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볼거리 제공해 “꿩 먹고 알 먹고!”
새로운 볼거리 제공해 “꿩 먹고 알 먹고!”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6.10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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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호객행위 근절책 시급... 홍보구역 만들어 배우들 퍼포먼스 보여주자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에서는 공연 전단지를 들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대학로에서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좋은 공연을 보려고 기분 좋게 찾아온 문화지구 대학로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불청객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길을 막고 팔을 잡아끌어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한 명을 겨우 떼어내고 보면 몇 발자국 못 가서 또 다른 호객인에게 붙잡힌다.

▲ 대학로 개그 공연장 앞에서 공연 전단지를 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학생들

이 같은 대학로의 호객행위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서울연극협회나 대학로소극장연합회,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등의 각종 단체에서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이다.

정재진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적극적인 홍보를 위해 길거리에서 홍보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악착같은 게 문제”라며 “벌써 10년이 넘도록 근절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그 극단들도 생계가 달린 일이다 보니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좋은 물건은 가만히 있어도 비싼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호객행위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관객들의 작품에 대한 불신이 더 깊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웅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이사장은 “소매를 잡고 길을 막는 등의 행동은 관객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며 “이는 대학로의 이미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순수연극을 하는 대다수의 극단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강조했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대학로를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이준호씨는 “호객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연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며 “공연시간이 가까워오면 2만원이던 공연표가 반값으로 뚝 떨어지니 굳이 비싼 공연을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할인해주지 않는 다른 공연들이 비싸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대학로 공연을 자주 접한다는 최민정씨는 “처음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알바인 줄 알았는데 극단이나 기획사에 속해 있는 연기 지망생이나 개그 지망생들도 있어서 놀랐다”면서 “무대에 공연을 올리기 위해 스스로 표를 팔고 있는 그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호객행위를 하는 공연은 왠지 믿음이 안 간다”고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공연 홍보를 위해 시작된 활동이지만 지나친 홍보행위로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조성해 대학로의 공연질서를 어지럽히고, 심지어는 작품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제값을 내고 공연을 보면 손해라는 인식’은 일부 극단의 공연뿐 아니라 대학로 소극장 공연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대학로에 사람들의 발길을 끊게 하는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웃찾사 공연장의 홍보실장은 “연극은 홍보활동이나 공연에 대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전혀 지원받는 게 없다”며 “1회 공연에 30명이 넘는 개그지망생들이 나오는데 관객은 10명도 안 될 때가 많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어떤 신문에서 우리가 대행업체를 써서 고등학생 알바생들에게 호객행위를 시키고 있다고 하던데”라며, “이는 잘못 전해진 말이다. 우리 기획사 소속의 개그 지망생들이 자기 공연에 관객을 끌어오기 위해 공연장 앞에서 홍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연장 앞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전단지만 뿌리는 애들은 알바생이고 티켓을 파는 사람들은 인지도는 낮지만 공연장에서 개그하는 지망생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혜화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좋은공연안내소'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기 위해 공연 전단지를 들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호객인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생활공감문화열차 개막식에서 “대학로를 찾는 관객을 정통 연극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호객행위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해결책도 나오고 있지 않은 상태다.

경찰에서도 호객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아르바이트 고등학생의 경우 4만~5만원의 과태료만 물고 훈방 조치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보다 이런 호객행위를 하는 극단에 대해 제재를 가할 상위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연극협회나 예총 등이 있지만 가입되지 않은 단체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서울연극협회와 한국소극장협회 등 많은 단체에서 대학로 호객행위 근절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나 종로구청 등 관계 당국에 수차례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대안은 나오고 있지 않다.

