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Issue] “같은 시인으로서 너무 창피하다”
[문학계Issue] “같은 시인으로서 너무 창피하다”
  • 이소리 본지 논설위원
  • 승인 2012.06.1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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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문화정책 98% 고개 ‘끄덕’... 시인 106명 서울 지하철 시 ‘문제 많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앞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멎는 곳이 있다. 스크린도어에 하얀 글씨로 촘촘하게 박혀 있는 시가 그것이다. 삭막한 지하도 아래에서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시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돕고, 사람들 메마른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는 점에서 참 좋은 일이다.

문제는 스크린도어에 박혀 있는 시를 읽다보면 같은 시인으로서 스스로 얼굴이 붉어질 때가 많다는 점이다. 왜? 이게 시인지, 산문 한 토막이나 어디서 많이 들은 노랫말을 적당히 짜집기해서 행갈이만 대충 한 채 시라고 하는 것인지 헛갈릴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시를 쓴 사람이 시민이라면 이름 옆에 괄호라도 쳐서 ‘000구 시민이 쓴 시’라고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인들이 쓴 시들도 너무 형편없는 시들이 대부분이어서 이 시인이 어떤 시인이며, 이런 시를 누가 어떤 잣대로 뽑았는지 그 시 아래 밝혀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점용 시인(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이 요즈음 서울 지하철 시를 스토리텔링과 도시 마케팅 측면에서 알아보기 위해 시인 1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계간 <시산맥> 여름호)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들이 일반 이용객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지만 시인들은 불만이 꽤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시인들은 지하철 시를 실은 서울시 문화정책에 대해서는 98%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 작품 수준으로 한 마디로 ‘수준 이하’ 작품이 많다는 데 절반가량(48%)에 이르는 시인이 한 표를 던졌다는 것.

서울시는 지금 이런 문제점을 사라지게 하기 위해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 등 몇몇 문인단체에게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있는 시를 그 지하철역에 어울리는 새로운 시로 가려 뽑아줄 것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해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있는 시를 새롭게 바꾸기로도 했다.

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고운기)에서는 "서울시에서 이 작업 협조를 요청해 연차적으로 이 작업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이번에는 소속 회원 가운데 60대 이상의 시인에게 작품을 요청하기로 했다"며 "이번에는 만 60세 이상 한국문학작가회의 소속 시인에게만 해당된다. 이에 게시를 희망하는 회원께서는 작품 1편을 이 이메일로 회신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기간은 6월 17일(일)까지.

문제는 이곳에 실리는 시들이 참 좋은 시라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쓴 시도 그 역사 정서와 맞는 좋은 시를 뽑아야 21세기를 들어 죽어가는 우리 시가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