코지 세존원에 걸려있는 영친왕 사진

백제불상이 모셔진 그 땅에서 비운의 황태자가 대검을 찬 군복(일본 제국육군중장으로 퇴역)의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역사의 복잡함을 느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영친왕 사진이 걸려있는 젠코지 세존원

우린 주변의 여러 사적들을 확인하면서 사천왕이 서 있는 젠코지 본당을 향했고,  나라의 도다이지(동대사)처럼 아픈 부위와 같은 곳을 만지면 병을 낫게 하는 불상이 있기에 부실한 신체부위와 같은 곳을 만지며 종교에서 파생된 유니크한 의식도 즐겼다.

넓은 법당 안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일본에서도 명사찰로 꼽히는 이 사찰은 1광3존 아미타여래상을 모시는 곳인데, 552년에 일본에 불교를 전한 백제의 불상(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한 것은 538년설과 553년설이 있다)으로 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이 불상이 644년에 지금의 젠코지로 옮겨지고, 644년에 가람이 완성되었으나 창건 이래 십여 차례의 화재로 인해 불상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건만, 민중의 불심에 의해 보전되었다고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전하고 있다.

젠코치 전쟁희생자 추모전인 충령전

넓고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는 웅대한 사찰과 신록으로 덮인 정원, 그 곳에는 수많은 참배객과 단체 관광객, 중국어를 구사하는 단체여행객으로 북적거렸다.

배달되지 않고 분실된 우편물을 기리는 추모비

젠코지를 방문했을 때는 각종 사원이나 보물전, 혹은 전망대, 본당 등도 봐야겠지만 사찰을 에워싼 수풀 속에 세워진 다양한 추모비 등을 둘러보는 것도 공부가 될 것 같다. 물론 청일전쟁부터 1923년의 관동대진재희생을 추모하는 추모비 등의 돌비석도 많고, 몇 백만의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추모전(입장료가 500엔)등도 있지만, 조금 이색적인 것은, 예를 들면 그동안 사용해 왔던 바늘을 감사하고 기리는 추모비, 그동안 죽어간 꽃꽂이용 생화를 추모하는 추모비, 이발사들이 사용했던 기구들을 추모하는 비 등 각양각색의 다채로운 감사비 혹은 추모비가 마치 보물찾기 미로처럼 정원 수풀 곳곳에 세워져있다. 필자들도 그 넓은 곳을 구석구석 돌아봤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몇 군데가 남아있을 것 같은 미련이 남는다.

이곳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다면 시간을 여유로이 가지고 넓은 정원 속의 각종 추모 감사비를 확인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 물론 게 중에는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묘를 안치한 곳도, 유명한 시인이나 명승의 비석 등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