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등소평의 실용 & 이명박의 실용
[데스크칼럼] 등소평의 실용 & 이명박의 실용
  • 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12.05.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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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섭 객원 논설위원
현대 세계에서 ‘실용’이란 말을 가장 인상 깊게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며 세계적 영향력을 끼친 인물은 중국의 등소평일 것이다. 실각과 복권을 거듭하며 부도옹(不倒翁)이란 별명을 얻었던 그는 1976년 모택동 사후의 중국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문화대혁명으로 피폐해진 대륙경제는 부도옹 등소평이 복권 후 실권을 잡으며 천명한 ‘실용주의 개방노선’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79년 실용노선을 천명하며 부도옹이 내뱉은 유명한 말이 바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사회주의 중국이 치열한 사상논쟁과 공산당 내 권력투쟁으로 세월을 보냈던 패턴을 벗고, 10억 인구를 먹여 살릴 경제건설에 주력해야 함을 천명한 것이었다. 일찍이 공산당에 입당해 프랑스 유학으로 견문을 쌓았으며 당내 치열한 사상투쟁 속에 깊이 있는 공부와 국가경영철학의 정립, 중국적 역사의식을 확립한 부도옹의 내공이기에 가능한 논리였다.

이후 중국의 성장은 더 말할 필요없이 보는 바 대로다. 두 자리 수 성장을 지속하며 불과 20여년 만에 미국과 겨룰 G2 국가가 된 것이다. 이는 분명 중국인 자신의 말대로 대륙굴기(大陸屈起)라 할 만한 세계사적 전개이다. 언뜻 보기에 중국의 변화는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지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그건 아니다. 사회주의를 하되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성공한 그들은 오히려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중국식 고도 사회주의’를 설계해 왔다.

말하자면 사유재산과 시장을 받아들이되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유지에 오히려 자신감을 가진 저들인 것이다. 사실은 이것이 등소평이 말한 ‘실용주의 개방노선’의 지향점이라 할 만한 것이다. 등소평의 실용노선은 이른바 좌파의 길을 가되, 우파의 실용성과 효용성을 받아들여 보다 그릇이 큰 좌파적 사회를 추구한 것인 셈이다. 좌파(사회주의)라는 특정 프레임에만 얽매여 국가를 경영하기 보다 좌우를 망라한 실용을 국가경영에 적용함으로써 ‘성공한 좌파’의 길을 걸어 온 것이 등소평 이후의 중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세계에서 한국에서도 ‘실용’이란 말을 쓴 이가 있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와 취임이후 여러 차례 ‘실용’이란 말을 사용한 적 있다. 대북한 관계나 국가경영, 사회운용에 있어 실용을 강조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을 때 혹자는 언뜻 등소평의 실용을 연상하며 일면 기대하는 바 없지 않았다. 우선 실물경제를 잘 안다는 그였기에 60년간 좌우 이념대립으로 꽉 막힌 남북간 경제교류를 확대, 미국식 자본주의체제의 한계점으로 성장동력이 정체된 한국경제의 돌파구를 북방경제에서 찾아낼까 하는 바램이었다. 또한 대내적으로 좌우 이념대립이라는 쓸데없고 필요도 없는 사상전쟁 현상을 실용적으로 대응, 사회통합과 화합을 이루어 주기를 기대했다.

새로 등장한 대통령에 대한 이만한 기대쯤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그런 기대는 ‘혹시 했는데 역시’로 바뀌고 말았다. 역사의식과 철학의 내공이 보이지 않는 이명박식 실용은 등소평의 실용과는 격과 깊이 자체가 달랐음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그가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그나마 前 정부가 쌓아놓은 남북관계 성과가 무너지며 곧바로 경색국면으로 들어갔다.

그는 마치 前 정권과의 차별화를 남북관계 운용에서 보여주려 작심이라도 한 듯 우파 프레임에 집착한 남북관계와 각종 정책을 펼쳤다. 6.15선언이 무너지고, 10.4 정상회담의 합의가 무의미해지며 급기야 천안함 사태와 5.24 대북제재 조치, 연평도 포격이 이어졌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줄타기라도 하듯 전개됐다. 이런 가운데 일부국민들과 기업인들이 기대했던 남북경제교류 확대, 한반도 경제 전체의 동반성장, 좌우 화해 ? 사회통합을 전제한 통일국가로의 진전은 물건너 가는 양상이 되었다. 이 대통령 등장이후 급작스레 격화된 남한 내 우파들의 활동과 좌우 이념대립, 남북관계 파탄에 따른 안보불안 및 경제난국 확장은 그의 실물경제론과 실용이 철학도 역사의식도 없는, 말잔치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보여줬다.

대한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남한 내 대북사업 기업 200곳을 대상으로 ‘남북경협 기업의 경영실태와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따른 피해금액이 업체당 20억원씩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10곳 중 6곳이 피해회복이 어려우며 도산하거나 대책을 세우지 못한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 중지에 따른 강원도 동부지역 경제도 큰 손실을 입고 무너졌다는 말도 들린다. 생각건대, 만약 이명박의 ‘실용’이 등소평의 ‘실용’을 벤치마킹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등소평의 좌파가 우파의 실용성을 받아들여 중국을 일으켰듯, 이명박의 우파도 한반도 내 좌파(북한)의 존재와 입장을 인정하고 들어갔더라면 지금쯤 한반도 정세와 경제상황은 남북 공히 훨씬 나은 궤도에 올라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가운데 북한의 ‘등소평식 실용’과 변화까지도 유도하며 ‘성공한 우파’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등소평의 실용이 세계사적 전개를 일으킨 것 못지않게 이명박과 남 ? 북의 실용도 그만한 전개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정 이념의 프레임을 벗어난 지도자와 그것에 갇혀버린 지도자가 빚어낸 국가의 변화와 세계사적 의미는 그렇게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