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기로 승부한다, 탤런트 이민우
[인터뷰] 연기로 승부한다, 탤런트 이민우
  • 이은영 편집국장 / 정리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08.22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생들 가르치며 죽는 순간까지 배우로 존재하는 삶으로…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연기생활이 30년을 넘어섰다. 사극과 현대극을 아우르며 코믹연기부터 악역까지 어색함 하나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30년째 대한민국 시청자들과 함께 해온 탤런트 이민우(36). 1980년대부터 ‘국민아들’로서 말 그대로 전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1990년대에는 하이틴 스타로 자리매김하며 ‘잘 자란 아역배우’의 롤모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평생을 연기에 전념해 온 그에게도 연기자로서의 혼란이 있을까? 그가 맡아온 역할에도 영향도 있겠지만 연기자 이민우를 생각하면 단아하고 기품있는 조선시대 왕세자가 떠올려진다. 그래서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었지만 왠지 그만은 꼭 궁궐에서 만나야 제 격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궁의 단청 빛깔과 어우러지는 쪽빛 남방을 입은 그를 경희궁에서 만났다. 만나본 그는 역시 기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여전한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 5월 ‘결혼의 꼼수’가 종영했다. 매주 라디오 고정 진행 외에 시간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원래 운동을 좋아한다. 특히 자전거에 심취해서 요즘은 하루에 두 번씩 아침, 저녁으로 탄다. 하도 열심히 탔더니 더위를 먹었는지 안색이 안 좋다는 말까지 듣고 있다.”(웃음)

-지난해 연말부터 건강 악화로 팬들의 걱정을 샀다. 요즘 몸은 어떤가?
“정확한 병명은 추간판탈출증이다. 일명 ‘허리디스크’라고도 한다. 지금은 괜찮아져서 운동도 하고,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다.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이건 완치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혼의 꼼수’를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도 없이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하다 보니 무리했는지 살짝 안 좋아지는 것 같더니만 쉬면 또 괜찮아지고 그러더라.”

-지난해 ‘공주의 남자’의 ‘정종’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뛰어난 연기력과 순정남, 의리남 캐릭터의 ‘정종’을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 같다.
“연기자 입장에서도 시원한 기분으로 연기한 작품이었다. 막판에 건강 때문에 몸이 좀 고단하기는 했지만, 아주 속 시원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내가 한 드라마 중 해외에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기도 하다. 20개국에 수출됐다. 일본에는 7월부터 방영되기 시작해서 국내에서 종영된 지 1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일본과 인터뷰를 많이 했다. 내가 참여했던 드라마에 1년이 지난 지금에도 해외에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니 참 기쁘다.”

-데뷔도 사극 ‘조선왕조 오백년’으로 했다. ‘한명회’, ‘용의 눈물’, ‘여인천하’ 등 이민우를 말할 때 사극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극보다는 현대극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사극을 회피하려고 한 적은 없다. 다만 지금까지의 매니지먼트사들은 현대극과 사극이 동시에 제의가 들어오면 대게는 현대극을 권하곤 했다. 두 작품 촬영 일정이 한 달 정도 겹칠 경우 많은 배우들이 두 작품 모두 하는 걸로 안다. 하지만 난 겹치기 촬영은 하지 않는다. 이렇듯 스케줄이 맞지 않아 사극을 포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주의 남자’도 촬영이 일주일만 뒤로 미뤄졌어도 아마 타 방송국의 주말드라마에 출연했을 거다.”

실제로 그는 “어려울 때마다 사극이 나를 살렸다”라며 자신에게 사극이 특별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 많은 연기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극의 특유의 어투와 연기표현에 있어서 그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깊은 내공으로 ‘사극의 남자’로 등극하게 됐다.

