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미술관을 짓는가
누구를 위해 미술관을 짓는가
  • 박희진 객원기자/과천시설관리공단
  • 승인 2012.08.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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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희진 객원기자
지난 7월 터키 세계문화유산 탐방을 다녀왔다. 터키라는 낯선 나라에 10개 도시 2500km 장거리를 바다건너 산을 넘어 역사의 터전을 찾아 나섰다.

 9일간의 여행기간동안 필자가 방문한 유적지의 수는 20곳이 넘는다. 터키는 유적지에 복원돼 있는 현장 자체를 박물관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때문에 세계적인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 외에는 유적지를 중심으로 관람했다. 누구나 그렇듯 다른 나라에 관광을 가면 대개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박물관, 미술관, 유적지가 아닐까 싶다. 짧은 시간에 여행지에 푹 빠져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기 위해 그 나라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모아놓은 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해외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으로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가 급증하고 외국인들이 우리문화 콘텐츠에 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덕분에 한국은 문화콘텐츠 활용방안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 흐름 속에 한국 현대미술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2010년부터 아시아근현대미술과 중국현대미술의 예술성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외국인들이 한국현대미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곧 미술관 건립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 경복궁 옆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이 ‘ULL'이란 이름으로 2013년 하반기 개관을 목표로 한창 건립 중에 있다. 서울분관 건립은 큰 의미를 부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기공식 장면
첫째는 서울이라는 국가 수도중심에서 현대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접근성에 있어 고무적인 관점. 둘째는 조선시대 규장각, 사간원, 종친부의 건물이었고 70년대 국군기무사령부로 사용됐던 한국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통성의 관점. 셋째는 과거와 현대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활용한 예술프로젝트라는 점이다. 서울분관은 사방에 박물관과 미술관, 갤러리, 궁궐, 문화재가 둘러싸여 있다. 한국의 관광요지가 되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문화예술 공간의 탄생이다.

그러나 지난 13일 안타깝게도 서울관 신축 공사장에서 큰 불이 났다. 일주일간 화재냐 인재(人災)냐를 두고 정치계와 언론계는 잘잘못을 밝히는 데에 열을 올렸다. 2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에 참사의 의혹을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미술관 건립에 급급해 안전을 소홀히 한 배경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미술관 건립을 서둘러야만 했던 배경,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미술관은 도시를 장식하는 장식품이 아니다. 미술관 부지 내에 문화유산의 보존, 고건축물의 리노베이션과 신건축물의 공간구성과 어울림, 입지조건에 따른 프로그램과 운영구상 등 신중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미술관은 현세에 우리들이 살 집을 짓는 것이 아닌 우리 역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유산의 하드웨어라 함은 한국문화의 집약적 공간을 말한다. 전국에 20여 곳의 대형미술관이 5년 내에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을 비롯해 경기도 4곳, 인천 1곳, 강원 2곳, 충남 1곳, 전북 1곳, 전남 7곳, 경북 1곳, 경남 1곳 등이다. 기존 국공립 26곳, 사립 70여 곳의 미술관을 합치면 전국에 130여 곳의 미술관으로 늘어난다.

누구를 위해 미술관을 짓는 것인지. 어째서 서두르기만을 바란 것인지. 수없이 만들어내는 하드웨어 속에 우리문화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콘텐츠는 얼마나 있을런지 의문이다.

■과천시시설관리공단 박희진 (서울문화투데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