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전설의 고향에 희망을 걸다
[데스크칼럼]전설의 고향에 희망을 걸다
  • 권대섭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12.06.1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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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신바람 문화사업’에 부쳐...

▲권대섭 객원논설위원
어린 시절 뛰어놀던 ‘바걸재’는 참으로 오래된 산마루 고개다. 경북 영천시 화남면의 대천(강당), 사천, 노방, 대내실 등의 마을과 중리(구마리), 월지, 내지, 학지, 선관 등의 마을들을 남북으로 10리 이상 가로지르며 뻗은 완만한 산등성이 고개를 이 지방 사람들이 ‘바걸재’라 불렀다.

영천의 진산(鎭山)에 해당하는 보현산과 기룡산 줄기가 서로 만나 어울리며 빚어낸 나지막한 산줄기는 골골이 아름다운 냇가와 들판, 마을들을 이루며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 줬다. 사람들은 바걸재 산등성이와 기슭에 기대어 논밭을 일구며 못도 막고, 보를 막아 필요한 물을 끌어들였다.

어느 여름날 소먹이다가 바걸재 능선 흔적만 남은 성황당 돌무더기 옆에서 바라본 고향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보현산 아래 자천 숲에서부터 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 길을 따라 줄지어 선 가로수들과 벼가 자라나는 푸른 들판, 능금밭들, 중리 내지 월지 오동 등 마을들, 오후 햇살을 받으며 아담하게 자리잡은 산동학교 기슭, 바걸재를 끼고 은빛 실처럼 흘러가던 구마리 강변, 그곳 모래사장에 발가벗은 아이들, 그 너머 붕어듬, 삼창 현고 진동골 한천 마을, 지곡학교, 자티고개, 양각소, 사천마을 앞 버드나무 숲까지....

거기 따라 흐르는 맑은 내(川)에는 피리 먹지 송어 꺼덜뭉치(버들치) 모래무지 노고지리 꺽자구(꺽지) 텅갈래 텅수 미기(메기) 미꾸라지 뿌구리 고디 우리 중택이 자라 엉머구리 검철이(거머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바걸재 고개위에서 바라본 일대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전해오는 노래가 읊어 가라사대, “외 바걸 두레 바걸/ 버걸재 십리길/ 서울아씨도 여기 올라/ 바걸재 오리장 숲을/ 구경하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네”라고 했다 한다.

바걸재 길은 두 부분으로 불렸는데, 사천 대천 쪽에서 바라보는 바걸재를 ‘바깥 바걸’ 즉, ‘외 바걸’이라 했고, 재를 넘어 중리 쪽으로 넘어오는 길을 ‘안 바걸’ 즉, ‘두레 바걸’이라 불렀다. 또 경관이 좋은 산등성이 능선 길은 양반들만 다닐 수 있다 하여 ‘양반 길’이라 한 반면, 천민들은 아래 쪽 5부 능선 길로만 짐을 메고 다녔는데 이를 ‘등금쟁이 길’이라 했다. 풍수적으로는 큰 황소가 짐을 가득 실은 구루마(마차)를 바에 걸고, 길을 막 떠나기 직전의 형국을 띄고 있다고 한다.

구루마에 짐을 가득 실은 소가 길을 출발하기 위해 바를 걸었다고 해서 ‘바걸재’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가 바를 건 자리에 해당하는 그 자리를 찾아 묘를 쓰면 당대에 큰 부자가 되는데, 아직까지 아무도 그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바걸재 능선에서 중리 쪽으로 내려오는 골짜기를 ‘용난골’이라 부르는데, 400여년 전 임진왜란때 이곳 출신 권응수(權應銖) 장군이 구마리(驅馬里 : 말을 달리는 동네)에서 말달리고 활쏘며 군사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태우기 위해 용마(龍馬)가 나와 하늘로 치솟았다는 곳이다. “장군나자 용마 났다”는 말(言)이 그래서 이 지방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왔다. 실제로 권장군은 의병 창의 초기 군사가 많은 것 처럼 위장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옷으로 깃발을 만들어 바걸재 능선에 쫙 꽂아 놓고, 용난골에 일부 군사를 매복시켜 놓기도 했다.

바걸재 능선의 깃발에 놀라 삼창 현고 쪽으로 들어오던 왜군들은 붕어듬과 한천변 숲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군사들에게 척살당하니, 그 유명한 임란 경상좌도의 첫 승전인 ‘한천 승첩’이다. 그리고 이 승첩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의병들이 투박한 솜씨로 큰 바위에 수줍은 표정의 장군상을 그려 넣으니, 바로 삼창 붕어듬 위에 오늘날 까지 버티고 서있는 ‘장군바위’이다. 바걸재는 이토록 평시의 주요 교통로를 넘어 전시엔 적을 막고 유인하는 군사 작전상의 중요 역할도 담당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옛 신녕현의 큰 고개였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 문화원연합회가 ‘2012 농어촌 신바람 문화’ 시범사업 마을 40곳을 지정, 발표한 바 있다. 전국 방방곡곡 각 지역의 특수한 이야기나 전통문화(농악, 세시풍속, 설화, 마을 굿, 당제, 노동요 등)를 복원해 스토리텔링화, 문화콘텐츠로 개발하고 전승하겠다는 계획이다.

첫 사업에선 총 132개 마을로부터 사업계획서를 제출받아 그 중 40곳을 우선 지정해 시범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필자의 고향 마을에서 보듯, 전국 곳곳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채 묻히거나 잊혀져 가는 각종 스토리들과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원연합회가 추진하는 ‘농어촌 신바람 문화’ 시범사업이 무너져 가는 이 땅의 농어촌을 다시 살려, 생기가 도는 고향마을들로 되돌릴 수 있다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그것이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을 다시 복원, 이 땅의 문화와 경제의 든든한 저변을 확보해 줄 수 있는 길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까지 갖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원 연합회의 전통문화 복원사업이 대박을 터트리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