-라디오 프로그램 ‘EBS FM 스페셜’의 진행을 맡고 있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청취자들의 인기가 높다고 들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행되는 11시간짜리 생방송 프로그램이다. 나와 우희진 씨가 3시간씩 진행을 맡고, 김학도 씨가 4시간을 진행을 맡고 있다. 청취자의 사연으로만 이뤄지며, 매월 주제가 있어서 청취자들이 그 주제에 맞는 사연들을 보내주신다. 사연 소개하면서, 청취자와 전화로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매달 말에는 대상, 최우수상 등으로 사연을 선정해 상품도 드리고 있다. 사연은 주로 슬프고 가슴 아픈 내용이 많은 편.”

-많은 배우들이 장르 불문하고 영화, 뮤지컬, 드라마 등을 오가는 요즘, 십여 년 전, 영화 3편을 빼고는 계속 드라마에서만 활동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한 편을 한 적 있는데 뮤지컬이나 연극 영화에 욕심은 없는지?
“그렇지 않아도 작년에 연극을 할 뻔 했었다. ‘공주의 남자’ 스케줄과 맞지 않아 불발됐다. 뮤지컬 제의 역시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노래와 춤에 워낙 약해서 나 스스로가 못한다고 거절했다. 대부분 한 달 정도 트레이닝하면 기본적으로 무대에 선다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무대에 서는 건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81년 데뷔 후, 연기경력만 30년이 넘는다. 아역배우 당시 드라마와 CF를 종횡무진 했었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말 그대로 ‘길거리 캐스팅’이었다. 충무로를 가던 길에 모델에이전시 실장님이 모델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다가왔다. 요즘처럼 나서서 아역배우를 시키겠다하는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우리 때엔 캐스팅이나 관련업계 종사자와의 연줄을 통해 데뷔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을 빼앗겼다던가, 친구들과의 추억이 부족하다는 둥, 이는 요즘 어린 나이의 연예인들이 하는 말들이다. 본인도 아쉬운 게 있는지?
“소풍도 못 가보고, 수학여행도 그렇고…. 학교에 안 나간 날이 나간 날의 배가 넘는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많이 방황하고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계단을 밟아야할 시기에 계단 없이 올라갔으니 거기서 오는 혼란이랄까. 스무 살 때 친구들과 대화가 안 통했다. 서로가 서로 무슨 얘길 하는지 못 알아들은 거다. 하지만 얻은 게 더 크다고 생각한다. 얻은 부분에 더 감사히 여기고 있다. 선택을 한다는 건 하나는 포기해야한다는 것과 같다. 요즘은 연예활동을 시작하는 연령층이 갈수록 어려진다. 어렸을 때부터 선택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모범생 이미지는 단순히 이미지뿐만이 아니다. 1995년 중앙대 연극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한 ‘진짜’ 모범생인 것. 덧붙이자면, 그는 대입을 앞두고 서울대 체대와 중앙대 연극학과를 사이에 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그와 체대의 연관성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1년 동안 훈련을 받으며, 중학교 시절까지 골프 주니어 선수로 활약한 전직 골프선수 출신이다. 최근에 와서까지도 골프 전문 채널의 MC로 활동하는 등 여전히 수준급 실력을 자랑하는 골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연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아마 골프선수가 돼 있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경복대학교 음악예술학부 전임교수로서 후학에 힘쓰고 있다.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강조하는가?
“내 교재는 출판사를 통해 나온 게 아니라 내가 자료들을 모아 직접 만든 거다. 그걸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이건 그저 방향성을 제시할 뿐, 내용은 너 네들이 채워 가야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잠시 방황하는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만의 창의력과 이야기들로 자리를 채워가더라. 난 학생들이 뭔가를 받아가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배우길 바란다. 요즘 아이들은 수동적이다. 지금껏 질문을 할 때, ‘이거해도 되요?’라고 묻는 학생은 단 한명도 본 적이 없다. 다들 ‘이거하면 안 돼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 스스로 포기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매 학기 수업마다 조별수업을 하는데, 8개 조가 편성되지만 그 중 5개 조는 수업진행이 안 된다. 아이들 정말 협동 안 하고, 자기 할 일도 안 하더라. 이게 아이들이 어떻게 할 줄 몰라서 그런 거다. 자기들끼리 수업을 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내 것을 주기 보다는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하고 싶다.”

