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의 ‘무한도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의 ‘무한도전’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2.06.0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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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카를로발레단 입단한 윤혜진, 한국 대표 무용수로 유럽 향해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씨가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발레단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입단했다. 30대에 해외발레단에 선발된 것 그리고 이를 위해 이적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있어 몬테카를로 입성은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도전이다. 

세계 최정상의 컨템퍼러리 발레단인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Les Ballets de Monte Carlo) 총예술감독 ‘잔 크리스토프 마이요’(Jean-Christophe Maillot). 그는 ‘인간관계와 인간내면세계’를 구현하는 아티스트이다.

   
▲ 예술의 전당앞에서 만난 국립발레단 윤혜진 수석무용수는 카리스마틱한 무대모습과 달리 구김살 없고 털털한 성격이다.

지난 2010년 잔 마이요 감독은 프랑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역사성을 포함한 복잡한 사회구조를 설명하기보다 매 번 다양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인간을 주목한다”면서 ‘점진적인 진화’를 역설한 바 있다. 가령 그의 작품을 보면 영상, 모던클래식, 다양한 표정, 동작 등으로 표출됐던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이 대표적이다. 윤혜진은 바로 위 조건에 부합되는 프로페셔널이다.

지난 27일 오는 6월 마지막 공연무대와 9월 모나코 발레단 입단을 앞둔 그녀의 소감을 들어봤다. 발레리나로서 큰 키에 때로는 당차고 털털하게 인터뷰에 응한 윤혜진 국립극장 수석무용수, 그녀가 걸어오고 앞으로 가야할 그 길이 결코 쉬워 보이지만은 않다.
 
-세계 정상으로 알려진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하셨습니다. 어떠신가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곳에 입단하게 돼 기쁩니다. 2002년에 우연히 본 모나코 몬테카를로 공연을 보고 꼭 저 발레단 안무가와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라는 자리가 아쉬울텐데요.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포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발레를 시작하면서 꿈꿔왔던 국립발레단에서 공연도 잘해왔고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제가 해외발레단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진출인 셈이죠.

-합격하기까지 과정은 어땠나요?

거의 매일 진행되는 몬테카를로 발레단 오디션에는 세계 각국의 메이저 컴퍼니에서 주연급 발레리나들이 참가해요. 저는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3월 일본공연장으로 제 공연영상DVD를 갖고 ‘발레클라스’(기본동작을 하며 몸을 푸는 상황)을 이틀간 보라고 연락이 와서 갔어요. 당시 저는 국내공연에서 아킬레스건 부상도 당하고 포기하는 심정으로 참가했습니다. 첫 대면에서 마이요 감독이 무대 위에서 단원들과 ‘발레클라스’를 하라고 했어요. 사실 속으로 무척 떨었지만 저도 한국 대표무용수로 나왔고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태연하게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날 마이요 감독이 면담 중 제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으로 자기 단원들과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지 확인했고, DVD도 봤다”면서 “긍정적이다”라고 대답해줬어요.

-그럼 치료는 어떻게 하셨나요?

돌아와서 푹 쉬었죠. 재활도 하고 그랬었죠. 하지만 무용수라면 다 안고 사는 거니까. 이제는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어요.

-발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했어요.  어려서부터 심장이 안좋고 몸이 약했어요. 당시 어머니가 ‘몸도 약하니까 운동은 어렵고 발레를 배우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셔서 학원을 다녔답니다. 당시 저는 철없는 아이였어요. 발레를 위한 기본기도 없이 토슈즈부터 신고 싶어 투정도 부리고 그랬었죠.

그렇게 발레를 배우고 예술중학교로 입학시험을 봤지만 보기 좋게 떨어졌어요.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인문계중학교로 입학하고, 다니던 발레학원에서 예술계와 인문계로 나뉘고부터 ‘왠지 예술중학교 친구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오기로 열심히 연습했었죠. 그 후로 각 콩쿨에서 1등 수상을 하고 예술 고등학교를 1등으로 입학했어요. 그러다가 고1때 외국유학을 택했죠. 원래는 러시아발레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위험하다’는 풍문도 듣게 되고, 주변권유로 조지 발란신이 일궈낸 뉴욕시티발레단에 입학했어요.

▲ 지난 2010년 2월부터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한 보리스 에이프만 러시아 안무가 작품 '차이코프스키, 삶과 죽음 미스터리'중 한 장면. 윤혜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의 모습이다.
-외국생활은 어땠나요?

힘들었죠. 그 당시는 어리고 욕심 많을 때라서 제가 잘난 줄 알다가 더 큰 무대로 갔으니 어려운 상황이 연일 계속됐죠. 처음에는 적응도 못했어요. 1995년이었는데 당시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 입학한 상황이라 낯설고 사람취급도 못 받았었죠. 뉴욕시티발레단은 템포가 빠른데다 시선처리도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 달랐어요. ‘발란신 스타일’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룸메이트도 냄새난다고 피하고 그랬었죠.

-고생을 많이 하셨네요. 대부분 발레리나들이 그렇게 많은 고초를 겪습니까?

그럼요. 저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하신 분들도 있고, 그래도 저는 순탄한 편이었던 것 같아요. 이 정도 고생은 ‘당연히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저는 좋은 환경에서 발레를 배우고 유학생활도 하고 감사하죠.

-가족들이 오디션합격을 자랑스러워 하시죠?

오디션 합격 때까지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계약서가 오니까. 걱정 많이 하시죠. 아버지는 반대가 심하셨죠. 혼기도 찼는데 외국발레단으로 입단하니까. 지금은 이해하셔요. (참고로 윤혜진씨는 원로영화배우 윤일봉씨의 차녀이다)

-오는 6월 15일 국립발레단에서 개최하는 발레축제 ‘로미오와 줄리엣’.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윤혜진씨의 마지막 공연이 기대됩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몬테카를로발레단에서 활동하면 한국공연을 통해 다시 찾아올 겁니다. 거창한 꿈을 안고 해외발레단에 입단한 게 아니라 제가 좋아서 선택한 겁니다. 마이요 감독 같은 분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 앞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