문제가 이쯤 되고 보니 관련 민간단체뿐 아니라 시민들까지도 호객행위 근절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더 강력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웅 대학로문화발전위원회 이사장은 “더 이상 단속만으로는 안 된다. 과태료도 올리고 극단 자체에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며, 가능하다면 관련 법도 개정돼야 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그는 현재 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정부나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통제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한국소극장협회 등의 단체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대학로 문화를 무척 아낀다는 김정훈 씨는 “2천명의 서명을 받아내면 감사원에서 움직인다고 들었다”며 “제도적으로 호객행위를 막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할 것 같다. 정말 이러다가는 시민들이 나서서 서명운동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며 근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훈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공연홍보에 대한 다른 대안이 나와야 호객행위를 확실하게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학로에서 공연을 홍보 및 마케팅할 수 있는 방법은 서울연극센터를 활용하는 것과 문화게시판 및 시민게시판, 그리고 40개의 가로등 일부에 광고판에 포스터를 붙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모두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수수료를 지불하고 일정기간 포스터를 게시할 수 있다.

문화게시판은 서울연극협회에서, 시민게시판은 종로구청도시계획과 광고물 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가로등의 원통형 게시판은 종로구청 토목과 소관으로 한국소극장협회에서 관련 일을 맡고 있다.

한 극단의 관계자는 “포스터 하나 붙이려고 해도 절차나 그런 것들이 복잡해 홍보가 자유롭지 못하다”면서 “특히 홍보게시판도 부족해 대다수의 극단들은 이마저도 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지구로 지정해 많은 것을 규제하면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외면하느냐?”고 하소연했다.

한국소극장협회 정재진 이사장은 “가로등 게시판 40개는 130여개가 넘는 소극장의 개수에 턱없이 모자라 경쟁이 치열하다”며 많은 가로수를 확보해 성균관대학교 근처까지 확장하려고 하지만 행정안전부에서 가로등에 광고 일절 못하게 법으로 막고 있어 게시판 증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서울시는 대형전광판을 설치해 홍보를 지원하려고 했지만 대학로는 주거지역이라 설치불가지역으로 분류돼 계획이 무산됐다.

종로구청 도시계획과 담당자는 “일반 상업지역의 5층 이상 건물에만 전광판을 설치할 수 있는데 대학로는 주거지역”이라며 “현재로서는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을 개정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김태훈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지하철 개찰구 앞에 통합전산화 시스템을 설치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한 곳에서 대학로의 모든 공연에 대한 정보부터 티켓할인이나 예약이나 구입 등을 전산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치해 대학로를 찾는 대중들에게 공연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 극단의 대표는 “호객행위 같은 불법행위가 아닌 새로운 마케팅 수단을 찾아야 한다”며 “순수연극이나 코믹연극, 개그 등을 따지고 분류해서 볼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강구할 것”을 촉구했다.

김태훈 교수 또한 “호객행위의 가장 큰 목적이 공연 홍보이기 때문에 단속만으로 없앨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법적인 제재도 필요하지만 홍보를 위한 시설이나 연극인들의 자세에도 반성이 요구된다”며 장·단기적인 대안들을 제시했다.

연극 ‘갈매기’를 연출하고 ‘촐라체’ 등의 연극에도 출연한 연극배우이기도 한 김 교수는 “연극인들이 자세를 낮춰야 한다. 공연 전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 시간대를 정해 대학로 거리나 마로니에 공원에서 배우들이 나와서 퍼포먼스나 공연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작품을 홍보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개그 기획사의 관계자도 뜻을 같이했다. 그는 “홍보구역을 만들어 배우들이 그곳에 모여 홍보하면 새로운 볼거리도 되고 호객행위도 단계적으로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로 극단들과 연극인들이 함께 논의해 이 계획이 추진되면 그 시간에 맞춰 대학로 거리나 마로니에 공원에 관객들이 몰려들어 감상하고, 직접 작품을 선택할 수 있으니 배우나 극단 입장에서는 그게 바로 홍보라는 생각이다.

특히 개그 공연뿐 아니라 모든 연극배우들은 더욱 자세를 낮추고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자신의 작품을 배우 스스로가 당당하게 알려 관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