-수많은 작품을 했고, 그만큼 수많은 상대역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역이 누군가?
“‘오픈엔디드’에서 함께 했던 이미연 누나가 기억에 남는다. ‘카이스트’하고 있을 당시 ‘러브스토리’라는 옴니버스 미니시리즈에서 2부작 작품이었다. 이미연 누나를 그때 처음 만났던 건데 이상하게도 서로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공주의 남자’에서 함께 한 홍수현 씨도 기억에 남는다. KBS연기대상 베스트커플상을 같이 수상하기도 했고.”

작품 선정 기준을 묻자 그는 사뭇 진중해지며, 자신의 의견은 내려놓고 주위의 의견을 따라 연기에만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리캐스팅’이란 단어를 꺼냈다. 이는 배우가 의리로 작품 캐스팅에 응하는 경우를 뜻하는 단어로, 팬들의 따끔한 충고와 좋은 작품과 역할을 하길 바라는 염원이 함께 담겨 있는 말이다. 그는 팬 카페에서 ‘의리캐스팅 하지 말라’는 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팬들이 해주는 진심 어린 말에 고민에 빠지게 된 그는 이젠 바꿔야 될 시기가 왔다고 느꼈고, 자신의 의견에 힘을 좀 빼기로 했단다.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자연스레 자신은 모른다고 답한다. 옆에 있는 매니저를 가리키며 다음 주에 알려주기로 했다는 답이 전부였다.

-그렇다 해도 속으로 생각하는 해보고 싶은 역할은 있지 않겠나?
“이것도 다 알아서 해주실 거다. 내가 너무 비웠나보다.(웃음) 아무 생각이 없다. (계속 조르는 기자를 못 이긴 듯 그제야 알려준다.) 게이? ‘모던패밀리’라는 미드에 등장하는 게이커플이 있는데, 그걸 보니 굉장히 건강해보이더라. 수위 높은 장면까진 못 하겠지만, 모던패밀리의 게이커플 정도라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약 내가 역할을 하게 된다면 사회적 인식 개선에 있어서 동성애자분들께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꿈은 무엇인가?
“몇 가지 있지만 실현한 뒤 말씀드리고 싶다. 내가 실제로 행했을 때 말씀을 드려야지, 행하기 전에 알리는 건 실례란 생각이 든다. 내가 약속을 지키는 것에 민감하고, 시간약속 5분 늦는 것도 용납 못하는 스타일이라 내가 말해놓고 혹여 지키지 못할까봐 말을 못하겠다. 연기자로서의 목표는 그저 죽는 순간까지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든다. 쭉 배우로 존재할 수 있는 삶이 계속되면 좋겠다.”

△드라마
TVN 결혼의 꼼수(2012) /KBS 공주의 남자(2011)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MBC 메리대구 공방전(2007) /KBS 열아홉 순정(2006) /SBS 여인천하(2002) /MBC 뉴논스톱(2000) /SBS 카이스트(1999) /KBS 용의 눈물(1996) /MBC 별(1996) /KBS 한명회(1994) /MBS 우리들의 천국(1990) /MBC 조선왕조 오백년(1981) 등 100여 편

△영화
국방홍보영화 블루 드래곤(2005) /질주(1999)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1998) /A+ 삶(1998) /삘구(1995)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1998)

△수상
2011 KBS 연기대상 베스트 커플상 (공주의 남자 with 홍수현) /1999 SBS 연기대상 특별상 (카이스트) /1998 KBS 연기대상 연기상 (용의눈물) /1995 제31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 (춘향전) /1994 KBS 방송연기대상 아역상 (당신이 그리워질때, 춘향전, 한명회) /1985 제21회 백상예술대상 (당시 한국 연극 영화 TV 예술상), 아역상(KBS TV 문학관 저승새) /1984 KBS 방송연기대상 아역상