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 라이즈, 자본주의의 유치한 부활
다크나이트 라이즈, 자본주의의 유치한 부활
  • 서문원 기자
  • 승인 2012.07.23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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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지난 4년간 액션물 중 최고, 하지만 2% 부족해
최근 개봉된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는 스토리전개, 액션, 배트맨의 과감한 영웅적 묘사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지적할만한 것이 없는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2008년 상영된 <다크 나이트> 이후 4년 동안 개봉된 미국의 그 어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훌륭한 작품이다.  

하지만 국내외 영화팬들은 전작 <다크 나이트>(2008)에 비해 "2%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왜 일까? 왜 영화팬들은 4년 전 <다크 나이트>가 최근 개봉된 <다크 나이트 라이즈>보다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일까? 지금은 고인이 된 히스 레저가 맡았던 조커의 연기 때문에? 아니면 놀란 감독의 당시 연출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 다크나이트 라이즈 포스터 브루스 웨인 혹은 배트맨의 부활을 알린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상업 영화가 지닌 한계를 표현했다.

돌이켜 보건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중 <다크 나이트>를 높이 사는 이유란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과거 20세기 초 러시아 짜아르 왕정통치에 반대하며 일어난 '볼세비키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전체주의의 태동을 비꼬면서, 동시에 미국의 근현대사 또한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다크 나이트>가 호평 받는 두 가지 이유?  

첫째, 4년 전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렸던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가장 눈에 띈 조커(히스레저)가 저지른 영화 초반  은행강도 씬은 과거 러시아 독재자 스탈린이 '혁명'이라는 미명하에 그루지아 트리빌시(Tbilisi)에서 중앙은행 금고를 강탈하던 사건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또한 조커가 그 많은 달러를 태워버리는 장면 또한 미국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두 번째, <다크 나이트>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한 거대자본을 낮의 지배자 브루스 웨인으로, 밤의 지배자 배트맨으로 표현한 점은 이 사회 속에 똬리를 튼 이분법적 사고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를 잘 드러낸 대목이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테러리스트 혹은 악으로 지칭되는 조커를 통해 이 사회 속 '어둠과 빛'을 제대로 재조명했다. 

위 두 가지 관점에서 비춰볼 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특히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는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에 편견 없이 알렸다고 본다. 세계인이 공감한 것이다. 이 영화는 특히 세계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오큐파이운동 확산 등을 반영, 사회내 역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그 반대로 진행됐다. 최근 개봉된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는 전작 <다크 나이트>(2008)로 소통된 세계인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을 무시한 채, 미국적인 관점(보수적이고 자본주의 경향이 강한)으로 되돌아갔다. 

실제 놀란의 마지막 배트맨 시리즈를 감상한 마니아들은 전작과 다른 모순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했다.  <배트맨 비긴즈>(2005)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별반 차이 없어 보인다. 아울러 영화 마니아들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놓고 '부족하다'고 보는 부분이란 앞서 설명한 <다크 나이트>가 호평받은 이유 두 가지가 담은 '디테일'이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영화 <배트맨 라이즈> 장면 중 아메리칸 풋볼경기장 폭발사고 전, 미국의 애국가를 짓밟고 올라선 '베인'이라는 괴물의 의도 또한 그(미국적인 관점) 연장선상에 갖혀 있다.  

▲ 2008년 인기를 모았던 영화 다크나이트는 히스레저의 연기에 힘입어 사회내 뿌리깊게 박힌 불신을 토대로 선과 악을 표현했다.
게다가 "혁명은 실패한다"라는 명제에 따른 부연 설명이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미국은 물론 세계가 앓고 있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파헤친 전작 <다크 나이트>의 객관성에 비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지극히 주관적인 '미국식 잣대'로 마무리했다.

 미국의 끝도 없는 딜레마의 부활, '브루스 웨인'

최대 재벌 브루스 웨인이 사는 고담시는 검찰과 경찰이 통제하는 곳으로서 우리가 익히 아는 여느 도시와 똑같다. 이를 테면 그곳은 영화 배트맨 시리즈 배경도 지난 몇 년 동안 파생금융상품으로 파산하고도 국민세금으로 버티는 월가가 위치한 곳으로 인간문명과 온갖 이기주의가 모여사는 뉴욕시이다.

가령, 미국의 '애국심'(patriotism)은 '할리우드 역사'로부터 출발한다. 역사도 짧은 이 나라를 높이 평가해준 것은 역시 영화다. 그러나 그 토대를 마련해 준 할리우드는 지구상의 모든 표준을 비판없이 확대 재생산했다.

바꿔말해, 우리가 아는 '할리우드'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살아있는 미국의 역사'에서 서술한 미합중국의 어두운 이면으로서 건국 초기 아메리컨 인디언 학살, 뒤이어 펼쳐진 인종차별, 무차별 노동탄압 등을 덮어버리고 지구상 유일의 문화표준으로 군림했다.

놀란 감독이 연출한 '배트맨 시리즈'는 '어둠과 빛'을 상징하는 브루스 웨인, 그리고 배트맨이 영화 스토리 전반을 가로지르는 모든 사건, 사고의 해결점으로 지칭되어왔다. 특히 <다크 나이트>는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의 반성을 이끌어내며 살인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채 무대 뒤로 사리지는 것이 마지막 대미를 장식했다.

하지만 이번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주인공 배트맨의 부활을 외치며 지난 시리즈 내내 등장한 배트맨, 그의 '열반의 경지'(?)에 이른 '희생' 또한 브루스 웨인의 종횡무진으로 희석됐다. 즉 우습게도 '희화(戱化)'가 된 것이다.

덧붙여 할리우드적이고 미국적인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자국민과 주변 국을 상대로 모든 문제를 덮고 다시 신자유주의를 외친 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정작 현실은 미국 경제로 인해 파국을 맞았는데도 말이다.  차라리 월가를 “한심스럽다”고 한 마디라도 하고 했다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끝으로 이 영화 OST를 담당한 작곡가 한스 침머를 클래식 음악인들이 비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미 세상 밖으로 나온 클래식 음악들을 재편집해 내놓은 채,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꼬네를 범접치 못하고 결국 미국의 애국심 속으로 사라진 이 느낌.

영화 마니아들이 배트맨 라이즈를 본 뒤 '2%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건, 이 영화가 비록 미완으로 끝날지라도 우리 모두에게 영화감상 뒤 서로 대화할 여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인 듯 싶다. 물론 이 영화는 기존 액션물 중 잘 만들어졌다고 본다. 하지만 배트맨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가 지닌 미국적이고 할리우드적인 관점이 곳곳에 남겨둘만한 여백을 메꿔놓은 탓에 여전히 개운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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